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16. 2022

여름의 빌라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

  긴 말을 보태진 않을 예정이다. 나에게 백수린 작가님을 알려준 건 대학교 졸업 후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영화관에서 만난 선희아니곳ㅅㅓ니.


  나에게 선희아니곳ㅅㅓ니는 박연준 작가님에게 존 버거 작가님 같은 비상식량이다. 박연준 작가님께 존 버거 작가님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만큼 세상을 긍정하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선희아니곳ㅅㅓ니가 없었다면 나 스스로를 지금처럼 긍정할 수는 없었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좋아하고,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하고, 서로 좋다고 마음껏 호들갑 떨 수 있는 기쁨. 좋아하는 작가님이라고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글을 보고 도서관에서 대출 가능한 도서를 찾았다.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해,라고 호들갑 떨고 싶어서!​


  10월에는 <친애하고, 친애하는> 속 '복날에는 삼계탕을 나눠 먹고,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지어 먹고, 동짓날에는 팥죽을 수어 함께 먹는 사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좋은 날 같이 보낼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라고 할머니는 언젠가 내게 말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할머니를 살게 했던 사람은 나나 엄마가 아니라 아가다 할머니와 글로리아 할머니였는지도 모르겠다.'라는 구절을 읽으며  나를 살게 하는 사람과 내가 살게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12월에는 <여름의 빌라> 속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습게도 느닷없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이라는 구절이 구구절절하게 좋아서 몇 번을 다시 곱씹어 읽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주는 즐거움. 일찍이 빨간 머리 앤이 내게 알려줬던 마음. 올겨울은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는 행복의 찰나들을 더 자주 만나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바랐다.

  황예인 문학평론가님의 해설처럼, '낙관이나 비관으로 섣불리 기울어지지 않고' 인물을 그려내는 백수린 작가님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가 아니라면 적어도 나한테는.

  왜냐면 내가 세상 모든 것에 보이는 마음씀씀이는 뭐랄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의 마지막과 같다. 눈 깜짝할 새 저 멀리로 달려가는 멍멍이가 있다면 무사히 차도를 건너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눈으로 개를 좇다가 그 개가 마침내 반대편 도로에 무사히 닿는 걸 확인한 후 고개를 돌리는 딱 그 정도. 얼른 달려 나가 차를 세워주거나 그 멍멍이를 번쩍 들어 올려 옮겨주지는 못하는 그저 그런 정도.

  이런 나의 수수방관적 태도에 너무나 비관적이다가도 이런 나를 아니까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하고 내가 가진 작지만 힘찬 발전 가능성에 조금은 낙관의 마음을 보태본다.​


  요즘 나는 다시 학생 때처럼 월요병도 없고, 맛있는 것도 찾아 먹고 싶고, 예쁜 옷 입고서 나들이도 가고 싶고, 생각난 사람한테 무작정 먼저 연락도 하고 그런다. 바람직한 12월.

  "회춘이다 회춘"

  "노잼 시기가 지나간 건가!"

  친구들의 장난스러운 말들에도 기분이 좋다. 노잼 시기는 갔고, 나는 회춘했다 룰루!​


  긴 말 보태지 않는다 해놓고 말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백수린 작가님 차가운 듯 따뜻하고 비관적인 듯 낙관적이십니다요. 저는 기울어진 것들을 좋아하는 편인데, 기울지 않은 모습 그대로 멋지셔요 :-)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보다 : 여름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