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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Aug 20. 2020

Intro: 01 새이, 생근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이름하여 ‘무조건 쓰고본다, 쓸모없어도 쓰고본다' 라는 뜻의 <무쓸모임>이다.




친구와 무작위로 선정한 글감으로 매주 글 한 편을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작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모은 이야기 중 14편을 모아 zine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막바지 작업 중이에요. 첫 번째는 새이와 생근, 서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01 새이, 생근


새이


생근을 만난 건 어느 날 흘깃 본 남자친구의 인스타그램에서였다. 설교 노트나 평소의 묵상을 간단하게 그려놓거나, 삶에서 고민하고 알아가는 것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킹스턴 교회에서 만난 누나인데 교대를 나왔고 지금은 한국에 있다’라는 정도만 남자친구를 통해서 들었다. 그 뒤로 정기적으로 ‘나 상은이 인스타그램 좀 보여줘’ 하고 남자친구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확인하곤 했다. 더 나아가 나중엔 용기를 내서 내가 직접 팔로우 신청을 했는데 까탈스러운 생근은 자신의 팬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내 팔로우를 받아주었고, 나는 그 뒤로 그녀의 모든 포스팅을 틈 날 때마다 꼼꼼히 읽어보며 일방통행 우정을 다져갔다.


그러던 어느 주일, 청년부에 새로 온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시간이 있었다. 설교 노트를 정리하다가 누구지 하고 올려다보는데 종소리가 울렸다. 생근이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서만 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 생각만 했던 사람이 마치 드라마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친구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걱정이 앞섰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면 어쩌지? 나를 맘에 안 들어 하면 어쩌지?’ 싶었다. 자신의 셀*로 들어온 그녀를 소개해주겠다는 남자친구에게 ‘부끄럽다’라며 뒷걸음질 치기를 몇 주, 결국 셀 모임을 핑계로 남자친구는 나와 생근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그렇게 생근과 새이의  삶이 맞물리게 되었다.


생근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비슷했다. 서로 살갑게 연락하진 않았지만, 서로를 마음에 두었다. 함께 시간을 보낼때면  그것이 몇 시간이든 시간이 모자랐다. 자질구레한 일상 이야기부터 사회문제까지, 신앙 이야기부터 연애 이야기까지 온갖 주제를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알고 보니 다른점이 많았지만 그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생근은 나의 거침없는 모습과 얄팍한 부동산 지식에 눈을 반짝였고 나는 그녀의 재능과 힙한 취향을 동경했다.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온 날엔 마음이 너무 즐거워서 잠들기가 아까웠다.


빠른 90으로 동갑내기인줄 알았던 그녀가 사실은 빼박 90이라는 걸 알고나서도 유교걸인 나 답지않게 생근은 여전히 친구같다. 짧은 쇼트컷이 잘 어울리고, 빨간색/노란색 체크무늬를 좋아하고, 집순이라고는 하는데 밖에서 노는데 빠지지 않고, 양말을 좋아하며, 웃을 때마다 잇몸을 다 드러내며 깔깔대며 웃는다. 무엇보다 생각이 많고, 신앙에 진지하며, 새로운 프로젝트 만드는데 큰 재능을 발휘한다.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것 같다가도 금세 소심해지고, 차갑다가도 따뜻하며, 미니멀리스트가 꿈이지만 다람쥐처럼 이것저것 쟁여서 다닌다. 보고 있자면 그 재능으로 같이 꿈꾸고 싶어지고 옆에서 같이 자라는 삶은 어떨까 종종 상상해보게 된다.


생근과 만난 어느 겨울밤. 시끄러운 카페 창가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이 글쓰기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을 모아서 해보기 전에 일단 둘이 해보기로 했다. 필명을 짓고 모임에 이름도 붙였다. 이름하여 ‘무조건 쓰고 본다, 쓸모없어도 쓰고본다’라는 뜻의 <무쓸모임>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중간중간 모여서 서로의 글을 읽어주며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물론 중간에 방학 아닌 방학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그 힙하다는 ‘zine’을 완성하게 되었다. 글 쓰는 실력을 향상하자, 우리 한번 성실하게 뭔가를 해보자는 다짐으로 시작한 zine이지만 이 시간이 나에겐 생근과 내 삶이 맞물리기 전의 시간에 대해 소개받고 그래서 그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나오는건 언제나 신나는 일이다. 그런 일을 생근과 함께해서 더 좋았다.



*교회 소그룹






생근


새이를 처음 만난 건 리도카날*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였습니다. 어색하게 푸틴**을 나눠먹고는 빙상에 올랐습니다. 언니는 새하얀 피겨화를 신고 점이 될 때까지 전력질주를 했어요. 그녀의 남자친구는 새로 주문한 스케이트가 너무 딱딱해서 어기적거리고, 저는 너덜너덜한 랜탈 스케이트에 적응을 못 해서 휘청대는 동안이었습니다.


무척 당차고 호기로운 첫인상이었습니다. 으레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러하듯, 새이를 처음 본 날도 그녀의 세세한 행동을 관찰하며 그가 어떤 유형에 가까울까 좌표를 찍었던 기억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새이는 생근 분류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된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 새이는 형이상학적인 (영적인) 세계와 우리 세계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고오급 통찰을 한 보따리 꺼냈어요. 그녀는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박적인 착한 아이표 배려로부터 자유로워 보였어요.


이후 새이와는 교회 앞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이가 됐습니다. 새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이 비슷해 놀랍니다. 부연설명을 많이 붙이지 않아도 말의 핵심을 이해하고 그에 부합하는 자신의 생각을 나눌 줄 아는 그녀의 능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상할만큼 저와 보조가 맞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새이와는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여도 편하게 말 할 수 있어요.


좀 무서울 때도 있어요. 새이는 분석하고 파고 들어가기를 좋아합니다. 본질을 알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그럴거예요. 그러기 위해 세상 일의 패턴과 기준을 모으고 종합해서 그만의 기준을 도출해 냅니다. 정성스레 조율해 가는 그녀의 잣대가 나에게 향하지 않을까, 가끔은 두렵습니다. 새이의 기준은 높으니까요. 이런 기준을 쌓는 작업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뿜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마치 양날의 검 같은 그녀의 고유한 성질은 상대를 해이해지도록 놔두지 않지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말에 새이보다 더 어울리는 친구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새이는 솔직해져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아요. 발 딛고 사는 이야기 보다는 생각 속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제 관심사를 모두가 알아 듣게 설명하는 과정과, 그 여파를 수습하는 게 귀찮아서 여러가지 구실로 피합니다. 저 사람은 내 말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 분위기 너무 무거워지잖아, 저 사람은 나랑 다르니 설명해도 모를거야, 괜히 마찰 일으키기 싫어 등등. 새이는 저와 세상을 읽는 방식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길을 굳이 걷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처음에는 의아했다가, 안타까워 했다가 결국에는 부러워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기준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고 칩시다. 새이는 우선 그 일에 분노합니다. 저는 자기 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할 일인가 의아해 합니다. 그 일을 놓고 고민하고 기도하는 (괴로워하는) 새이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는 그답게 결국에는 그 문제와 직면합니다. 그 끝이 화해와 감동의 도가니이건 찝찝함이건 상관 없이 새이는 매듭을 짓고 상대와 관계의 한 축을 쌓아요. 그게 너무 멋있습니다.


나의 어떠함에 상관 없이 누군가의 편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친해져야 하는 걸까요. 평생을 함께 살아온 가족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묶여있는 처지라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탄 운명이지요. 그러나 친구는 그렇지 않잖아요.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둘 중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헌신을 보여주는 순간 한 배를 탄 동료가 되는 걸까요. 결혼은 서약에 도장이라도 찍지만 우정은 참 애매합니다. 뭔가 결정되지 않는 상태를 싫어하지만 새이와는 노력해 보고 싶어요. 인생의 보조가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결혼이든 애 키우는 일이든 새이를 따라하고픈 마음까지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재밌는 아이디어로 프로젝트 시작하기를 좋아하지만 지속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혼자 꾸준히 쓸 자신은 없었어요. 그래서 자네 지난한 오타와의 겨울을 알차게 보내 보지 않겠는가, 라는 구실로 새이를 끌어들였습니다. 상황을 꿰뚫어 보는데 일가견이 있는 새이에게 저의 속셈이 들통나는데는 정말 얼마 안 걸렸지요. 아마 처음부터 알고 승낙했을지도 몰라요. ‘나를 이용했어!’ 라고 만날 때마다 외치는 그녀지만 제가 이거 하자, 저거 해보자 하면 이상할 정도로 군말없이 함께 해 줍니다. 제 글을 읽고는 새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감상을 들려줍니다. 누가 더 진심을 담아 서로의 글을 살피는가, 우리 둘 다 새이라는 것을 알거예요. 저는 새이와 함께 무쓸모임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자신에게 빠져 사는지를 느꼈어요. 글에서도 태도에서도 그는 상대에게 더 많은 지분을 주었습니다. 새이에게 미안하고, 그 미안함 때문에 움푹 파인 마음에 고마움을 더 채워 넣어 곱빼기로 감사합니다.




*Rideau Canal 오타와에 있는 운하. 겨울이 되면 스케이트장으로 사용한다.

** 감자튀김에 그레이비 소스와 치즈를 얻어 먹는 캐나다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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