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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2. 2022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다

  이 책의 뒷표지에 이렇게 적혀 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아무 생각이 없다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이 글을 발견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시작이 좋은 것보다 끝이 좋은 걸 더 선호하는 우리네 삶에서, '용두사미'라는 말이 그다지 좋게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서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서사와 결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남주인공의 말에 동감한다. 끝을 바라보다가 눈 앞에 놓인 예쁜 것을 지나쳐버린 적이 있다.


  고작 패턴으로 존재하는 인가이 어떻게 그 패턴 밖으로 나갈 것인가라는 매혹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 어려운 질문에 맞춰 훌륭히 싸워낸 서사였다.
_강지희(문학평론가)
  그 누구 한 명 빼놓지 않고,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나는 그것이 '기억'이니 '시간'이니 하는 것들보다 훨씬 더 커다란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 한 명 빼놓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장편소설의 생명이다.
_이기호(소설가)


  심사평을 보면 위와 같다. 『그믐』은 출판사에 보내진 응모작 소설의 원본이 바닥에 떨어져 흐트러진 것처럼 이 소설도 왔다 갔다 하는 진행이다. 초반에는 그런 전개가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남주인공, 여주인공, 그리고 아주머니가 되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내가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 건지, 내가 화자가 되어 말하고 있는 건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점차 제자리를 찾고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어린 시절 만났다가 재회한 두 남녀의 로맨스라고 말하기도, '우주 알'에 관한 SF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보통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살인을 저지른 남자와 그런 남자를 따라다니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보통 이런 스토리를 기대하진 못할 것 같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없다. 나는 그게 항상 너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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