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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19. 2020

04 찬양 (새이)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전쟁 같은 로스쿨 1학년이 끝나고
방학을 맞아 돌아온 한국이었다.




여의도에 있는 본 교회 대신 집 앞에 있는 기도처에 주일예배를 드리러 갔다. 혼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가족들은 본당으로 갔을 것이다.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평소에는 한껏 공을 들이던 외모에도 힘을 뺐다. 그렇게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집사님들, 권사님들 사이에 앉아 텔레비전으로 흘러나오는 설교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설교 중간중간에 꼭 찬양을 넣어서 같이 부르셨는데, 그날도 우리는 말씀을 듣다가 찬양을 불렀다.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우느라 첫 단어 빼고는 따라부르지도 못했다. 그렇게 예배가 끝날 때까지 옆에 사람들의 관심이라도 끌까 봐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울었다.


전쟁 같은 로스쿨 1학년이 끝나고 방학을 맞아 돌아온 한국이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마무리한 8개월이었지만 한국에 돌아온 나는 만신창이였다. 7년 만에 돌아온 한국을 다시 떠나야 하는 발걸음도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나님만 붙들고 간 나를 하나님은 독수리가 새끼를 허공에서 떨어뜨려 버리듯 바닥으로 떨구셨다. 될성부른 독수리 새끼는 다시 날아올랐겠지만 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제 갓 태어난 새끼에게 그 높은 하늘은 얼마나 무서웠을 것이며, 나를 붙들고 있던 단 하나의 손길이 자신을 놓았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날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서는 얼마나 절망했을 것인가.


이 찬양을 듣는 순간 눈앞에 떠오른 건 오랫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의 모습이었다. 당시에 혈루병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진 데다, 오랫동안 그런 병을 달고 살았으니 동네에서 얼굴을 다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얼굴을 가리고 밖에 나갔겠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리를 그녀도 들었다. 10년 넘게 모든 것을 다 해보아도 차도가 없었고, 그에 따라 재산도, 가정도, 건강도 모두 잃었던 그녀에게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지쳤을 것이다. 큰 병을 오래 앓았으니 체력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고, 부정한 병이라 하여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마음도 메말랐을 것이다.


그 여인의 자리에 내가 있었다. 고막이 약해지고, 손톱이 바스러지고, 갈비뼈를 잇는 연골에 염증이 생기도록 쏟아부었던 시간 끝에 남은 거라곤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 성적과 지친 몸 밖에 없었다. 나를 그렇게 두신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내가 돌아갈 곳도 결국 그의 곁이었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한 발짝도 더 못 내딛는 상태로 나는 그 기도처에 주저앉아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이미 예수님이 왔다는 소식이 퍼져 사람들이 그를 겹겹이 둘러쌌다. 어서 그 무리 안에 들어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서로 그 덕을 보려는 자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할 뿐이다. 저 옷자락이라도 잡자. 귀신들린 자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는 분이라 하니 옷만 잡아도 나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더는 나에게 남은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잡은 예수님의 옷자락. 12년을 앓아 온 병인 만큼 그 병이 떠날 때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이 뒤를 돌아 나를 찾으신다.


내가 떨며 그 앞으로 나아간다. 할머니 권사님 옆에 앉아 바닥으로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는 나를 그분이 똑바로 보신다. 그의 옷자락에 간신히 닿아있는 내 손을 보신다. 내 마음을 살피신다. 마침내, 주저앉은 나를 보내며 말씀하신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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