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매 순간 산책하듯 41

by 상현




오랜만에 고요한 봄을 보내며, 지금의 계절과 참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했던 12년 전의 봄이 종종 떠오른다.


2008년의 봄, 모두가 ‘고3’이라는 타이틀을 매고, 인생의 출발선에서 달려나가는 그 때,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두려워서 선택한, 그야말로 명백한 ‘도망’이었지만, 혼자라는 견고한 세상에서 보낸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잔잔하고 맑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의심할 여지 없이 나의 ‘엄마’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단 말에 일말의 만류도 없이, 그래, 그럼 내가 내일 학교 가면 되니? 라고 답하셨던, 그리고 약 2년의 시간동안 단 한번의 걱정의 내색도 비추지 않으셨던 나의 엄마.

하지만 최근에서야 듣게 된 사실은, 그 당시의 엄마는 출퇴근할 때마다 지나치는 나의 옛 학교를 보며, 그 곳에 내가 평범하게 속할 수 없단 사실에, 항상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밖에는 볼 줄 모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조건 없는 믿음에 보답하고, 또 증명하기 위해, 꾸준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 보다 선명해졌다.

당시의 선택을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양면성을 지니듯, 그 이후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 드러내기 어색한 치부가 되기도, 또는 내심 스스로 특별하다 여기는 자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나의 상황과 마음을 천천히 다시 곱씹어보니, 그저 18살의 나는, 그리 강하지도 천진난만하지도 않은 미숙한 아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주어진 스트레스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내지 못했고, 몸과 마음이 회복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여, 안식년 비슷한 것을 선택한,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일일 뿐이었다. 분명 부끄러운 일도, 우쭐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현재의 나를 누군가, 혹은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꽤 적당한 하나의 이벤트. 이제는 그 정도의 무게로 나의 ‘도망’을 바라보고 싶다. 아마도 고등학교 졸업장, 딱 종이 한 장 정도의 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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