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1 들어가며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나는 ‘배운’ 기억이 없는 언어가 있다.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걸었을 뿐이다. 언어는 교과서의 문법이나 발음 연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기처럼 스며들어 내 눈과 귀 그리고 몸이 먼저 받아들였다.


1970년대 후반,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병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문밖에서 기다렸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출생신고서에는 ‘한국어’가 모국어로 기록되었지만, 내 안에 처음 자리 잡은 언어는 전혀 달랐다.


내가 처음 만난 언어에는 글자가 없었다. 노트와 펜도 없었다. 바람을 타고 온 또르띠야 냄새, 안뜰 너머로 들려오던 이웃의 목소리, 내 뺨을 감싼 손바닥의 온기—이것들이 나의 첫 언어였다.


“¿Ya comiste?”(밥은 먹었니?)


멕시코시티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철제 벤치에 앉아 들은 말은 여운이 오래 남았다. 우윳빛 하늘과 모래 먼지로 흔들리던 그네, 낮게 깔리던 대화들이 자장가처럼 흘러보던 아침 풍경.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 비스킷을 건네며 다시 묻는 질문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진심 어린 마음의 전달이었다.


아무도 내게 행복한지, 고향이 그리운지 묻지 않았다. 얼굴이 달라 보인다고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저 밥은 먹었냐고만 물었다. 그 질문 속에는 ‘너는 내게 소중하다’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파나마에 정착한 후, 나는 “ahorita”라는 단어를 배웠다. 이 말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도 아닌, 기다림과 여유를 의미한다. 덕분에 시간은 시계의 바늘이 아니라 공기 속의 간격처럼 흐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왜 말을 못 알아듣니”라고 꾸짖던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답하고 싶었다.


“저는 듣고 있어요. 이 땅이 전해주는 리듬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뿐이에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언어는 단어뿐만 아니라 타이밍과 숨결도 중요하다는 것을.


스무 해 후, 뉴욕에서 중남미 지역학을 전공하며 이민과 정체성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러나 책으로 표현한 언어는 어린 시절 몸으로 익힌 감각에 비해 항상 뒤처졌다. 언어는 단순히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식탁에서의 손길, 말이 막힐 때 보이는 눈빛, 그 모든 순간에 이미 언어가 깃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한국인으로서 중남미에서 자란 경험이 어땠나요?” 그 질문은 항상 한 가지 답을 기대하지만, 나는 망설이게 된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어요.” 또 다른 날에는 “침묵으로 응답하는 법을 배웠어요.” 또는 “이해받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모든 답은 사실 내 안에 함께 존재한다. 낯선 식탁에서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엔 쉽게 대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 “밥은 먹었니?”라고 물으면 나는 웃는다. 배가 부른 탓이 아니다. 그 순간,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스페인어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옮기려고 노력한다. 'solidaridad', 'confianza', 'compromiso'는 각각 연대, 신뢰, 책임으로 번역되지만, 그것들은 내게 마치 빌린 양복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런 번역은 햇살의 무게나 먼지 냄새 같은 감각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연재를 시작했다. 번역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떠올리기 위해서.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함께했던 순간을 다시 체험하기 위해서이다.


내게 다가온 것은 언어가 아니라 감정의 문법이었다. 나는 아직 그 문법을 배우고 있으며, 이제는 그것을 돌려주려고 한다. 마치 어깨 위의 손길이나, 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처럼.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국경과 언어의 경계에서 느낀 감정을 적은 기록이다. 나는 학문보다는 삶에서 배운 이 언어를, 독자와 함께 다시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다.


02 <멕시코 멕시코시티>를 기대해 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