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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중남미 어딘가에서

Words I Couldn’t Bring Back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키보드는 조용히 깜박였다. 하얀 화면 위 검은 커서가 망설임처럼 깜빡였고, 방 안은 고요했지만 구석에 있던 낡은 선풍기가 불규칙한 소리를 냈다. 바깥에서는 바나나 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바람의 흔적을 남겼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멈췄다 반복되었다.


나는 발표 원고를 작성해야 했다. 주제는 “중남미 국경을 넘어서 공동체를 연결하기"였으며, 각주와 인용문으로 다듬어진 문장을 원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책이 아닌 거리, 부엌, 광장에서 배운 단어들이 떠돌고 있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Solidaridad. 스페인어에서 이 단어는 숨결처럼 흘렀다. 가볍게 시작해 마지막에 무게를 남겼다. 나는 이 단어를 도시 곳곳에서 만났다. 키토의 왓츠앱 대화창에서, 리마 성당의 기도 소리 속에서, 산티아고 회의 노트의 여백에서.


그러나 한국어로 번역하자마자 그 단어는 말라버렸다. ‘연대’라는 단어는 차갑고 행정적인 느낌을 주었다. 내가 느꼈던 따뜻한 속삭임은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 단어를 지우고 다시 적기를 반복했다.


처음 solidaridad를 접한 건 보고타의 늦은 밤이었다. 동료가 냅킨에 싸인 엠파나다를 내밀며 말했다.

“걱정 마. Solidaridad잖아.”


그 말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는 몸짓과 함께 나왔다. 친절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고, 호의라는 말로는 넘쳤다. 이는 설명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다.



키토에서는 이웃 여성이 낡은 히터를 내게 빌려주었다.

“Veci. 이거 두고 가.”


그녀는 내가 춥냐고 묻지 않았다. 감사 인사도 기다리지 않았다. 몇 주 뒤 히터를 돌려주려 하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걸 위해 우리가 있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쓰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기억했다.


다른 날, 산티아고 회의장에서 한 고위직 인사가 내게 발언 전에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당신과 compromiso가 있어요.”

그 말이 충분했다. 한국어의 ‘약속’은 문서, 추적, 책임, 사과를 포함하지만, 'compromiso'는 더 조용하게 존재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반복하는 동안,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지속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단어들을 옮길수록 믿음은 점점 희미해졌다. Solidaridad는 구호로 바뀌었고, confianza는 계약처럼 굳었으며, compromiso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내가 배운 것은 그 반대였다.


볼리비아에서 신발이 젖은 청년이 아무 말 없이 버스의 마지막 자리를 내어주던 순간, 페루 시장에서 말을 묻지 않고 네 개의 무화과를 건네던 여인의 손길, 자메이카에서 아들이 지나갈 때 가슴에 손을 얹고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던 경비원의 낮은 목소리.


그들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이 먼저 말을 했고, 그들의 침묵이 의미를 완성했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공기에는 비에 젖은 흙냄새가 가득했고, 아이들은 공기가 빠진 공을 차며 뛰었으며, 신발 바닥은 아스팔트를 긁었다. 한 남자가 인도를 쓸고 있는데, 내게 물었다.

“Todo bien?”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Todo bien.”

그것은 거래가 아니라 나눔이었다.



시장에서 망고를 산 후, 여인은 조용히 종이로 감싸주었다. 나는 동전을 세지 않고 주었으며, 그녀는 크게 웃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 문장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La solidaridad no se explica, se demuestra.”(연대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고.)


어느 날 밤, 아이가 물었다.

“아빠, solidaridad가 뭐야?”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말했다.

“누군가 이유를 말하지 않고 널 도와주는 거야.”
“학교의 미스 레이처럼?”
“그래, 그거야.”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안다. 어떤 단어들은 언어의 한계를 넘었을 때 박자와 온기를 잃는다. Solidaridad는 전략이 되고, confianza는 정책이 되며, compromiso는 무게가 된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들을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내 삶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을 Veci라고 부르던 순간, 이유 없이 곁에 있던 동료의 침묵, 그리고 함께 걷던 아이의 발걸음까지도.


나는 그 단어들을 엄격히 정의할 수 없지만, 살아내면서 느끼는 경험으로 받아들인다. 글로 쓰기 전에 이미 몸으로 익힌 것. 번역되지 않아도, 삶 속에서 계속 증명되는 것.


15 <끝맺으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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