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에겐 주식밖에 없었다
도대체 흙 수저는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까?
내가 20대 시절 '흙수저'라는 말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마도 '흙수저'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학생 시절, 친했던 동아리 친구의 집에서 술을 먹고 자주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의 집은 경기도 어느 역 근처의 아파트였고, 나는 그 친구의 집이 너무나 넓고 좋아 보였다. 그때까지 아파트에 살아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집이 궁궐같이 좋아 보였고, 친구들에게도 내심 그 친구의 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 당시 같은 동아리였고 지금의 와이프의 이야기에 의하면 내 말로 인하여 그 친구가 대단한 재력가인 줄 잠시 착각했었다고 한다. 그냥 경기도의 33평 아파트였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그렇게 보통의 재력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하며 대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4학년이 되었다.
나는 온 세상과 우주의 기를 받은 운빨로 대기업에 취직하게 되었다. 흙수저에서 동 수저쯤으로 올라왔다고나 할까?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은 나를 마치 흙수저에서 꺼내 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의 재산상태를 보면 역시나 흙수저에 머물고 있었다. 회사 생활을 2년 정도 하였을 때, 당시 월세를 살던 우리 가족은 월세의 부담을 줄이고자 집을 사기로 결정하였다. 2006년 1억 정도 하던 빌라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였고, 회사원이던 누나와 나,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의 돈을 모두 모았다. 내가 2년 동안 번 2천만 원과 누나 돈 천만 원을 보탰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합친 돈이 5천5백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5 가족 중 4명이 경제생활을 하고 있었음에도 1억 집 구매에 4천5백만 원의 빚을 져야만 했다. 부모님이 30년 음식장사를 하시면서 수중에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 2천5백만 원과 지금도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당시에도 거의 사기를 당하듯이 구매한 그린벨트 땅이 전부였다. 다행히 집을 구매하기 전에 빚은 없었으니 그나마 '양호한 흙수저'였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껴 쓰는 습관이 몸에 베였고,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재테크에 대해 남들보다 일찍 눈을 띄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경제 관련 서적과 부자가 되는 조언이 담긴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었지만 책에 나오는 조언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안드로메다 같은 이야기만 로만 느껴졌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만나라” / “인맥관리를 해라” /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 “부지런해라”..
모두 너무나 맞는 이야기이다. 부자 옆에서 부자의 생각과 행동을 배우고 부자의 투자 패턴을 따라 하면서 부지런히 좋은 인맥을 많이 만들면 나를 부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흠... 나는 소극적이고 게으른 사람이구나. 내 주위에 부자가 있었나?'
내 주변엔 아무리 둘러봐도 부자가 없었다. 특히 가까운 친척일수록 가난했다. 마치 자석이 철을 당기듯 가난이 가난을 당기는 것만 같았다. 친척형의 예를 들면, 알뜰살뜰 안 쓰고 아껴서 모은 돈을(물론 우리 부모님 돈도 포함해서) 어느 사기꾼의 주머니를 채워주며, 누가누가 더 가난해지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부자가 되는 책을 읽고 몇 가지는 따라 해보기도 하고 고쳐보려고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구나'
변화에 대한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뜬 구름 잡는 부자 되는 방법 말고, 당장 돈이 될 만한 투자가 필요했다. 경험과 지식은 부족한데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만은 “불나방”이었다. 실체가 있는 투자가 필요했다. 당장 돈을 벌게 해 줄 것 같은 '주식'과 '부동산'이 떠올랐다. 부동산은 자금부족으로 당시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였고 남은 건 주식이었다. 부자에 대한 열망은 나를 주식투자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안내하였고, 회사 생활 초년생에 주식에 투자하는 초보 투자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주식투자를 꾸준히 하면서 월급을 꾸준히 모아나가니, 2010년대 초반, 대출을 왕창 끼면 경기도의 아파트를 구매할 자금이 모이게 되었다. 부동산과 주식투자 사이에서 어떤 투자가 나를 좀 더 빨리 부자의 길로 이끌지 갈팡질팡 하던 나는 책 속에서 그분을 만났다.
“선대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콘 같은 분이셨다. 물론 그분은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부동산 폭락을 주장했다. 나도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같은 어쭙잖은 공부를 토대로 부동산의 가격 하락에 배팅을 하고 있었다. 나의 부족했던 공부와 책 속의 나의 멘토였던 그분의 이론으로 부동산은 나의 투자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투자 방향을 정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투자 대상은 주식만 남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회사 월급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이다.
“주식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