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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5. 2022

해가 지는 곳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당신의 슬픔과 당신의 바쁜 발걸음을 돌리는 나의 슬픔

우리는 어디로 ?
우리는…… 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에 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저기, 해가 지는 곳에.
미소는 혀로 사탕을 굴리며  손을  잡았다.
_24

소설의 제목인 <해가 지는 곳으로> 미소와 도리가 함께 가는 곳이다. 그리고 가야 할 .​



나랑 같이 갈래?
빨간 머리칼과 회색 눈을 가진 지나.
나랑 같이 가자.
나는 알았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_30​

  지나와 도리의  만남에서 지나는 "나랑 같이 갈래?"라고 물은  "나랑 같이 가자."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예전에 그런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이 한평생 선택하는  좋아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리드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사실은 자기가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깨닫게 되었다는 일화. 완벽한 이상을 만나기 전에는   없는 미세한  대하여 오래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도리는  말을 듣지 않고 나도 도리 말을 듣지 않았다. 립스틱을  쥐고 모로 누워 도리를 바라봤다. 도리가 내게 그것을 주어서 내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황량하게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끝도 없는  위에서, 불행과 절망에 지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바로 그런 것을 원하고 있었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 모두가 한심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내겐  필요한 농담과 웃음 같은 .
_43

  그야말로 '난리법석' 와중에도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길  아는 지나에게 도리는 립스틱을 선물한다.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 2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사랑할 때와 죽을 >라는 소설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인생에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해가 지는 곳으로> 립스틱과 <사랑할 때와 죽을 > 금색 구두 같은.

​  "아무것도 보내지 . 거기는 여기보다 먹을  많아. 당신 옷을 사라고.  당신이 모자를   무언가를 배웠어.  옷을 사겠다고 약속해. 조금도 쓸모없고,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걸로 말이야. 혹시 이걸로 부족할까?"
  "충분해요. 구두까지   있어요."
  "그럼 잘됐네. 이왕이면 금색 구두를 ."​
_ <사랑할 때와 죽을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우리는 호감이 있는 사람의 말투를 닮아간다고 한다. 지나를 향한 도리의 사랑도 '닮아가는 '으로 시작한다. 도리는 지나처럼 먹고 마시고 걸으려고 한다. 결국 자신은 지나는 고유하고, 자신은 지나가   없다고 체념하더라도 지나를 닮고 싶어 하는 도리의 모습은, 도리의 사랑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 고유하고, 소중하고, 애틋하다.​



  만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몰라.
  지나는  손을 놓지 않았다.
  알면서도 가겠다는 거죠.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있으니까.
  도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가장 작고도 단단한 도리의 음성. 그렇다.  중요한  있다.
  제발 언니, 우리랑 같이 .
  우리와 함께 간다고 목숨이 보장되는  아니야. 지나, 이들에겐 이들의 기적이 있어.
  우리의 기적. 그런 것이 아직 남아 있을까. 평생에   사람은 있을 것이다.  인생의 A, B, C 아니라 완벽한 고유명사로 기억될 사람이. 어떤 이는 지름길로 나타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가장  길을 지난하게 지나고 모든 것에 무감해진 때에야 비로소 거기 있는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기적을 만나려면 그곳까지 가야 한다. 멀어지며 그것을 갈구할 수는 없다.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노예가 되더라도, 그렇게라도 단을 만나  다른 탈출을 기대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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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고 사는 것보다 중요한  있으니까. 그렇다.  중요한  있다.

  정말이면 정말 좋겠다.​


  모두에겐 각자의 기적이 있다. 완벽한 고유명사.​  구석이 많은 글을 쓰고 싶다. 더불어 호흡이  글도.



전소영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 속 최진영 시인의 시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당신의 슬픔이 나를 아프게 한다는 , 나의 슬픔이 당신의 바쁜 발걸음을 돌린다는 .” (최진영, 「슬픔의 최대치」, 《서울신문》, 2016. 4. 27.)
_194, 작품 해설,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모든 노래가 깨어나면, 전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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