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산책하듯
언젠가 아빠의 차를 타고 등교를 하던 중, 꽉 막힌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짜증이 날 법도 할텐데, 아빠는 조금의 짜증이나 화도 내지 않으셨다. 거듭 사과하는 상대방에게 그저 미소지으면서, 덤덤하게 사고를 처리하셨다.
물론 아빠의 체격이나 외모가, 객관적으로 조금 위협적이셔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늘 아무도 없는 신호등의 정지선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끝까지 기다리셨던, 아빠는 모든 것에 있어서 느긋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꼭 놀러갔다. 심지어 집에 차가 없던 시절에는 나를 들쳐매고 버스랑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데려갔다. 여름방학이면 매주 수영장을, 겨울방학이면 썰매장을 종류별로 향했고, 내가 혼자 정신 없이 즐거워하는 동안, 나를 필름 속에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여느 평범한 아빠와 아들처럼, 아빠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게 되었지만, 항상 뭔가 잘못을 수습한다던지, 어렵고 복잡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아빠를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좋아하지 못했다. 한 사람 안에 다정함과 강함이 공존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아빠는 그리 강하지 못한 어른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우리 가족의 힘듦은 다 아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아빠가 삶 속에서 여러 번의 좌절을 겪었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또 세상은 노력만으로 안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부터, 아빠를 원망하는 대신, 그의 인생을 끝으로 내몰았던, 술, 돈, 세상, 그런 것들을 원망하기로 했다.
아빠가 돌아가셨던 그 날, 내가 느낀 슬픔은 가족으로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슬픔과는 조금 달랐다. 평생을 옆에서 지켜본, 너무나도 불쌍한 한 사람의 끝을 마주한, 마음이 쓰라린 아픔과 슬픔이었다. 그 와중에 마지막 표정은 아무 걱정 없는 듯, 여전히 다정하고 온화했다. 그래서 훨씬 더 슬펐다.
아빠는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 중에서 능숙하고 부드럽게, 그리고 안전하게 운전을 하는 모습이 가장 멋있었다. 좋은 차에 대한 로망도 항상 있으셨다. 그래서 나는 늘 속으로 보란듯이 성공하고 돈 많이 벌면, 아빠랑 제일 잘 어울릴만한, 비싸고 좋은 새 차를 뽑아드리고 싶었다. 효도하고자하는 그런 바람직한 마음이라기보다는, 아빠의 얼굴에서 더 이상 의지나 희망을 잃은 표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볼 수 없었던 으쓱하고 자신감 넘치시는 표정을 간절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쉽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