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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Sep 30. 2020

05 어제, 오늘 (새이)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따로 쓰는 글감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


시계가 12시를 넘어가는 깊은 밤


그토록 기다리던 퇴근 시간, 잠에 스르륵 빠져드는 미지의 순간, 연인과 하는 작별 인사, 일몰과 일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제와 오늘을 구분 짓는 시간이다. 우리는 저 시간을 분필 삼아 어제와 오늘 사이에 선을 긋는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다. 일단 단어부터 다르잖아. 물과 불, 가위와 바위, 님과 남. 모두가 모양은 비슷할지언정 아주 다른 뜻을 가지고, ‘배’, ‘눈’, ‘다리’처럼 한 단어에도 몇 개의 뜻이 있는 마당에, 엄연히  단어가 다르면 뉘앙스라도 달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계가 12라는 숫자를 한밤중에 넘어간다고, 내가 그깟 짐 좀 챙겨서 집으로 뛰어간들, 어제와 오늘이 당연히 달라지진 않는다. 나는 어제 일했던 곳으로 오늘도 가서 같은 일을 하고, 어제 맘에 들지 않던 내 모습은 오늘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어제 품고 있던 슬픔은 해가 진다고 가라앉지 않는다. 


그것뿐이랴. 수많은 ‘어제’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 말은, 나는 ‘어제’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삶은 참으로 끈질기기도 한 것이, 그 ‘어제’들은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떨쳐내기가 어렵다. 내가 기억하기로 맘을 먹든 그냥 잊어버리든,  내가 맞다고 인정을 하든 못 본채 외면을 하든, ‘어제’들은 내 삶 곳곳에 들러붙어 오늘의 어제를 만든다. 어제의 상처가 매일을 붙드는 분노가 되기도 하고, 어제의 기쁨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응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본 사람은 별로 없지만  모르는 사람은 없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을 보자. 그 예쁜 비비안리가 흙 위에서 한참 울다가 일어나서는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하는 장면이다. 극 속의 비비안리가 맡은 역할, 스칼렛 오하라는 아주 되바라진 부잣집 딸내미로 태어났으나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  갖은 시련을 겪는다. 두 차례의 전쟁을 겪고,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집안의 가장이 되고, 사람까지 죽인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에 그녀의 삶 내내 자신을 붙들고 있던 사랑까지 잃고 외치는 것이 바로 ‘내일의 태양’인 것이다.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과거, 흙 묻히며 울 수밖에 없는 오늘의 끝에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다. 내일의 오늘이 어제가 되지 않게 하겠노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제야 어제는 어제로 남고, 오늘이 탄생한다. 그 장면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사실은 모두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나의 발목을 붙잡는 어제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태양 같은 오늘을 붙들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했던 것이다. 어제의 아픔이 오늘의 슬픔이 되지 않기를, 어제의 기쁨이 오늘의 응원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마무리를 기다린다. 시계가 12시를 넘어가는 깊은 밤, 퇴근 시간, 잠에 빠져드는 순간, 연인과 하는 작별 인사, 일몰과 일출. 아쉽지만 기꺼이 받아 드린다. 작은 분필을 들고, 어제와 오늘 사이에 선은 못돼도 작은 점이라도 찍고자 어제의 끝에서 오늘의 태양을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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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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