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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영 Dec 21. 2021

부자선언!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어요.

 두 권으로 된 필립로스의 <미국의 목가>, 소설 맛이 확 나던걸요. 

뉴저지에 사는 키 190㎝의 잘생기고 사업에 성공한 유대인, 

세상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미덕을 한 몸에 지닌 전형적인 신사가 주인공이죠. 

스위드와 아주 대응적인 인물로 말을 더듬는 딸 메리가 있습니다. 

무산계급을 대변하는 딸은 자본가인 부모를 증오하게 되죠. 

메리로 인해 파생된 숱한 사건들은

폭발하는 화산처럼 혹은 흘러내리는 마그마처럼 그의 삶을 침범해 들어오는데도

 그는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냅니다. 

가문은 서서히 몰락해가고 사랑하던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암소 목장도 망해갑니다. 

목가적인 삶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요. 



기실 사람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려고 단단히 여미고 사는데

 소설은 그런 사람을 벗겨 내는 일을 하죠. 

옷만 벗길 뿐 아니라 그 내면까지도 파헤칩니다. 

좋은 소설일수록 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 강하죠. 

그래선지 소설을 천박한 장르라고 이야기한 평론가도 있더군요. 

사람의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그릴 수밖에 없어서 그럴 거라는 거죠. 

작가는 메리나 스위드,

그리고 그들 곁의 어떤 사람들도 편들지 않고 그저 그들의 삶을 기록해요.

 어쩌면 작가와 독자는 둘 다 아주 영리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작가는 자신의 내면과 사유 혹은 숱한 경험을 보여주지만, 

누군가를 대신 내보내고 

독자는 부조리한,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을 이해하게 되는 거죠. 

위로하고 위로받는 거예요. 

이런 사람도 이러니 우리는 서로를 유추할 수 있지 않겠니.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부자가 되는 일이예요. 

생각해보세요. 양파 대파 마늘 등의 양념에서 벗어나 나물 찌개 볶음 요리를 뒤로하고 

낯선 사람, 그것도 아주 흥미로운 사람의 생으로 들어가서 

그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헤쳐나가며

혹은 절망하는가를 생생하게 배우는 일인데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요. 



홍길주는

 “세상에는 함께 독서 할 만한 사람도 없고 천하에는 독서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고 했어요.

뛰어난 글을 지은이는 모두 다 세상을 떠났으니 더불어 독서 할 사람이 없으나

 세상의 모든 사람, 존재들은 지극한 문장이니 독서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죠. 

그는 나뭇잎을 읽는다는 독엽讀葉 이란 글도 썼는데....

사실은 저두 그렇습니다. 

讀葉뿐 아니라 讀木 讀實 讀根을 하죠. 

그것도 아주 자세히요. 

일부러 그리하려고 해서 된 것은 아니었어요. 

마치 이른 봄에 복수초 피어나고 바람꽃 솟아난 후

생강나무에서 노란 꽃 솟아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물론 읽어내는 깊이야 천양지차이겠지만 말이죠. 


자신이 부자라고 선언한 시인이 있어요.

 슬픔 부자 외로움 부자 아픔의 어두움의 부자, 

시인은 그것들이 해묵으면 반짝이는 보석이 될 원석이라는군요. 

그래서 살림이 넉넉하다고, 

시인을 따라쟁이 해보니 저두 나름 엄청 부자더군요. 

좋아하는 영화도 많이 봤죠.

그림도 열심히 읽었어요.

 음악도 깊게 들으려고 애썼고

책도 편식을 하긴 했지만 제법 많이 읽었죠. 

유명한 글은 아니더라도 평생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니 얼마나 넉넉한 부자인가요.

 저만 부자가 아니라

돈에서 살짝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 있어요.


오늘 코로나 삼차 접종을 했는데 팔이 묵지근하게 아프네요.

 생각해보니 독서를 통한 고통의 체험도 코로나 백신 못지않게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백신이예요. 

좋은 글은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역지사지를 할 수 있게 되죠. 

크리스마스라서 내게 주는 선물처럼 하는 말이지만 , 

나는 정말 부자랍니다.

 (교계신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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