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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끝맺으며

Speaking Without Language

by 유엔이방인 김상엽
“Las palabras no se traducen. Se recuerdan.” (말은 번역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이다.)


새벽이었고, 아이들은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의 숨결은 하나의 리듬처럼 일치했고, 방은 조용했지만 텅 빈 것은 아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지금까지 쓴 원고를 펼쳤다.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귀를 기울여, 글에 들어 있는 내 목소리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언어의 경계에 서서 망설였다. 멈칫함과 눈빛, 불안한 떨림을 글로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오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었다.


창밖의 바람이 키토의 밤을 불러오고, 낡은 선풍기 소리가 산타크루즈 성당을 떠올리게 하며, 수도관의 물소리가 과달라하라의 골목을 연상시켰다. 이는 은유가 아니라 회상이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이미 본 적이 있으며, 그 냄새와 공기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리마에서는 항상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녔다. 번역하기 어려운 문장을 들으면 기록했고, 목소리 톤과 눈빛, 심지어 날씨까지 적어 두었다. 잊힐까 두려워서였다.


어느 카페에서 만난 할머니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씀하셨다.

“Hay cosas que solo se entienden desde el corazón.”(가슴으로만 이해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 말이 내게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즉시 적어 두었다. 가슴에 남은 떨림을 문장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보고타에서는 ‘정(情)’의 의미를 설명하려 애썼다. 사랑이나 우정보다 오래 함께한 관계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온기다. 하지만 현지 자원봉사자가 내 말을 가로챘다.

“아, 누군가가 네가 원한다고 묻지 않고 커피를 가져다줄 때 같은 거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남아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번역을 완전히 포기하게 된 계기는 자메이카였다. 내 아들이 무릎 부상으로 울지 못하고 꼼짝 못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Mi hold him ’til him breathe ease out.”(아이 숨이 고르게 풀릴 때까지 안고 있었어요.)


나는 그 말을 한국어로 다시 표현하려 했지만, 번역은 늘 어색하거나 과장되기 쉽다. 그러나 리듬과 호흡, 그리고 순간의 체온은 언어 없이도 충분히 전달되었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안겼던 순간들이 겹쳐졌다. 비록 번역할 수 없었지만, 이해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번역이란 의미를 전달하는 외모를 옮기는 일이지만, 어떤 단어들은 그 외모가 아니라 온기와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Solidaridad는 더위 속에 있었고, Confianza는 기름 냄새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자라났으며, Compromiso는 말 대신 반복되는 몸짓 속에 존재했다. 그들은 사전의 정의로는 살아남지 못하지만, 거리와 식탁, 침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한국에서 어머니께 “confianza'라는 말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잠시 듣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 말 안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게 해주는 사람. 그 말은 내가 찾던 번역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책장에 꽂힌 보르헤스와 볼라뇨의 문장은 이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엽서처럼 느껴졌다. 부재중에도 그 존재를 증명하는 작은 기념물로써, 시간이 흘러도 빛의 각도와 보는 습관처럼 잔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느 날 큰아들이 물었다.

“아빠가 제일 좋아했던 스페인어 단어는 뭐예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단어는 아니었어. 쉼표 같은 순간이었지.”


아들이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이에요?”


나는 무릎 위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말했다.

“누군가 힘든 말을 하려다 멈춘 순간. 그런데 그 멈춤만으로 다 알 수 있었던 때.”


아들은 조용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기 너무 슬퍼서 그냥 옆에 있어주는 거랑 비슷해요?”


나는 속삭였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묻지 않는다.

“이걸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하지?”


그날의 공기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 침묵이 어떤 울림을 전했을까? 그 눈빛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나는 용어집을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가볍고 오래 지속되는 잔향 같은 감정을 모았다. 말이 사라지고 여행이 끝나도, 기억이 희미해져도 남는 것은 단어 그 자체가 아니라, 단어가 내게 준 감정이었다.


비록 이름은 몰랐지만, 나는 그것을 품고, 마주하며, 불렀다. 그리고 아마 그것이 가장 진실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이제 <중남미에서 배운 감정의 언어>를 마칠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이 글들은 완벽한 번역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번역하려 하지 않은 멈춤과 시선, 몸짓들을 천천히 모은 조각들이었습니다. 버스, 회의실, 부엌 같은 일상의 공간에서, 이 감정의 파편들은 이론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번역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감정들이었습니다.


이 연재의 각 장은 감정이 언어처럼 ‘장소(공간)’를 통해 형성된다는 조용한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Solidaridad는 식탁에서 주고받는 음식에 스며들고, Confianza는 한 박자 늦은 침묵 속에 깃들며, Compromiso는 말없이 돌아오는 몸짓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명료함이 중요한 시대에, 저는 오히려 ‘모호함’의 가치를 믿게 되었습니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몸짓이 꾸준히 의미를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가 다음 세대에 줄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완벽히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단어가 부족할 때에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단어들을 사전에 기록하려 하지 않고, 대신 삶의 경험을 통해 기억하려 합니다. 두 아이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모든 것이 언어로 다 표현되지 않아도, 삶의 감정을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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