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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11. 2020

03 오타와에서 겨울 나는 법 (생근)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같이 쓰는 글감. 오타와는 캐나다의 수도이다.



우선 겨울나기에 달관한 주민들이 일군 전통을 따르면 된다.




“왜 오타와에 왔어요?"


어떤 일로 이 도시에 오게 되었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대체 어떤 피치못할 사연이 있기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추운 수도에 정착하는 미친짓을 감행하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대답을 최대한 얼버무리다가 시골서 대학을 다녔던 일과 오타와에서 그곳과 비슷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식의 말을 한다. 이 대답에 대부분이 어정쩡하게 수긍하고 찝찝한 여운을 없애기 위해 우리는 오타와의 긴 겨울과 혹독한 추위를 한마음으로 욕하는 의식을 밟는다.


새 직장을 오타와에서 시작하고 첫 겨울. 서플라이 선생님이라고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을 휘어잡을 요령이 없던 나는 하루종일 기싸움을 벌이다 지친 상태로 학교를 나온다. 오타와 버스는 제대로 된 시간에 오는 법이 없다. 특히 영하 30도 눈보라 치는 날에는. 이해한다. 나는 편히 집에 갈 자격이 없다. 지금까지 내가 선생으로서 뭘 잘못했는지, 나라는 인간에게 대체 무슨 모자람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거지? 집에는 울적한 나를 반겨줄 이도 없을테고. 이무렵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이라는 찬양을 듣고 뜻모를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난다. 주님의 세계라는 곳이 매우 안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오타와 겨울은 혹독하다기 보다는 더럽고 치사하다. 오타와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타와에는 고약한 날씨의 화신이 존재하며 당신은 반년이 넘는 그의 실력행사로부터 자신의 몸뿐만이 아닌 마음도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오타와는 겨울에 굴하지 않는 레지스탕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고장이다. 우선 겨울나기에 달관한 주민들이 일군 전통을 따르면 된다. 리도 카날에서 열리는 Winterlude는 누구나 한번쯤 빙판 위에서 개고생 하게 만들만큼 유혹적인 겨울축제다. 너덜너덜한 하키 스케이트를 빌려신고 온 몸을 휘적이며 오직 목표의식과 오기로 몇 키로를 달려오면 결코 즐겁다고 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게 겨울 활동의 묘미다. 오롯이 재미로 꽉찬 느낌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모종의 환경을 견뎌내고 결국엔 즐거움을 쟁취했다는 행복한 피로감이다. 다만 이 고생을 함께 겪어 알아줄 이가 없다면 고행으로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다. 이 레시피는 겨울나기에 이골이 난 캐나다인 한 명이라는 재료가 들어가면 훨씬 수월해진다. 그들도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쳤을 터, 무지가 불러오는 작은 불행들을 막아줄 것이다.


다음으로 예술혼이 있는 사람에게 효과있는 방법이다. 피부조직과 콧구멍에게는 무자비한 겨울이지만, 눈만큼은 호사를 누리도록 허락하는 것도 겨울이다. 왜 그러한지를 설명하기 전에 고백하자면 나는 오타와에 오기 전에는 겨울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펑펑 내리는 눈이야 모두가 입을 모아 예쁘다 해주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자란 나는 겨울에 관해서는 나무가 헐벗었다느니, 모두가 웅크리고 있다느니, 생명이 태동하기 전의 적막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주로 듣고 자랐다. 겨울은 풍성한 봄이 오기까지 견뎌야 하는 과도기일 뿐이었다. 반면 오타와에서는 겨울이 사계절 중 주연급이다. 겨울이 여유롭게 제 분량을 뽑아내는 동안 나는 겨울의 이모저모를 충분히 살펴보았다.


다채로운 색이 시신경을 혼란에 빠뜨리는  여름과 달리, 겨울은 선과 면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겨울 그림을 그리며 깨닫게  사실이다. 다른 계절을 그릴 때는 색이 빠지면 왠지 아쉬운 반면, 연필  자루만 있어도 겨울의 많은 것을 담을  있다. 해뜨는 출근 시간 이층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중학교  미술 시간에 붓의 농담이란 말은 붓이 웃긴 얘기를 하는  아니라, 색의 짙고 옅은 정도를 말하는 거라는 선생님의 시덥잖은 농담이 떠올랐다. 나무의 농담과 하늘의 농담, 그리고 해질녘의 짙은 실루엣이 하도 재미있어 넋을 놓고 보게된다. 이렇게 조용한 디테일 뒤로 기다렸다는듯이 하늘빛이 쨍하게 피어난다.  친구가 겨울 하늘은 특별하다고 했을  그의 편향된 겨울사랑 때문에 눈에 보정이라도 일어나나보다 했다. 이제는 친구의 말에 동의한다. 다른 모든 것들이 색감을  줄여 조용한 가운데 하늘이 돋보이는 건지, 정말 과학적으로 겨울 공기가  맑아서 하늘색이 선명하게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겨울이 그려내는 화폭을 담으려면 손과 발이 고생할 테지만 가치있는 작업이다.






여전히 겨울은 고약하고, 봄이 다가올수록 그 성질머리는 더 더러워지지만 날씨를 배경화면 취급하지 않고 욕을 할 말정 대화해야 마땅한 상대로 대한다면 겨울 살이가 한결 나아질 것이다. 날씨가 불러오는 불행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아야 한다. 불행의 희망스런 이면을 함께 찾을 사람을 구하자. 리도 카날에서 함께 개고생을 한 후에 위로의 국물을 찾아 훌훌 떠날수 있는 겨울이 오면 오타와에 온 피치못할 사연도 의미를 찾게될지 모른다.



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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