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hythm as Shelter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무거운 느낌이 깊게 감싸왔고, 숨 쉴 때마다 소금기와 부겐빌레아 향이 섞였다. 아이들은 졸린 눈으로 이동했지만, 처음 만난 섬의 공기에는 분명한 감탄이 묻어났다.
“이 섬은 달라, 아빠.”
나는 아이의 또박또박, 음절마다 꼭 씹어 말하는 목소리에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시간표를 들고 도착했지만, 캐스트리스의 시계는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조수와 해무, 바람의 호흡이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냈고, 손목시계의 숫자는 단순한 표시에 불과했다.
첫 저녁, 숙소 창문 너머로 바다가 들려왔다. 선풍기 소리 뒤에 고요함이 찾아왔으며, 아이들은 자장가나 속삭임 없이 잠들었다. 그들을 잠들게 된 것은 파도와 바람, 그리고 세상의 리듬이었다.
이튿날, 작은 아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고기를 나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박자에 맞춰졌고, 그 모습은 마치 그들이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애… 저 사람들 리듬으로 춤추네, 아빠.”
큰아이가 내 옆에서 중얼거렸다. 놀람이라기보다는 발견한 듯한 목소리였다. 웃음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리듬 위에서 흘러갔고, 몸짓은 별다른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해변의 모닥불 옆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한 남자가 스틸팬을 두드리자, 금속 소리가 파도처럼 솟구쳐 우리 발밑에 꽃잎처럼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언어로는 깨울 수 없는 감각이 그들 안에서 일깨워지는 순간이었다.
청동빛 피부를 가진 여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일랜드 타임은 계획보다 감각을 가르쳐줘요.”
우리는 화산 정상이나 관광지 대신 소금기 밴 선창을 걸었고, 파스텔빛 집들이 늘어선 언덕을 천천히 올랐다. 해질 무렵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아이들은 시계 대신 조용함을 배웠다.
시장 골목에서 코코아를 팔던 노인이 설탕이나 포장 없이 초콜릿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가는 길에 먹어.”
그 친절한 리듬에는 번역이 필요 없었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들이 마치 바다의 바람처럼 사라졌다. 결국 나는 망고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아이와 함께 바람을 느꼈다. 아이가 내 어깨에 기대자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너는 안전해.”
그 말조차 바람의 박자에 섞여 사라졌다.
섬은 명령하지 않고 대신 조율을 요청했다. 아내가 과일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으며 상인과 조화를 이루려고 했는데, 그 손길에는 연약함이 아니라 깊은 존재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 저녁, 우리는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아이들은 맨발로 모래를 잡았고, 하늘은 점점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의 리듬에 맞췄기 때문에 함께 있어.”
그 순간 외로운 새가 울었고, 아이들이 그 소리를 따라 흉내 냈다. 새와 우리 사이에도 리듬이 자리 잡았다. 돌아가면 다시 시계가 울리겠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 저녁이 남아 있다.
나는 세인트루시아에서 리듬이 아이를 안을 수 있고, 고요함이 양육이 될 수 있으며, 존재 자체가 말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13 <자메이카 킹스턴시>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