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

닮았구나 우리

by 상상이상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너의 고요함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궁금했어.

가라앉은 목소리, 숨겨짓는 미소, 조심스런 손길, 뜬금없이 찾아오는 우울,

빗겨 바라보는 시선, 서글픈 눈빛, 외로움이 타는 냄새...

모든 게 의문 투성이지만 무엇도 묻지 못했어. 물어볼 수 없었어.

잘못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았거든. 너도, 우리란 이름도.


"뭐 먹고 살아?" 꾹꾹 눌러온 수많은 질문 중 틈을 비집고 삐져나온 첫 질문이었어.

다시 생각해도 속물스러워 구역질이 나지만

내게 먹고 사는 일보다 지금 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일 보다 중요한건 없으니까.

어차피 사랑이란 감정은 확인하는 즉시 증발해버리는 신기루 같은거니까

이번에는 날 보살펴줄 수 있을까, 이번은 뭔가 다를까 하는 기대를 갖기엔

난 이미 너무 닳고 달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또 바보처럼

기대했는지도 몰라.


질문을 하고 생각해보니 정말 나는 너에 대해 아는게 없더라.

나는 굳이 묻지 않았고 너는 철저하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절대 열어보면 안될 판도라의 상자라도 되는냥

함께라 어쩔 수 없이 공개된 것들 외에 모든 게 감춰진 너.

어쩌면 그런 비밀스러움이 신비함이 나를 너에게로 이끌었던 것 같아.

뭐든 분명하고 명확한게 좋았던 내게 야릇하게 비현실적인 감정을 불러온 너였어.


어쩌면 너도 잘 모르는, 너무 아파서 깨끗이 지워버린

그래서 답할 것 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런 삶을 살았는지도...

하루 종일 내 연락만 기다리는 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않는 것 같았어.

내 시간이 허락될 때 걸려온 전화만 받다가 문득,

내가 전화를 걸면 넌 어딘가를 걷고 있어.

전화 너머로 어렴풋 들려오는 파도 소리, 매미 소리, 바람 소리가

우리가 같은 우주에 발딛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을까?

아득한 눈빛

침착하고 조심스러운 말투

어깨까지 내려오는 하얀 머리칼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해

검게 그을린 얼굴에 비해

상처투성이지만 한눈에 봐도 보드라운 손

깔끔하게 손질된 손톱

디자인된 것이 아니라 세월에 찢어진 듯 보이는 청바지

운동한 가슴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팔티셔츠

심야 라디오에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

모든 것에 관심없고 무뚝뚝한듯 보이는 남자가

분명 이 사랑이 마지막이라며

나 하나 훔치는 것으로 족하니

무엇도 욕심내지 않겠다고 말해.


웃어넘기고 무시해봤어.

비웃어도 보고 화도 내 봤어.

뭔가 달랐어.

뭔가 달랐으면 하고 기대한걸까?

한결 같았어.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석처럼

이 사람 없이는 삶도 없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너.

나만이 당연히 네 사랑이라고 말하는 너.

내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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