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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8. 2022

시리즈물의 기쁨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포주의)  

1. 사랑에 빠지는 건 내 전문이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고, 익히 반했던 부분에 몇 번이고 반하는 게 특기다. 꽁꽁 언 빙판길을 헤치고 보러 간 영화 <듄>은 나한테 신세계를 선사했다. 세계관이라는 건 이런 거구나. 영화를 보면서 반한 신세계에 책을 읽으며 다시 반했다.

2. 나는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두루 눈길과 마음을 주는 창작자를 사랑한다. 대부분은 원탑 또는 투탑 주연으로 진행되는데, 그러다 주인공 외에 인물들에게도 각각의 서사를 심어놓은 작품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주인공 폴(=무앗딥=우슬)은 소년미가 낭낭하다가도 독보적인 지도력을 보여준다. 폴의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는 카리스마가 있고 선견지명을 가졌지만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 레토 아트레이데스는 존경받는 리더이자 일편단심 로맨티시스트다. 챠니는 프레멘의 전사이면서 현명한 부인이다. 하와트는 충직한 신하이면서도 내 기준 다혈질이다. 영화를 먼저 볼 때는 몰랐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더 자세히 알게 된 인물 둘.

2-1. 유에 박사. 유에 박사는 수크 학교에서 궁극의 정신 훈련을 받았지만,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배반을 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부인을 살리기 위해 배반을 한 걸로 나온다. 생사 여부도 모르는 부인을 살리려고 모두의 믿음을 저버리다니 서사를 위한 엑스트라 같았다. 소설에서는 폴 또는 제시카와 있을 때 유에 박사가 얼마나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자주 보여준다. 그래서 단순히 개인적 바람을 위한 이기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알면서도 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은 더 가늠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단순히 부인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인이 죽었다면 죽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2-2.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 영화로 볼 때는 '왜 죄다 악당은 저렇게 대놓고 악당 느낌인 걸까..' 싶었다. 시커먼 배경,  불만 많은 표정, 화난 목소리 등등. 사실 소설로 읽고 가장 의외의 인물이다! 조카 페이드 로타는 기본적으로 건방지고 심지어 남작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런데도 남작은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페이드 로타밖에 없으니, 조카가 후계자의 능력을 배울 때까지는 목숨을 보존하여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종지 그릇은 감당 불가능한 독재자 클라쓰. 그리고 영화에서는 그냥 탐욕스러운 거구 할아버지 같은데, 소설에서는 삼국지의 '조조'가 떠올랐다.

3.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언제 끝날까 조바심이 났다. 부록 제외 892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을 읽을 때도 내가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최대한 천천히 한 장 한 장을 누볐다. 시리즈물의 기쁨. 끝이 끝이 아니다. 1의 끝은 2의 시작인 거다.

3-1. 최근에 봤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시리즈물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내게 선사했다.

3-2. 어린 시절을 함께한 해리포터 3인방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3-3. 12학번인 나는 어벤저스와 함께 대학시절을 보냈다.

3-4. 미드 시리즈로는 대표적으로 <프렌즈>와 <모던 패밀리>가 시즌을 거쳐 나와 함께 자랐다.

3-5. 그리고 2021년 겨울, 이렇게 다시 또 하나의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름도 찬란한 듄!!!!!

4. 마지막에 담아보는 사심. 티모시 살라메. 티수종. 예술 작품 같다. 마스터피스. 필름 책 켜놓고 화면 안으로 들어가 암살 기계 잡는 장면에서 너무 아름다워서 심장 부여잡았다. 흐트러진 머리랑 짙고 숱 맡은 속눈썹, 도드라진 턱선이랑 매끈한 피부결까지. 어떻게 사람이 이래.. 콜바넴 때가 순도 100퍼센트의 소년이었다면 올해 만난 티모시님은 성숙미 +500이다!!​


5. 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보람찬 2021년이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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