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12. 2022

모순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_13

  양귀자 작가님의 소설 <모순> 속 화자는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읊고 나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누군가 스물다섯이라고 하면, 나는 대뜸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진다. 나조차도 23살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메모해뒀다가 25살에 다시 읽었다.


추가로

스물이라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스물다섯이라면 자우림 밴드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노래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스무 살, 도쿄>

서른이라면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 (중에서도 ‘서른’) 최승자 시인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중에서도 ‘삼십 세’라는 시)

마흔이라면 김중혁 작가의 수필집 <뭐라도 되겠지>

기타 구구절절은 다음 기회에-



  큰삼촌 집에서 자기로 해서 사촌 여동생 방에 씻고 누워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하나.

  "언니, 나는 책을 읽는 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이야기기해보니까 전혀 문맥에 맞지 않게 이야기하는 게 어떤 건지 알겠더라. 정말 심각한 건 그 말을 하는 아이들은 왜 그게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른다는 거야."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문맥에 맞는 표현이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폭이 넓어지기는 하겠지. 어릴 때 독서 습관을 들이면 좋은 부분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해."

  "그래도 나는 억지로 내 아이한테 책을 읽게 시키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읽는 애는 진짜 재미없게 읽더라고. 막 한 권을 몇 달에 걸쳐 읽고."

  "하긴. 모든 건 장,단점이 있으니까. 책 읽으면서 장점도 진짜 많은데 단점도 있긴 있는 것 같아. 영화 <HER> 봤어? 거기에서 남주인공이 인공 지능이랑 사랑에 빠지는데,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해. 자기는 가끔 자기가 느껴야 할 감정을 이미 모두 경험해버린 것 같다고. 나는 그 말이 뭔가 참. 책을 어릴 때부터 읽고, 내가 몰입을 좀 심각하게 하는 편이라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작품 속 인물의 삶으로 이미 하나의 내가 하나의 삶을 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 이미 이별도 30번쯤은 해본 것 같고, 말 못하는 사연이나 사람 사이에서 완전하게 닿을 수는 없는 거리감이라든지 남들은 몸소 체험한 인간관계의 애로사항이나 의도하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 같은 부분들도 이미 뭔가 어슴푸레 알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야. 허무하거나 그런 것 아닌데, 그냥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거지."

  "나도 간접체험을 싫어해서 책을 안 읽은 적이 있었어. 근데 그 말 무섭다. 이미 모든 감정을 다 써버린 것 같다니."

대화 둘.

  "난 이 노래 듣고 있으면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넣어두고 어깨는 잔뜩 웅크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보이고,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도 보이고, 실가락가처럼 가느다란 김이 올라오는 자판기 커피가 든 종이컵도 보이고, 커다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는 조그마한 아기 고양이도 보인다."

  "나는 그 달, 그 밤, 그 때에~ 이 부분이 좋아."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어른이 된 나는 어지러워, 이것도!" 그리고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언니는 '인대'에 갔으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나는 어떤 책을 읽을 때도 언어를 배울 때도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라고 생각을 하는데, 언니는 이 표현이 이래서 좋고, 저 장면은 뭐가 떠오르고, 심지어 일본어도 그 언어로만 느낄 수 있는 건 알고 싶다고 배워보고 싶다고 하잖아."

 


  이번에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본 누군가의 삶은 어땠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아직은 내 안에서 제대로 무슨 모양을 하고 자리잡지 않았다. 다만 이 책을 두고두고 읽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행복해 보이지만 불행했던 이의 삶도, 불행하지만 누군가에겐 행복하게 보였던 이의 삶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이의 삶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을 이해시키기를 포기한 이의 삶도, 진심을 이야기할 때에도 가성으로 말하는 게 익숙해져버린 이의 삶도,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힘들었던 이의 삶도, 누군가에게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의 삶도.

  이렇게 들여다 본 삶은 이제 내 안에서 내가 마치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직접 경험한 것 같은 또 하나의 삶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