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st as Repetition
“Mi deh yah, yuh nuh haffi worry.”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하늘은 이미 색을 변경하고 있었다. 교문 옆 경비실 뒤에는 분홍빛이 퍼졌고, 철조망 위에는 금빛이 번쩍이며 잠시 떠올랐다가 곧 회색으로 사라졌다.
“미 데 야,”(나 여기 있어.)
아이들 학교 교문에서 복장을 점검하던 미스 레이가 말했다.
“유 누 하피 워리.”(걱정하지 마.)
그녀는 눈을 한 번 깜빡이며 그림자 속에 몸을 기대었다. 이 행동은 위로나 약속이 아니라, 단순히 존재 그 자체의 선언처럼 보였다.
그날 밤, 나는 거실에서 혼잣말처럼 그 문장을 반복했다. 천장 선풍기가 삐걱이며 돌아가고, 아이들의 운동화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미 데 야, 유 누 하피 워리.
우리는 자메이카를 레게 음악과 빠른 스프린터로 연상했지만, 실제로 맞이한 것은 더위, 천둥, 정전, 잠긴 교문, 그리고 빠르면서 낮은 톤의 리듬 목소리들이었다.
큰아들이 물었다.
“아빠, 왜 저 벽은 저렇게 높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덜 파인 도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그는 같은 질문을 다시 하지 않았다. 나는 말보다 몸짓을 관찰하며 배우기 시작했고, 침묵이 자연스럽게 마침표 역할을 했다.
나는 처음에 모든 것을 상세히 설명하려고 했다.
“교문 밖에서는 말하지 마. 내가 건널 때만 길을 건너. 가까이 있어.”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내 말을 끊고 “나 알아”라고 힘 있게 말했다. 이는 반항이 아니라 리듬의 변화였다. 그는 내 말을 듣기보다 내 반복되는 몸짓을 관찰하고 배운 것 같았다.
우리는 매일 같은 길인 호프 로드를 걸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도시락을 싸고 약속했었다. ‘세 시에 만나요’라는 약속이었다. 비록 나는 ‘내가 너희를 지켜줄게”라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은 파파인 근처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다. 나는 몸을 돌려 두 아이를 감싸 안았고, 노점상이 웃으며 말했다.
“유 코리안, 근데 유 디 플레이스 잘 아는 사람처럼 움직이네.”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 트라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라이가 아니야. 유 하고 있어. 유 애들 옆에 있어주잖아. 그게 신뢰야.”
그 말은 비에 젖은 옷보다 더 오래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킹스턴에서 신뢰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유지되는 것이었다. 미스 레이는 항상 무표정했지만, 아이들 이름을 틀린 적이 없었다. 내가 열 분 늦었을 때도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애들 기다리고 있어요. 안전해요.”
그리고 잠시 후에 덧붙였다.
“항상 오시잖아요. 애들도 알아요.”
놀랍지 않아서, 오히려 더 깊은 신뢰가 쌓였다.
아들이 놀이터에서 무릎을 다쳤을 때, 나는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울지 않았고, 내가 “안아줄까?”라고 묻자, 그는 “아니요, 그냥 확인했어요”라고 답했다. 그의 마음에는 내가 옆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특별한 약속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같은 손길과 같은 길, 그리고 같은 시간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바로 신뢰를 쌓는 과정이다.
서울이었다면 나는 규칙을 만들고 예외 처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킹스턴에서는 설명보다 돌아온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블루 마운틴 너머로 해가 떠오르던 아침, 큰아들이 말했다.
“아빠가 말 안 해도 알아요.”
나는 그에게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단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함께 서 있었다. 어떤 말이나 대사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지켜줄게”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가 곁에 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14 <중남미 어딘가에서>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