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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08. 2022

누구

나는 네가 지난 SNS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SNS(Social Network Services)는 21세기 현대인들에게는 일종의 취미이고, 일종의 습관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일상 포스팅을 삭제하고, 일 년 단위로 정리했다. 뭔가 너무 보여지기 쉬운 것만을 이야기하다가 정작 중요한 건 스쳐지나간 게 아닐까 하는 무서움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아사이 료 작가의 『누구』라는 소설은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소재로 취준생을 대표로 한 현대인을 이야기한다.


  "너는 누군가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네가 아닌 누군가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 그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말이 감정의 속도를 타고 그 말의 속도에 감정이 타, 리카는 점점 멈추지 못하고 있다.
  "다쿠토는 언젠가 누군가로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어."
  리카는 내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포기하는 척하지만 포기하지 못하지. 올해도 주위에는 이미 포기했다고 말하면서 실은 연극 관련 기업에 몰래 지원하고, 이 날카로운 자신만의 관찰력과 분석력으로 언젠가 옛날에 동경했던 누군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
  트위터 팔로잉 수보다 팔로어 수가 더 많다든가, 그런 중요하지 않은 레벨의 누군가로. 그렇게 덧붙인 뒤, 리카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그만 현실을 깨닫자고. 우린 누군가가 될 수 없어."
  꿀꺽 하고 리카의 목이 울렸다.
  나는 그걸 보고 내 목이 바싹 타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리를 내려고 해도 달궈진 아스팔트 같은 목이 그걸 에워싸 버린다.
  "나는 나밖에 될 수 없어. 아프고 볼썽사나운 지금의 나를 이상적인 나에 가까워지게 할 수밖에 없어. 모두 그걸 알기 때문에 아프고 볼썽사나워도 분발하는 거야. 볼썽사나운 모습 그대로 몸부림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도 볼썽사나운 나인 채 인턴도 하고 외국 자원봉사도 하고 명함도 만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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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카'라는 인물은 예쁜 걸 좋아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상을 기록할 때에도 보기 좋게 포장하는 게 익숙하다. 항상 열심히 하고, 또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주변에 보여주는 사람이다. 파이팅이 넘치고, 어쩐지 그런 모습이 익숙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태여 사진을 찍고, 그 현장이 의미있었다고 글을 올리는 리카에게서 불편함을 느꼈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리카의 그런 모습이 리카에겐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 사이트가 오픈하는 12월 1일이 가까워지면, 취업활동은 개인의 의자가 없는 세간의 흐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 자기는 취업 사이트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대수롭잖은 한마디로, 나는 취업활동에 흥미 없는 좀 독특한 사람입니다,라고 어필하는 사람도 나온다. 또한 마치 흥미나 관심이 없는 것을 우위라고 생각하는 듯한 말투로, "기업에 들어가지 않고, 어엿한 개인으로서 살아갈 결단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온다.
  "취업활동 하는 애들을 보면 뭐랄까."
  다카요시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한다.
  "상상력이 없는 게 아닌가 싶어. 그 이외에도 살아갈 길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것을 상상하는 걸 포기하는 건 아닌가, 하고."
  역시 상상력이 없는 인간은 고역이다.
  어째서 취업활동을 하는 사람은 무언가에 휩쓸려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모두 같은 정장을 입기 때문일까. 몇만 명이나 되는 학생이 모이는 합동 설명회 영상이 뉴스 프로그램 등에서 나오기 때문일까. 어째서 취업활동을 하지 않기로 정한 자신만 대단한 결단을 내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위가 모두 검은 머리에 정장을 입고 있을 때 머리를 물들이고 사복을 입기 때문일까. 시시한 매너 강좌를 웃으며 들을 수 있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이 같은 정장을 입고, 같은 것을 묻고, 같은 말을 지껄인다. 그것이 각장의 의지가 없는 큰 흐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취업활동을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임이다. 나는 아티스트나 기업가는 분명 될 수 없다. 그러나 취업활동을 해서 기업에 들어가면 또다른 형태의 '누군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희망을 바탕으로 큰 결단을 내린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정장을 입고 같은 면접에 임하고 있을 뿐이다.
  '취업활동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무게의 '취업활동을 하는' 결단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결코 개인으로서 누군가가 되는 것을 포기한 건 아니다. 정장 속까지 모두 같은 건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취업은 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산다.
  긴지의 말이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취업활동을 하지 않기로 정한 사람 특유의, 자신만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살고 있습니다, 하는 자부심. 지금 눈앞에 있는 다카요시의 온몸에도 그런 것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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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요시'라는 인물은 작품 속 화자 '니노미야 다쿠토'에 따르면, '취업활동을 하지 않는다'와 같은 무게의 '취업활동을 하는' 결단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적은 누군가의 성실한 기록을 '재미없다'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지만,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실은 겁이 많은 사람 같다. 아마 한 시간 일찍 면접장에 도착한 다카요시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고타요시의 트위터 글을 팔로잉하고서 나와는 다른 이 사람의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시야를 멋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잘한다, 축구를 잘한다, 요리를 잘한다, 글씨를 잘쓴다 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취업활동을 잘하는 것뿐이었어."
  또 미터기가 올라간다.
  "그런데 취업활동을 잘하면 마치 그 사람이 통째로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해. 취업활동 이외의 일도 뭐든 해낼 수 있는 것처럼. 그거, 뭐랄까."
  칫칫칫 하고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택시가 오른쪽으로 달았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피망을 못 먹는 것처럼, 윗몸일으키기를 못하는 것처럼 그냥 취업활동을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런데 취업활동을 잘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통째로 무능한 게 되어 버려."
  아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난 네가 왜 합격하지 못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빈정거리는 거 아니야, 이거."
  고타로는 나를 격려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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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타로'라는 인물은 아직 자신의 인생에서 드라마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고, 피에로가 될 줄 아는 어른이다.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결코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출판사에 지원하는 조금은 막무가내이고, 조금은 로맨틱한 사람이다. 나는 고타로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피에로가 될 줄 아는 어른. 낭만을 꿈꿀 수 있는 어른.


  "10점이어도 20점이어도 좋으니 네 속에서 꺼내. 네 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점수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멋진 말로 어필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모두에게 보여 줘. 너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끝에 네 속의 것을 꺼내 놓아 봐.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봐 주지 않아. 100점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성숙시켰다가 표현한들 너를 너와 똑같이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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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키'는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그 어디에도 호소하지 않는 이야기를 역시나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곳에는 들려줘도 되는 이야기를 하고, 말하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는 아끼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겠지. 그렇지만 가끔은 자신은 드라마를 꿈꿀 수 없다고 말하는 가슴 아픈 사람. 그래도 10점, 20점이어도 좋으니 자신을 꺼내 보여주라고, 100점이 될 때까지 기다려줄 사람도, 100점짜리를 보여줘도 100점으로 똑같이 봐줄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미즈키는 멋있었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타로가 다쿠토에게 "난 네가 왜 합격하지 못하는지 정말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누구보다 다쿠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대사다. 그런데 친분이 깊지 않은 리카는 다쿠토에게 "난 다쿠토가 합격하지 못하는 이유, 알아."라고 말한다. 리카의 이 대사에서 호러는 시작된다. 리카의 사정없는 칼질은 다쿠토의 심장뿐만 아니라 독자의 심장까지 난도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친구인 고타로가 보는 다쿠토토,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리카가 보는 다쿠토도 모두 진짜 다쿠토다. 한사람은 선을 더 많이 보고 한 사람은 악을 더 많이 보았을 뿐.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을 누군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_305, 옮긴이의 말

  '니노미야 다쿠토'라는 인물이 화자이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알게 모르게 판단하는 사람. 다른 사람이 취업에 합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잘 알면서 자신이 왜 불합격인지는 모르는 사람. 친한 사람은 '왜 취업이 안 되는지 모르겠는 사람'이지만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왜 취업이 안 되는지 알 수 있는 사람'.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쓴 글을 좋아하는 사람. 나였어도 다쿠토의 비밀 계정 글을 가끔은 관심글로 클릭했을 것 같다.


  "다쿠토의 또 하나의 계정 이름, 나 슬펐어."
  자, 하고 휴대전화를 돌려준다.
  "생각한 것을 남기고 싶다면 노트에라도 쓰면 될 텐데, 그걸로는 부족하지? 자기 이름으로는, 자기 글씨로는 안 되지. 자기가 아닌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장소가 없으면 이제 어디에도 설 수 없는 거지."
  돌려받은 휴대전화는 손바닥에 쏙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에게 전해지는 거야. 아무리 멀쩡하게 정장을 입어도, 아무리 또 하나의 계정을 숨겨도 네 마음 안쪽은 상대에게 다 보여."
  아직 뜨겁다.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몸부림치지 못하는 너의 진짜 모습은 누구에게나 전해져. 그런 사람을 어떤 회사에서든 원할 리 없잖아."
_288

  다쿠토는 '누구'라는 비밀 계정을 가지고 있다. 리카는 다쿠토의 비밀 계정 이름이 슬펐다는데, 나는 왜 슬픈지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누구'도 되지 못해서 슬픈 걸까? "나는 '누구'처럼 그렇지는 않아"라는 느낌의 반항기로 슬픈 걸까? 일문과 친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누구보다는 약간 안 좋은 어감이라고 하던데. 백퍼센트로 어떤 어감인지 확인할 수는 없어서 그게 참 아쉽다.


  "전혀 달라, 그 두 사람."
  사와 선배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아무리 쓰는 말이 같아도 아무리 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겹친다 해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야."
  사와 선배가 담배를 한 개비도 피우지 않고 흡연실을 나온 것은 도서관 가는 길을 모르는 척하면서까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너, 이런 말도 했었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사와 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메일이나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유행해서 다들 짧은 말로 자기소개를 하거나, 타인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그 속에서 어떤 말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와 선배는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난 그건 다르다고 생각해."
  사와 선배는 볼일이 있으면 메일이 아니라 전화해, 하고 늘 내게 말한다.
  "짧고 간결하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니까 거기 선택되지 못한 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잖아."
  사와 선배는 이 현실 속에만 있다.
  "그러니까 선택되지 못한 말 쪽이 더 그 사람을 잘 표현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사와 선배의 등을 바라보았다.
  "겨우 140자 겹쳐진 것으로 긴지와 그 녀석을 한데 묶어 버리지 마라."
  어느 눈앞에 목적한 도서관이 있다.
  "그 짧은 말 너머에 있는 인간 그 자체를 상상해 주라고, 좀 더."
  상상.
  "나, 너는 그래도 상상력이 있는 놈인 줄 알았다."
  상상력.
  내가 다카요시와 긴지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
_187

  우리는 짧은 글, 사진 몇 장 등 단편적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에 동감한다. 나 역시 다쿠토처럼 선택된 단어, 보여지는 사진에 집중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사와 선배의 말씀처럼 선택되지 않은 단어, 보여지지 않은 진심인 것 같다. 1000자를 적으라고 하면 서로 다른 글이 되겠지만, 100자로 적으라고 하면 비슷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여지는 100자와 보여지지 않는 900자를 함께 두루 생각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사이 료 작가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라는 영화로 알게 됐는데, 내가 이번에 읽은 『누구』라는 소설로 만 23세 최연소로 나오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과연 두 작품 모두 구성이 굉장히 새롭고, 탄탄했다. 영화의 원작도 읽어보고 싶고, 만약 『누구』라는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져도 소설만큼 반전이 커다랗게 다가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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