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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근 Aug 26. 2020

02 집 (새이)

초짜 서른, 두 여자의 글쓰기 프로젝트 <무쓸모임>




같이 쓰는 글감, '집'





언제부터인가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곳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밤새 내내 머리를 짓누르던 두통에 겨우 눈을 떴다. 웅크리고 자던 소파의 커버가 보인다. 다시 눈을 감았다. 숨을 쉬려고 해도 콧물로 꽉 막혀있는 탓에 입으로 숨을 쉬느라 입안도 바싹 말랐다. 정신이 없다.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던가? 열에 달뜬 눈을 겨우 떴다 감았다 하며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한국 본가의 마룻바닥은 어찌나 깨끗한지 맨발로 다니면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엄마는 매우 성실한 면이 있어서,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들을 정해놓고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들을 해내는 식이었다. 집안 전체 청소(화장실 포함)는 월요일, 물걸레 청소는 화요일과 목요일, 빨래는 수요일과 금요일처럼. 그래서 엄마가 있는 집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으며, 먼지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다시 몬트리올이다. 마치 연말 행사라도 치르듯 내 몸은 갑자기 모든 기능을 중지하며 휴무를 선포했다. 그것도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내가 큰맘 먹고 여행 온 이곳에서 말이다. 교회에서 친한 언니가 몬트리올로 이사한 것을 핑계로 연말연시를 언니 집에서 보냈는데, 속절없이 아파 버린 탓에 계획했던 여행 대신 요양을 하며 보냈다. ‘요양’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시간을 보냈다. 언니는 스님처럼 말도 잘 안 하고 음식도 한 주먹만큼만 먹었는데, 그게 꽤 좋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음식을 많이 먹지 않아도, 편안하고 배불렀다.


그러고 보면 종종 내 생각을 내가 해석해야 하는 때가 있다. 내가 ‘엄마 보고 싶다’, 혹은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엄마가 보고 싶고 집에 가고 싶은 거라기보다 ‘힘들다’, 혹은 ‘도망가고 싶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피난처라고 생각했던 곳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본가와 ‘내 집’이 분리되고, 엄마 살림과 내 살림이 나누어지고, 본가의 내 방이 손님방이 되면서 영원한 내 집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낯설어진 것이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그게 타지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이나 서러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돌아갈 곳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손을 열이 오른 이마에 대고 간신히 입으로 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말기를 반복하는데 언니의 기척이 났다. 언니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서 큐티책을 펴고 그날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들었으면 했는지 소리 내 읽어주었다. 고요한 집에서 언니가 말씀 읽는 소리만 울렸다. ‘찬양하라.’ 그날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2018년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 시간이 왜인지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 종종, 꾸준히 생각한다. 일단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강아지처럼 끙끙거리며 소파베드에 누워있는, 아파서 온몸이 퉁퉁 부은 나에게 해주실 말씀이 ‘찬양하라'라니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생각났다. 그런 시간이 그 후로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피부로 도저히 느끼기 어려울 때, 그래서 그저 머리로라도 그렇다고 믿어야 할 때가 그러지 않을 때보다 더 많아졌다. 내 시선이 닿는 내 삶의 반경엔 보이는 것이 없어서 눈을 감고 위에서 비치는 빛을 봐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그 말씀을 생각했다. ‘찬양하라.’ 이곳에 내 몸 맘 편히 누일 곳 없어도, 사실은 찬양할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여전히 캐나다 집에서 문득 외로워질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엄마 시스템으로 되어있는 한국의 본가에서 또한 내 자리가 점점 작아진다. 그럴 때는 이 땅에 있지 않은 진짜 집을 생각한다. 내 눈에 아직은 보이지 않는 집에서는 이 마음의 구멍이 없어지겠지 하고, 그곳에서는 내가 무엇을 위해 찬양하고 있는지 마침내 알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도 내 진짜 집을 눈 감고 보는 연습을 한다.



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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