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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2. 2022

달과 6펜스

저 멀리 달이냐, 눈앞에 6펜스냐, 그것이 문제로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내재적 감상외재적 감상이 있다. 내재적 감상은 단어, 심상, 은유, 표현, 태도, 소재 등 작품 속 요소에 집중하는 감상이다. 외재적 감상은 다시 표현론, 효용론, 반영론으로 나뉜다. 효용론적 관점은 작품을 읽은 독자의 감상이나 교훈 등을 고려한 감상이고, 반영론적 감상은 작품 속에 현실이 반영되었다고 가정하고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고려하는 감상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감상은 표현론적 감상이 아닐까 싶다. 표현론적 감상은 창작자의 성격이나 체험을 연결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노래, 시, 소설, 영화, 캐릭터 등을 새롭게 접할 때 우리는 그 창작자를 떠올리곤 한다. 작품 속 화자의 내면에서 무의식 중에 창작자를 찾는다. 사랑스러움이 흘러넘치는 시를 쓴 사람이 실제로 어떤 연애를 했을까 궁금해하고, 기괴하거나 잔인한 장면을 볼 때면 작가의 경험은 아닐까 의심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나 좋은 노래를 만든 사람이 사회적으로 불법을 저질러서 어디 가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게 되는 수도 있다. 창작자와 작품의 괴리. 모든 작품이 수필처럼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어떤 거짓은 너무나 진실처럼 느껴져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달과 6펜스』 속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 또한 그렇다. 남들이 보기에 그저 평범한 증권가였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그의 삶은 완전하게 바뀐다. 집을 나오고, 경제적으로 가난에 허덕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자신이 원래 태어났던 곳이라 여겨지는 섬도 발견한다.

  작품 속 찰스 스트릭랜드는 완전하게 똑같지는 않지만 '폴 고갱'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폴 고갱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이 작품을 보면 찰스 스트릭랜드가 창작한 작품을 보고 엄청난 기운에 감격하던 작품 속 화자도, 찰스 스트릭랜드의 지인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을 보면 가끔 지나치게 얄미울 때가 있다. 자신의 화실을 빌려준 지인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할 망정 지인을 내쫓고 자신이 그 화실을 독차지한다든가. 이혼을 할 때도 부인과 자식 걱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 그랬다. 그런데도 놀라운 건 그런 그가 가진 재능만으로 또는 타고난 천성만으로 누군가에게 열렬하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에 비해 더 쉽게 무언가를 얻고, 누군가는 자신의 노력에 비해 더 어렵게 무엇을 얻는다는 것을. 그건 어떤 일에 대한 재능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관심이나 사랑일 수도 있다. 하루 온종일 말을 걸어도 누군가에게 하나의 영향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정말로 관심이 없더라도) 많은 이들이 다가와서 사랑을 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 불공평하다면 불공평한 인간관계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한 개인은 오만하기 그지없지만, 누군가의 눈시울을 붉힐 만큼 감동스러운 작품을 만든 창작자로서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존경받는다. 한 마디로 쉽게 이 사람을 훌륭하다거나 또는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어떤 작품을 접했을 때, 이런 작품을 만든 이는 누구일까 궁금해하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생각한 창작자와 실제의 창작자의 이미지가 굉장히 다를 때 발생한다. 어떤 작품이 정말 좋은데, 창작자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작품과 창작자를 떼어놓고 생각해야 할까.

  내 친구는 대학에 와서 '작가론'을 수강한 후 작품과 창작자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딱 잘라서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기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창작한 분들께서는 내가 어디 가서 '정말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너무 나쁜 짓은 하지 않으시길 바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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