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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8. 2022

긴긴밤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했으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했다

  민음사 해외문학팀 박혜진 편집자님 추천 도서. 이 책을 가장 읽어 주고 싶은 존재는 배 속에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존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존재들의 헌신 그리고 연대 소설에서 '긴긴밤'으로 상징되는 고독까지도 필요하다.

나 이거 입버릇 같기는 한데. 할 말은 해야겠다.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좋을 줄.

아, 아니다. 기대가 작지 않았는데, 그 기대보다 웅장하게 감동적이었다.

​간만에 울다가 콧물 흘리면서 책을 읽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슬플까. 너무 아름다운 것들은 필연적으로 슬픔을 가져온다. 내가 감히 어쩌지 못하는 서늘한 몽글함.​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스치듯 지나갔던 첫 구절이 98~99쪽을 거쳐 읽을 때 퍼뜩 떠오른다. 튤립이면 어떻고 해바라기면 어떠랴. 실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첫 소절이었다. 세상은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이제 나는 첫 장부터 울 수 있다. 이 책은 소장하고 마음에 보풀이 일 때 꺼내봐야지.


  “여기, 우리 앞에 훌륭한 한 마리의 코끼리가 있네. 하지만 그는 코뿔소이기도 하지.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군그래.”
_16
  “너는 펭귄이잖아. 펭귄은 바다를 찾아가야 돼.”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그거 참 고마운 말인데.”
  “내 부리를 봐요. 꼭 코뿔같이 생겼잖아요. 그리고 나는 코뿔소가 키웠으니까, 펭귄이 되는 것보다는 코뿔소가 되는 게 더 쉬워요.”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_115

사랑을 사랑으로 갚는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지만, 나는 되로 받고 말로 주고 싶다.


  그럴 때마다 앙가부가 슬그머니 옆으로 와 노든을 깨워 주었다.
  “낮에 심술을 부리니까 밤에 악몽을 꾸지.”
  “너랑은 상관없잖아, 저리 가. 내버려 둬.”
  “악몽을 안 꾸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긴 한데 말이야.......”
  “.......”
  “기분 좋은 얘기를 하다가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아.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시험 삼아 오늘 나한테 바깥세상 얘기나 들려줘 봐. 이봐, 나는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가 본 적이 없어. 같은 코뿔소끼리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얘기 좀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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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을 꾸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많다. 사랑일까? 사랑이다. 사랑이야!!!!! 사랑을 테두리 짓지 않는 건 몇 안 되게 마음에 드는 내 특성 중 하나. 긴긴밤 동안 잠들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조잘거려줄 테다. 우리만의 천일야화. 굳이 따지자면, 긴긴야화.​



  나도 노든이 될 수 있을까. 치쿠가 될 수 있을까. 윔보가 될 수 있을까. 앙가부는 될 수 있을까. 사랑만 받은 펭귄으로 그치고 싶지 않아서 언제고 부채의식이 있다.


  찾아보니 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작품이었다.

  어른이는 차차 되어가야겠지만, 어린이는 유년을 거친 우리 모두 안에 있으므로 어른이라면 더더욱 어린이 문학의 독자가 될 수 있다.

  성장소설 특유의 오돌토돌 구불구불함을 좋아한다. 서둘러 오지 말고 있는 힘껏 천천히 오세요. 어느 것 하나 놓치지 마시고 아주 느릿느릿 찬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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