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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1. 202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로맨스 소설 모양을 한 철학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영어 지문으로 이 소설을 접했다.​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 어떤 사람[천사]을 보면서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누리는 기쁨을 상상할 때,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위험을 잊기 쉽다. 정작 상대가 나를 사랑해줄 경우에 그 사람의 매력이 순식간에 빛이 바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자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만하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바라던 대로 멋진 사람일 수 있을까?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떤 면에서 나보다 낫다고 믿어야만 한다면, 상대가 나의 사랑에 보답을 할 때 잔인한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묻게 된다.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처음에 지문을 읽고 ‘무슨 이런 고민을 하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책을 다 읽고 보니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매번 생경할 수밖에 없어서 그때마다 생기고야 마는 기대와 불안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다. 우연이 운명처럼 느껴지는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연인 사이라는 관계의 기승전결을 거치고, 다시 한번 운명적인 사랑에 떨림을 느끼면서 이야기를 끝을 맺는다. 이야기의 결말이 누군가는 진부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자연스러웠다. 사랑 이야기도 결국 사람 이야기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이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사람에 다쳐도 어느새 사람을 찾게 마련인 것 같다.

 ​

​  알랭 드 보통 작가는 프랑스 작가분이신 줄 알았는데, 스위스에서 출생하셨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고 하신다. 『우리는 사랑일까』, 『여행의 기술』등의 작품이 이미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도 꽤 두꺼운 팬층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알랭 드 보통 작가님 작품을 항상 로맨스 소설 모양을 한 철학서라고 일컫곤 한다..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선과 솔직한 심리 표현이 글 전체에 고루 퍼져있다. 철학이나 예술 분야의 예시와 인용구도 적절하게 배치하는 능력을 갖추셨다.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과 『공항에서 일주일을』, 둘 중 하나가 다음으로 읽게 될 작가님의 작품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제목 센스도 참 마음에 든다.

 

  알랭 드 보통 작가께서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1993년에 데뷔하셨다. 계산해보면 알랭 드 보통 작가께서 지금의 내 나이인 23살에 쓰신 책이다.

  이 소설책과 나는 동갑내기다. 반갑다!

​​​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들이 몇 개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중국 집에서 서로 무미건조하게 식사하면서 오래된 권태를 보여주던 장면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 썸머와의 연애를 끝나고 나서 어텀이라는 새로운 여자와의 로맨스를 암시하던 결말

영화 《러브픽션》에서 하정우 씨가 공효진 씨에게 사랑한다고 의미로 말하던 '방울방울해'라는 대사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함께 하면 좋은 작품들이다! 추천 쾅쾅!

15.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너무 남용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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