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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4. 2022

소설가의 일

“난 8월 초순의 아오리를 좋아해”

  2016년 4월 5일 화요일 친구가 문자를 캡처해서 보내줬다. 한라도서관에서 열리는 김연수 작가 북콘서트 신청 문자였다. 덕분에 빠르게 전화를 걸어 신청하고, 다른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원래 북콘서트 날이었던 4월 16일 토요일은 날씨 때문에 결항이 돼서 다음 주로 미뤄졌다. 드디어 4월 23일 토요일, 김연수 작가님을 뵐 수 있었다.

  <꾿빠이, 이상>과 <세계의 끝, 여자 친구>, 그리고 <소설가의 일>이 주된 내용이었다. 마지막 피피티에는 김연수 작가님께서 자부심을 갖고 계신 듯한 표가 하나 그려져 있었다.

  행복한 삶과 평화로운 삶은 이다지도 다르다. 와우.

  바라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아도 크게 낙담할 것 없고, 우연한 '득템'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평화를 지양하고 싶다.

  원하지 않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평화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게 더 내 성미에 맞다.

 

  <소설가의 일>은 처음 읽었을 때부터 술술 읽히던 책은 아니다. 그런데 세 번째, 네 번째 읽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나올 쯤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새로운 좋은 부분도 발견했다. 한 번에 후두두두둑 다 읽는 것보다는 틈이 생기는 나른한 오후쯤 조금씩 꺼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곱씹을수록 맛이 나는 책이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는 사과를 좋아해"라고 말할 때, 주인공이라면 "난 8월 초순의 아오리를 좋아해"라고 말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구절이 가장 좋았다.  누구나 자기 인생이라는 책을 쓴다.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그냥 '사과'가 아니라 '8월 초순의 아오리'를 떠올릴 만큼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자기다운 '취향'을 가질 때 주인공은 더 매력 있다.


추가로 좋아서 필사한 부분들 동봉합니댜.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자. 다리가 불탈 때까지는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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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나는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사실상 소설가의 일은 이게 전부다.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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