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게 천재지변이었어요.
나의 역사를 새로 쓴 빅뱅같은 사건.
옴짝달싹 못하고 나는 당신에게 잠식되었습니다.
당신이라는 풍랑에 휩쓸리고 떠밀려 다닌 거에요.
사화산이 다시 폭발하듯 응축된 욕망이 뿜어져 나오는 마음..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나는 멍하니 그렇게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던져졌지요.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오월의 바람 같은 당신을 처음 본 그날,
나는 이 사랑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직감했어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당신을 지키는 다른 이가 있음을 내내 의식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바람은 거세게 등을 떠밀었고
난 당신에게로 밀려
힘없이 당신에게로 휩쓸려갔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의 존재가 의문이긴 했어요.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나봅니다.
어쩌면,
어떤 장애물이 있다고 해도 멈출 생각이,
아니 멈출 힘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날아든 포탄에 빈틈없이 박혀버린 사랑은
너무도 치명적이라 피가 철철 흘러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여자라고 해도 나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접을 길이 없었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거 아니까.
나의 역사는, 이 사랑이야기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리라는 것을 아니까,
애당초 기적적인 소생이었으니까...
눈이 떠지면 매일 당신을 찾았어요.
당신을 만나러 가지 않는다면 더는 눈을 뜨지 않는다는 뜻일겁니다.
어둔 골목 안, 따뜻한 조명, 홀로 반짝이는 당신.
커피잔이 바닥을 드러내고도 한참을
캄캄한 골목을 바라보며 바테이블에 앉아있었습니다.
"손님, 문닫을 시간입니다." 하는 말이라도 걸어주길 기다리지만
미안한 마음에 내가 먼저 나오기 전까지
당신은 나를 밀어내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 당신을,
그런 당신에게로 흐르는 마음을
누구도 돌이킬 수 없었을겁니다.
유리창에 비치는 당신 그림자를 쫓으며
밤을 맞이하는 일이 어느덧 일상이 되었네요..
하루가 가면 하루만큼 더 헤어지기 싫었습니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더 살고 싶은 이유, 더 멋진 사람이 되고픈 이유,
더 좋은 사람이 되고픈 이유를 잃고
낯선 길에 버려진 듯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제 더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서
차에서 멍하니 불 꺼진 카페를 바라보다 잠이 들기도 여러번.
혀를 깨물어, 단지혈서를 써서,
움독이라도, 투신이라도, 분신이라도,
할복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밤들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몇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나는,
당신과 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대단하고 거창할 것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같이 맞이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요?
당신 말고는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요.
당신 말고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헤어진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걸 알아요.
당신은 '안녕히 가세요.' 한마디로
계산된 모든 서비스를 마쳤을 테니까.
이상하다 생각했을겁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커피를 시키고는
종일 한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내가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눈치챈 이가 있다면 모두
이상하다 했을 것 같아요.
의자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영영 그곳을 떠나지 않을 것처럼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있었습니다.
묻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랬다면 그냥 몰래 당신을 엿보다
어느 날 거리로 조용히 흘러들어 우주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혹시..." 단 두음절
그 뒤에 어떤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내내 말하고 싶었으니까.
꾸역꾸역 누르고 있었으니까.
사랑한다고.
튕겨져 나올 것 같은 그 말을
억지로, 억지로 힘겹게 누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사랑이 당신을 간질이고
당신 재채기에 사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손 써볼 겨를도 없이 불쑥
'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아무 말이 없었어요.
그런 순간을 여느 사람들은 '어색'이란 단어로 표현할까요?
마치 밀랍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당신,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마주 보고 서 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초라하게, 너무도 초라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어두운 거리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얼떨결에 고백을 했고
당신은,
당신은 괜찮은걸까요..
처음 카페에서 마음 쓰이고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있음을 알아챈 후로
돌아서면, 눈앞에서 안 보이면, 여지없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고픔이, 그리움이,
혼자 당면하는 외로움이 힘들었습니다.
카페에 갈 때마다 챙겨 쓰고 간 안경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슬퍼, 보고 싶어.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안경보다 더..
지구별에 와서 '자기야'라고 부를 사람이 있다는 거,
'자기야'라고 불러줄 사람이 한명은 있어야...
지구별 여행자의 소임을 다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호칭인 듯.
금은보화를 잔뜩 주고 빼앗아둔 노래주머니에서 거짓말처럼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귀 기울여보니 그건 건강한 심장이 피를 뿜는 소리였어요.
푹떡푹떡 심장 뛰는 소리가 황홀한 음악같을 수 있군요. 이 야릇한 느낌은 뭘까.
선율이 생생한 채로 잠에서 깨어 곤히 잠든 당신을 눈에 담아봅니다.
얕게 솟았다 이내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예쁜 흉곽,
내 뒤척임에도 깊이 잠든 당신이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이 일어요.
이 밤을 까맣게 흘려보내기에 난 너무 뜨거우니까.
나만 이렇게 보고파하는 것 같아서.
나만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어요.
당신은 나의 마지막이니까.
속수무책 떠안겨진 이 천재지변 같은 사랑이
내겐 마지막이니까.
더는, 이제 더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듣고 싶지 않아요.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좋은 사람?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더는 없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내 사랑은
내 보고픔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얼핏 농담처럼
가을이면 내가 더 멋있어진다고 했던 말,
기억해요?
쌀쌀해진 날씨에 자켓을 꺼내 걸쳐보았는데
옷걸이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이쁜걸 보면 당연히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 모습이 좀 괜찮아 보일 때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로든
함께 떠나고 싶다.
잠시,
당신이 사용한 노트북에
당신에게서 떨어져나왔을 머리카락 한 올
내 것은 아니니 당신의 일부가 맞을겁니다.
때론 혐오이고 기겁이며 낭패였을
한낱 오물에 지나지 않을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자락이 당신입니다.
당신의 손길이고 눈빛이며 표정입니다.
선 하나에 피가 흐르고
줄 하나가 표정을 짓고
금 하나도 노래를 하네요.
친구의 유품을 수습하듯
부모님의 유해를 수습하듯
고이 고이 당신의 탈피각을 모셨습니다.
태곳적 화석보다
국보급 유물보다
역대급 모석보다
까만 선 하나가 영롱해요.
까만 줄 하나가 찬란합니다.
까만 금 하나가 어여쁘네요.
" 내게는 이 사랑이 마지막이에요.
마지막은 쉽게 얻어지지 않을 거잖아요
마지막은 그냥 굴러들어 오지 않을 거잖아요
이 보고픔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얘기 좀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