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제주의 밤바다는 특별하지 않았다.
한치 앞도 딛을 수 없이 캄캄하기만 한, 우리가 걷고 있는 긴 터널과 닮은 장면.
그래도 실 없이 웃었고, 그마저도 즐거웠다.
벅찬 감동이나 교훈 따위는 없어도, 분명 기억될 어떤 순간임을 확신했다.
마치 긴 글 사이에 귀엽게 자리 잡은, 아무런 의미 없는 삽화 한 장처럼.
여행의 의미는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나의 어떤 무렵에 페이지를, 소박한 순간의 이미지로부터 편히 찾아갈 수 있게,
바라는 것 없이 종종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