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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Nov 29. 2021

성냥팔이 소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12월이면 잊지 않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따뜻해 보이는 격자 창문을 볼 때,

 먼데 아파트 창의 불빛을 보며 마음이 아련해질 때, 

이즈음은 온통 따뜻하게 사니까 그런 창문이 없지만,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유리창에 한가득 김이 서리곤 했다. 

밖을 내다보려고 옷깃으로 김을 죽죽 닦다 보면 거기 그 소녀,

추위와 함께 하는 <성냥팔이 소녀>가 보였다. 


12월 마지막 날, 

술주정뱅이에 아이를 학대하는 아버지를 둔 소녀가 성냥을 팔러 나온다

연.말연시 때문에 바쁜 사람들은 소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추위를 피해 인적 드문 골목길에 앉은 소녀는 손이라도 녹이려고 성냥불을 켰다. 

치익! 성냥불을 켜니 난로가 나타난다. 아 따뜻해, 

다시 또 하나를 켜니 넓은 식탁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또 아름다운 트리가 나타나고,

성냥불이 꺼지자 풍경도 사라져 버렸다. 

그 때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 

소녀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건 누군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뜻이라던데... 누가 죽은 걸까?"

 소녀는 다시 성냥불을 켠다.

 소녀를 사랑해주던 외할머니가 나타난다. 사라짐을 경험했던 소녀는 

할머니를 붙잡기 위해 모든 성냥을 다 꺼내서 불을 붙이며 부르짖는다.

 "할머니, 할머니! 제발 절 두고 가지 마세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았고 소녀는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온몸에 눈이 쌓인 채 하늘나라로 간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의 주변에는 타버린 성냥개비가 흩어져 있었다. 

동화의 시작, 

12월 마지막 날은 아마도 세상의 종말을 은유하지 않았을까,

 12월 마지막 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죽음도 당신과 나에게, 누구에게나 다가온다는 것을 안데르센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 손 좀 잡아 주세요.

성냥을 빌미로 손을 내밀지만 아무도 소녀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추워서 성냥불을 켜는 소녀,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손이 녹으려고, 소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은 소녀의 허기를 잡아 주었을까, 혹은 강화했을까, 

소녀에게 다가온 이런 아름답고 슬픈 착시가 혹시 우리네 삶 동안 내내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별똥별 이야기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점이다.

 별똥별은 역사며 사라지는 것은 팩트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은유는 성냥불에 숨어있다. 

그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게 하는, 

이보다 더 도저한 죽음에 대한 은유가 있을까.

 누군가는 잔혹동화라고 하더라만

더 할 수 없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것은 고통스럽다.

고통의 끝은 죽음이다.

소녀의 마지막, 동화를 훌쩍 넘어선 죽음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동화. 

고통이 끝났으니, 할머니의 품에 안겼으니 해피엔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겨울처럼 차가운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니 사람들이 소녀의 얼굴에 어린 미소의 원인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 


성냥의 원말은 石硫黃이다.

성류황이 쓰기 편한 대로 성냥이 되었다고도, 서양 유황이 성냥이 되었다고도 한다.

 한때는 성냥 한 통에 쌀 한 되를 주고 샀다니 쌀보다 더 비싼 필수품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토속촌에 삼계탕을 먹으러 가면 한문으로 된 토속촌 글씨가 쓰인 작은 성냥곽이 놓여 있었다. 

두세 개 정도 가지고 와서 천이 미어지거나 미어진 천을 바느질할 때 사용하곤 했다. 

실 부분에 불길이 닿으면 타면서 오그라들고 더는 실이 풀리지 않는다. 

성냥은 타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거나 만들어 준다.(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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