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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17. 2022

스노볼 드라이브

목적지는 없고 목적은 있다 만남이 목적인 만남

 망했으면 좋겠다. 진짜  망했으면.”
장담하건대, 종말을 원하는 중학교 2학년이 그렇지 않은 중학교 2학년보다 많을 것이다. 물론 내가 유난히 염불을 많이 외고 다니기는 했지만 진짜 세상이 망하길 바랐던  아니다. 나는 그냥, 아무런 고통도 감정도 없이  깜짝하는 사이에 모두가 깨끗이 사라지는, 그런 종말을 원했던 건데.
_15

  우리의 '모루' 다수와 교집합을 이루는 2였고, 유난히 종말 염불을 많이 외고 다녔다. 그렇지만 15쪽에도 적혀 있듯이, 모루가 진짜 세상이 망하길 바랐던  아니다. '그냥, 아무런 고통도 감정도 없이  깜짝하는 사이에 모두가 깨끗이 사라지는, 그런 종말' 원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런  없었다. 숱한 위기와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고 세상은 망하지 않고 데굴데굴 굴러간다.


  빠져나올 생각을   테니까 "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 만한 지옥"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도대체 작가님이셨을 거다. 방부제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녹지 않는 눈이 7 동안 내렸고, 그동안에 모루는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모와 다투기도 했다. 어쩌면 견딜 만한 지옥인 가장 무서운 지옥에서 젊음을 착취하는 노동을 하며 기대하는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루' '이월' 다시 만난다. 둘의 연결고리는 모루의 이모 '유진'. 그리고 둘은 지치지 않고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고, 목적은 있는 둘만의 여정. 올봄, 서울 나들이 후 적은 메모가 문득 떠올랐다.

오늘은 종점 생각  하고 환승역에 머무른다. 잠깐 스칠  알았던 곳에 생각보다 오래 머물며, 누가 먼저 어딘가에 내릴까 헤어질 걱정  하고, 숱한 승강장을 ! ! 지난다. 다음이 있는 종점. 그리고 나한테 이건 아주  마음. 여유롬. 마음이 낙낙한 주말.
어딜 가려고 만나는  아니라 만나려고 어딘가를 찾는다. 목적지는 없고 목적은 있다. 만남이 목적인 만남.
2022/03/19 메모장



그리고 찬양하지 않을  없는 조예은 작가님의 작명 센스.

모루. 모루야. 백모루.
나는 자주  이름을 떠올렸다. 모루, 가공할 쇠를 올려놓고 망치를 두드리는 받침대를 뜻하는 모루가 바로  이름이었다.  이름을 지어  것도 엄마였다. 엄마가 아울렛 주얼리 매장에서 사원으로 일할 , 인테리어 소품으로 어떤 장인이 사용했다는 고급 모루가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물론 그런 사소한 이유만은 아니었겠지. 매일같이 망치에 부딪히더라도 꿋꿋이  자리에 서서 물건을 다듬는 모루처럼 살아가라고, 어차피 상처를 받지 않을  없는 세상이니 그럴 바엔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 버리라고, 단단히 존재하라고. 망치는 오래 때리면 머리가 빠지고 말지만 모루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_43~44

'모루'라는 이름은 가공할 쇠를 올려놓고 망치를 두드리는 받침대를 뜻한다. 사실 무적의 창도 무적의 방패도 없듯 절대 부서지지 않을 모루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절대 부러지지 말라는 어머니의 바람이자 믿음.

 그렇지만, 작가의 말을 마무리 짓는 일은 매번 어렵네요. 모쪼록 이월과 모루의 여정을 즐겁게 상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월의 이름은 입춘이  달에서 따왔습니다. 모루의 옆에 타고 있는 것은 봄이니, 설원을 달리는 과정이 많이 춥지는 않을 것입니다.
_228, 작가의 , 조예은

'이월'이라는 작명의 이유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아, 이름만도 따뜻할 수 있구나. 내가 '윤슬'이라는 단어를 보면 반짝거리는 것처럼 앞으로 나의 이월은 이렇게나 따숩겠구나. 둘의 드라이브는 어느 날 스노볼을 깨고 봄을 맞을 것이다. 아니다, 둘은 이미 봄인 채로 언제까지고 눈 사이를 가로지를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추신. "이월과 모루가 끝내 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달려나갈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아 주신 정기현 편집자님께도 감사의 말을 남깁니다."라고 조예은 작가님께서 정기현 편집자님을 언급하셨다.   바로 직전에 읽은 <유령의 마음으로> 작가의 말에서도 임선우 작가님께서 "정기현 편집자님, 함께 책을 만들어 나가던 모든 과정이 행복하고 소중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정기현 편집자님, 계속 이렇게  취향 저격 작품들을 찾아 편집해주시다니 성은이 망극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 사ㄹ,,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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