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산책하듯 49
2014년의 가을, 나는 내 속에 모든 감정의 스위치를 내렸다. 더 이상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갑작스럽게 아빠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마치 기계와 같이, 가짜가 되어야했다.
그 때부터 스스로에게 부여한 명령은 ‘어른’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식, 상주, 법정 상속인, 그리고 채무자. 나는 학교보다 경찰서와 법원을 더 자주 다녀야만 했고, 아빠의 죽음에 대해 그 어떤 감정적인 매듭을 지을 틈도 없이, 남겨진 큰 빚을 처리하는 것이 남은 나의 삶을 위해 훨씬 더 급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름 별 탈 없이 능숙한 척 ‘어른’을 연기했지만, 나는 고작 24살이었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는, 지금 떠올리면 너무나도 부끄러울 정도로, 오만한 착각 속에 빠져있었다.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나는 불행한 사람이고, 주변 사람들의 고통보다 나의 고통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내 앞에서 고통을 이야기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저항감에 사로잡혀, 길게 듣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항상 여지 없이 죄책감에 빠졌다. 이미 감정의 스위치가 꺼져버린 뒤라, 남의 아픔이나 슬픔을 수용할 수도, 처리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 받을 자격이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그 당시 연인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분명히 같이 있는 시간은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점점 번져 갔다. 나의 모든 마음에 솔직해지면 순식간에 다 무너질까봐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조차 나는 가짜로 지냈다.
결국 약 4년의 연애 후에, 나는 연인에게 처음으로 아빠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고백하며, 이별을 통보했다. “사실 나는 온전히 서있기도 힘든 사람이야. 네가 원하는 평범한 행복은 나는 줄 수 없을 것 같아.”라며.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멀리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나는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펑펑 울었다. 이별의 슬픔보다, 한 없이 구차하고 비겁한 나의 모습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타인에게 사랑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자책은 지독하게 뻔한 습관이 되었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타고난 것도 없어. 이대로 도태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조용히 사라져버릴지도 몰라.’라는 문장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사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되어, 설령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설레는 다음 날이 기다리고 있다해도, 나는 매일 밤 눈을 감으며 눈을 뜨지 않는 다음 날 아침을 상상했다. 차마 스스로 놓아 버릴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엄마’뿐이었다.
스스로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았고, 나만 유난을 떠는 것 같았다.
최근에서야 미디어에서 ‘자살 유가족’이라는 말을 접하면서, 남겨진 가족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당연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자살 유가족’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내 스스로 자책하며 살아왔던 그 간의 모든 것들을 타당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위로를 받았다. 또한 이는 모두가 살아가며 지닌 보편적인 수 많은 고통 중에 하나일 뿐이었고, 나는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덧 아빠가 돌아 가신지 6년이 흐른 지금, 나는 감정의 스위치를 다시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과 같은 아픔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글과 그림으로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다보니, 이제는 스위치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이 이야기만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 털어놓고, 이제는 자유로워 지고 싶다.
어떤 한 가지 모습으로 절대 한 사람을 설명할 수는 없다. 각자 수 만가지 빛깔을 품고, 순간순간마다 비춰지는 색이 있을 뿐. 어떤 색은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어떤 색은 수치스럽고 아파서 아등바등 감추게 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존재하는 그 모든 스펙트럼을 자연스럽게 고백하며 인정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매일 열심히 걷고, 명상하고, 스스로 연민하며 차근차근 살아가려 한다. 언젠가 내 스스로가 온전히 서있게 될 때, 내가 속한 세상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든 이 빚을 꼭 갚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