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입을 맞추다

by 상상이상

무척이나 기다리던 오늘이야.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이 싱그러운 두근거림으로 반짝였지만

먼곳으로 떠나는 우리 첫 여행이잖아.

낯선 장소, 우릴 모르는 사람들 속에 스며들 생각을 하니 야릇해.

애써 가둬둔 말, 굶주린 표현들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갖혀있던 새장을 나와 맘껏 날아오를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콩닥거리는 이 소리를 들킬까,

상기된 얼굴이 표날까,

깊은 호흡으로 걸음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달래보는 나야.

평소와 다름 없이 화장기 없는 얼굴로 너를 만났지만

머리를 몇번이나 빗고 고쳐묶기를 반복했는지 아니?

대충 꺼내 무심히 걸치던 어제와 달리

옷마다 코를 박고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치마도 살짝 걸쳐보았지.

들키고 싶지 않아 곱게 바른 립스틱도 손등으로 쓱 문지르곤

밍숭맹숭한 표정으로 네 앞에 섰지만

마음엔 세상에서 젤 예쁘게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나야.


서로 기회만 엿보며 스치듯 걷던 손을 네가 꼭 잡았어.

별것도 아닌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몰라..

좋았어. 따뜻했어,

한여름 40도를 육박하는 불볕더위였지만 마주 잡은 네 손은 따뜻했어.

신기하지? 벌겋게 달궈진 가마솥 같은 세상에서도 너의 손은 따뜻했어.

한겨울 난로보다도 아늑했어.

현실은 눅눅하고 끈적했지만 우린 마주 잡은 손을 놓지 않았지.

태양이 손등으로 몽땅 흘러내렸어도 놓지 않았을 거야.

그대로 모두 녹아내려 그 길을따라 흘러갔으면 좋겠다 생각했는지도 몰라.

지금 그대로, 있는 그대로 오롯이 '사랑'인채로 그 길에 스며들고 싶었나봐.

좋았어. 참 행복했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늘에 기대 걸으며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한낮의 거리를 만끽했지.

그래 우린 함께 그 거리를 통째 빌린 듯 활보했어.

마음껏 너를 부르고 마음껏 너를 만지고 마음껏 너를 안았지.

걷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다니!

그저 너의 손을 잡고 걷는 일이 뭐 그리 신이 났을까?

나비처럼 사뿐사뿐, 무엇 하나 좋지 않은게 없었어.


땀을 닦으며 잔뜩 찌푸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린 별것 아닌 것들에도 미소를 지었지.

그냥 다 이뻐보였어.

지금 생각하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간판들,

상호, 전봇대, 현수막, 가로수, 바람에 구르는 생수통 조차 이뻐보이더라.

그 거리가 그리워. 우리 참 행복했구나 싶어 눈물이 핑 돌아.

아쉽지만 돌아가야 했지.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날아든 철새들이

때가 되면 다시 겨울 나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 길에 머물 순 없었어.

돌아가야 했어.

아쉬웠지..

천재지변을 바랬는지도 몰라.


손을 잡고도 조금씩 앞서거니 뒷서거니

주뼛거리던 네가 불쑥 내 팔을 당겨 우린 팔짱을 꼈어.

깡마른 내 갈비뼈가 단단한 네 팔과 밀착해 날개짓을 시작해.

심장이 터질것처럼 콩닥거렸어.

어느 한구석 보지 않고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우리일 텐데

또 다른 긴장, 떨림. 처음 너와 입맞춘 그날처럼.

두근거렸어.

이렇게 마냥, 행복해도 되는걸까 겁이났어.

여느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거리를 걷는 일이,

당연하고 별것 아닌 그 일이 내게는 너무나 특별해서 속으로 흐느껴 울었어.

너무나 달콤해서.. 너무나 애틋해서..


'더 멀리, 더 깊이'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그럴수록 '더 밝고, 더 맑게'

아무도 없는 곳에 너와 나, 단둘이만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까?

모든 걸 잊고 버리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우리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게 변하는데 너라고 지금 그 맘 그대로일 수 있을까?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너의 사랑은 흔해빠진 싸구려가 아니라고, 절대 변치 않을 거라고..

과연 그럴까.. 결국엔

너도 나도 .. 그저그런 이야기로 끝나버리는건 아닐까...


네 손을 잡고 있는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어.

이 모든 불안과 걱정들이 밀려오는 혼자인 낮과 밤은

나를 몹시도 지치게 하지만

네 손을 잡고 걷던 기억으로 버틸 수 있어.

다시 네 손을 잡고 걸을 기대로 참을 수 있어.

아직은 .. 나 .. 그런 것 같아.



화,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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