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영 May 13. 2024

소리의 여정

파이프오르간, 귀, 소리


                                                                                      부천 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 




반짝이는 것들이 슬슬 좋아진다. 

색색의 구슬, 진주, 유리, 가짜 보석이 박힌 액세서리들의 반짝거림도 좋고 그래서 반짝이가 붙어있는 옷을 사기도 한다. 

벗이 사준 차 안의 방향제도 완전 반짝이인데 예쁘다. 

어릴 때 여름, 

마당에 놓인 와상에서 수제비를 먹고 엄마 무릎 위에서 바라보던 별을 얼마나 갖고 싶었던가, 

그러니 나는 혹시 내가 그 동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아침 음악회를 갔다. 

부천 아트센터의 파이프 오르간이 구슬과 유리 보석이 매달려있는 것처럼 반짝이는데 얼마나 예쁘던지, 

밤 음악회에서는 전혀 못 느끼던 아름다움이었다. 

아마 작은 등이 오르간의 파이프에 반사되어서 낮의 은은한 채광 속에서 그리 영롱히 반짝였을 것이다. 

여수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스카이 타워 외곽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 

거대한 시멘트 저장 사일로가 변신하여 파이프로 변신했다. 

참 놀라운 상상력의 추동이다. 

특별할 때 가끔 연주되기도 한다는데 그 소리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진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 소리는 ‘신과 함께 가라’는 독일 영화다. 

그 말미에 흐르는 찬송가 312장 ‘주 하나님께게 이끌리어’.

 파이프 오르간 반주가 흐르고 단음의 찬송만 찬송이라고 여겨지는 성전에서 

다음의 찬송이 불리워진다. 

언제 들어도 솜털이 오소소 솟구치는 아름답기 그지없던 찬송. 



아침 음악회는 그다지 고급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악장 사이에 박수는 무시로 나타나고 소음도 잦다. 

분위기로 친다면 아마츄어 집단의 대관 공연이라고나 할까, 

오르간 연주 중에도 약간의 소음이 있었는데 

연주 중간에 문이 열리고 앞 좌석에 있던 사람이 발을 쿵쾅 거리며 춤을 추듯 나갔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장애우들이 관람을 왔던 것이었다. 

화났던 마음이 스르르 가라앉으며 연주자들도 속상하지 않기를~~ 이해하겠지~~



내 클래식 입문은 멘델스존과 차이콥스키의 바이얼린 협주곡이다.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 

삼천 원이 조금 넘는 테이프를 하나 사면 세상이라도 산 것처럼 좋았다. 

두 곡 중 어느 곡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눈물은 슬픔이 아니었다. 

뇌가 시켜서도 아니었다. 

음악이라는 그 기이한 물질ㅡ 공간도 형체도 없지만 너무나 확실히 존재하는ㅡ에 

몸의 세포가 저절로 발화한 게 아니었을까, 



오르간과 피아노 합창단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 

오르간은 사람의 목소리에 스며들고 피아노 소리는 빗방울 같은 음색으로 그사이를 맴돌았다. 

갑자기 나지막한 파도가 넘실대며 마음속으로 몰아쳐 오는 듯, 

수영 못한 사람이 물을 보며 두려워하듯 가슴이 뛰더니, 

세상에 울컥! 



그렇다고 내가 눈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울컥에 오히려 시니컬한 사람이다. 

초짜 사모가 되어서 내가 한 일은 유행가를 끊어낸 일이었다. 

세상을 떠나 사는 것도 아닐진대 그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람에 대한 이해 속에서 좀 너그러워지는 나이가 되어서야 유행가도 듣기 시작했다. 

내가 유일하게 즐겨 보는 티비 프로그램이 불후의 명곡이다. 

가끔 노래 속에서 우는 사람이 나타나곤 하는데 그게 무슨, 좋으면 좋지, 눈물까지야, 

우는 사람도, 화면으로 잡아 클로즈업하는 카메라맨도, 편집한 사람도 다 감정 과잉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내가 ‘생명의 양식’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귀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런 귀에 아주 놀라운 비밀이 숨겨 있다.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목에서 나오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듣는 내 목소리와 다른 사람이 듣는 내 목소리는 절대 같을 수가 없다는 것, 

이 놀라운 오류가 우리 몸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피상적인 유추의 시작은 이렇다. 

내가 아는 내가 남이 아는 내가 아니며 

내가 생각하는 나 역시 남이 생각하는 내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나를 가장 모르는 내 안의 타자가 아닐까, 

귀의 오류, 

아니 오류가 아닌 귀의 팩트는 

그래서 철학의 시작일 수도 있겠다. 

세상의 많은 비밀을 살짝 열어젖히는, 비밀이 엿보이는 신비로운 문, 



지자체 음악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곳이 부천 아트센터이다.

 4천576개 파이프라니, 

그 수많은 파이프의 관들이 내는 소리라니, 

천장 아래 파이프 라인에 연주자가 나타나서 

아니 저기서 아래까지 내려오려고? 

했더니 바로 그 높이에 연주대가 있었다. 

바흐의 첫 음이 시작하는데....


파이프 오르간은 

그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곳이 어디든 모든 곳을 성전으로 만들어버린다. 

주님이 임재하실 때 음악이 있어야 한다면 아마 파이프 오르간일 것이다. 




 


여수시 파이프 오르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