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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6. 2022

소설 보다 : 봄 2020

눈이 가요 눈이 가 피는 꽃에도 지는 꽃에도

  매년 9월 24일은 내 생일이다. 내 생일 D-1일이자 2021년 D-100일에 미리 책맥 멤버들이랑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갈 때 내 양손에는 선물이 가득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설 보다' 시리즈 중 <소설 보다 : 가을 2020'>이다.  여름 2020은 생일 선물과 함께 ㅊㅇ이가 빌려줬고, 봄 2020은 지난 주말 대출예약제도로 이미 빌려뒀었다. 차례차례 읽고 싶은 마음에 빌려준 여름 2020보다 봄 2020을 먼저 읽었다. ㅊㅇ이가 소설 보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밌다고 했기에 더 기대가 커졌다.

  <소설 보다>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문지문학상 후보작)을 묶은 단행본 시리즈로, 1년에 네 권씩 출간된다. 계절의 리듬에 따라, 젊고 개성 넘치는 한국 문학을 빠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딸에 대하여>로 익히 알고 있던 김혜진 작가님의 「3구역, 1구역」은 전 작품에서도 그렇듯, 사람들의 눈길이 미처 닿지 못한 곳이지만 작가님께서는 바라보고 있는 부분들인, 사회의 어떤 단상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그게 재개발이다.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되는 죄수들처럼 사람들을 구역이라는 틀에 두고 '3구역 사람들', '1구역 사람들'이라고 일컫는다는 게 참.

  "저기, 죄송한데요. 괜찮으시면 제가 캔을 그릇에 좀 옮겨줘도 될까요?"라고 길고양이를 위한 캔을 그릇에 옮겨줘도 되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만남은 '어떻게 해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켜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라는 슬픈 예감으로 일단 막을 내린다. 거부하고 싶지만 거절할 수 없는 만남의 지속은 어떻게 끝이 날까.​


  <펀펀 페스티벌>은 장류진 작가님의 작품이다. 소설을 읽을 때보다 인터뷰가 더 인상 깊었다. <펀펀 페스티벌> 속 화자는 누군가(여기서는 '이찬휘')의 껍데기를 좋아하는 스스로를 경계하고 극단적으로는 혐오까지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다. 그런 "정말이지 못 말리는 얼빠"라는 자각이 자기 검열을 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작가님의 답변에서 아차, 싶었다. 그리고 '가볍다'는 누군가의 쉬운 평가가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작가님을 통해 배웠다.


  나는 나고, 우리 부모님의 작은 딸이다. 제주도민이고, 동양인이고, 한국인이다. 90년대생이며, 20대다. 그리고 직장인이다. 나를 범주화하는 그 많은 것들 중 '직장인'이라는 범주에서 나에게 제일로 힘을 준 20년도 소설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장류진 작가님의 <일의 기쁨과 슬픔>일 것이다.

  "누군가 절 기억해주고 제 다음 소설을 읽고 싶어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인터뷰가 자꾸 맘에 걸려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오늘의 일기예보」는 한 줄로 다 말할 수가 없다. 청소 얘기를 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좋은 헤어 드라이기를 사야 할 것 같게 만들고, 주말에 카페를 가고 싶어졌다가 예전에 봤던 영화 '벌새'랑 '아사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들었다. "장미, 장미는~"으로 시작하는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 노래랑 "이상하게 꼬였네~"가 반복되는 스크류바 CM송을 흥얼거리게 만들고, '1996년 연세대 사태'랑 집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가기로 정해진 곳이 아니라 '가도 좋은 곳'(여기에서는 '연남동') 같은 곳에 가야지 싶어졌다. 조은 시인의 시 「지금의 비가」랑 신미나 시인의 「적산가옥」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네요"라는 말을 주의하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꺼번에 뭉뚱그려진 이 모든 것들을 각각 시간을 주어 길게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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