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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통샤인머스캣 Mar 08. 2021

주어진 재능대로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려면,

삶을 다스리는 질문하기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은 시작일 뿐 최종 목표는 아니다. 아름답게 변화해서 사랑스럽게 다스리고, 고맙게 기억되는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아름답게 변화하기는 죽는 순간까지 어느 정점으로 완성될 수 없는 단계적이고 지향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아름답게 삶을 다스리기 위해선 하루를 시작하며 자기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다져야 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내 삶에서 어떤 가치를 실현시키기를 원하는가? 그렇게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이렇게 자신을 점검하는 묵직한 인생 질문은 자신의 삶의 목표대로 이끌어주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인생 질문에 관해 틈틈이 시간을 내어 자문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스스로가 찾은 답변을 등대 삼아, 큰 그림을 그리며 목표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을 다스릴 수 있는 마음가짐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오늘 자신의 하루를 마감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라는 정신적 성과물을 이루었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즐거움을 누렸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 무엇을 했더라면, 혹은 오늘 무엇을 안 했더라면, 오늘 하루가 더 만족스러울까? 이런 질문에 궁색한 답변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낼 때, 그 하루는 소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이뤄가는 의미의 열매로 충실히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질문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배워나가고, 찾아낸 의미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 행동을 선택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어제보다 더 사랑스럽게 다스려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질문을 잘하지 못하는 문화에서 자랐다. 질문을 했더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이나 수준 떨어지는 질문을 하냐는 식으로 대부분 보는 표정이고 꾸지람 섞인 반응에 괜히 질문했다는 학습이 이뤄진다. 말대꾸하면 안 되는 문화에서 컸기에, 주위에 질문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토론에도 익숙하지 않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질문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2~5세 사이에 약 3만~4만 개 정도의 엄청난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질문을 거의 하지 않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는 질문을 멈춘다. 질문이 없다는 것은 호기심을 키우지 못하는 환경과도 같다. 어떤 교육학자는 한국의 주입식 입시교육이 호기심을 죽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질문하지 않고 그저 선생님의 정답을 받아 적는 입시교육이야말로 독재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적절한 교육 방법이라고 일갈했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질문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부정적인 강화를 시켰음을 이해할 수 있다. 수업의 말미에 질문을 하는 친구들을 반겼던가?  ‘수업은 여기까지. 반장~‘ 하는데,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꼈나. ’아~씨‘ 그런 반응이 반사적으로 나오지 않았나. 학교를 끝나고, 반강제적인 자율학습을 해야 하고, 학원을 다니느라 이미 지친 그들은 쉬는 시간에라도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별 내용도 없는 질문을 하면 잘난 척한다거나 ‘바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선생님의 표정이라도 좋지 않으면, 스스로도 수준 낮은 질문을 한 것 아닌지 괜히 걱정하게 되고, 스스로 해야 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받아먹는다는 불성실한 학생이라는 오해도 살 수 있다. 질문한 학생은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욕 들어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질문을 할지 말지 신중해지게 되고, 급기야는 질문 자체를 꺼리게 된다. 이렇게 질문을 가로막는 집단 문화에 순응하다 보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본전을 챙기는 일이 되어 버린다. 질문이 사라지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결국 호기심을 막는 집단 주입식 문화는 자기답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킨다. 주입식 입시교육에서 자란 세대는 질문을 던져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답을 암기해 고기를 잡아 입에 넣어주는 교육을 받아왔다. 애당초 질문과 토론에 서투를 수밖에 없다. 


 사회는 지식 자체가 중요하기보다 오히려 지식을 토대로 다양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한 사회로 돌입하고 있다. 결국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묻고 깨우치는 분위기를 환영해야 한다. 공식을 외우게 해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잘하지만,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원리를 알고, 새로운 현상에서 원리를 찾아내고 그 원리를 적용하는 지적능력이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질문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삶을 다스리는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가장 소중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나만이 답변할 수 있는 그런 질문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물론 질문해야 하고, 화가 났을 때도 잘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갑자기 그 말을 듣고 내가 그토록 화가 났을까?’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리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간디는 ‘끊임없는 질문과 건강한 호기심은 모든 종류의 학습을 습득하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문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평생교육의 장이어야 한다. 호기심을 잃지 않고 건강한 질문을 하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자신의 인생이니 자신이 가장 훌륭한 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질문해 봐야 한다. 그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질문에 답을 하다 보면, 오늘 자기 자신이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했는지 묻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거기에 맞춰 살다 보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삶의 소원에 맞춰 가장 소중한 일을 이루며 살아갈 기회가 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꿈을 찾아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정신과 의사인 채인영 선생님은 ‘꿈이란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너무 흥미로워서 자기도 모르게 열중하게 되는 것,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것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꿈이라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숨겨진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찾을 수 있고, 삶의 의욕과 열정을 끌어내어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일상에서 조금씩 하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그 자리에 어느덧 도달해서 남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삶을 다스리고 자신을 점검하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꿈을 실현하며 남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겨주는 실속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달인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맡은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지 몰입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을 본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경지에 오른 출연자들을 보면, 일을 통해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은 자신의 일을 능숙하게 하면서도 의미와 재미를 발견하며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꿈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그 일을 통해 소명을 추구하는 삶도 달인이 되는 과정처럼 자기다움을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남과 다르게 태어난 자신의 고유함을 인식하고, 남과 다른 그 무엇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면, 남들이 가진 어떤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고, 나만의 일을 묵묵히 하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성경 창세기에선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고 숨어 버린 아담에게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을 하신 부분이 나온다. 그는 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 전반에 활용될 때는, 좋은 답을 낼 수 있는 좋은 질문을 인공지능에게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하나님처럼 본질에 다가가는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사랑스럽게 다스릴 수 있는 핵심역량을 갖추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인가? 학교란 좋은 질문을 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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