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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늬의 삶 Sanii Life May 10. 2024

부지런히 지내는 중 with Stanley Park

2주차 일기 : 24/04/24 ~ 30/04/24

4/24(수)


초반 3일은 유럽/한국/캐나다 시차적응으로 새벽 2시 45분에 매일 깼다. 다음 3일 정도는 구집 생각 때문인지 매일 6시대에 일어났다. 오늘 처음으로 7시 45분까지 잤다. 백수일 때 즐기려고 아침 알람 8시 45분에 알람을 맞춰뒀는데 이제야 좀 그쯤에 몸이 맞춰지려나보다. 물론 매일 그렇게 오래 잘 생각은 안 하고 있다. 8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잠은 거의 자정 전에 잔다.



오늘 밴쿠버 공립 도서관 ESL 온라인 클래스가 있다. 하루 전에 오는 리마인드 이메일에 줌 링크가 포함돼어 있다. 진행자가 주제를 주고 총 4번 동안 소그룹을 만들어 랜덤으로 멤버를 배치한다. 멤버는 같을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처음 한 번은 내가 이끌었고, 나머지는 그래도 이끄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처음에 약간 서로 간 보는 느낌이 강했다. 다들 영어를 못 하니까 더 편했다. 근데 못 알아듣겠다.


4/25(목)


오늘은 비가 와도 밖으로 나간다. 놀라운 점이 분명히 베이스먼트고 비 오는 날인데 하늘이 살짝 어두워졌다는 거 말고는 평소와 큰 차이가 없다. 추적추적 장대비가 내리는 데도 꿉꿉하고 습한 게 전혀 없고 뽀송뽀송하다. 밴쿠버 가장 큰 장점은 신선한 공기, 낮은 인구밀도다. 여기에 일상적인 장점으로 습하지 않음을 꼽겠다.



오늘은 Renfrew VPL로 갔다. 옆에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가 있는데, 도서관 내부에도 커뮤니티 센터 프로그램이 프린트 돼 알림판에 적혀있어서 좋았다. 캐나다는 무지개의 나라라서 19세 이상의 퀴어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 국가차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셈이니 차별이 있기 확실히 힘들겠다.

이력서 쓰기를 시작했다. resume sample을 찾고, 한국 이력서부터 업데이트 했다. 3년 간 회사에서 한 일들을 간단히 정리했다. 저장해두었던 이력서, 경력기술서 등으로 타임라인 작성을 해두었으니 내일은 영어로 번역하고 노션으로 이력서를 꼼꼼하게 점검/추가하고 첨삭 받고 커버레터 쓰면 되겠다.

근처에서 점심 식사로 일식을 먹었다. 살몬동을 먹었는데 연어가 신선하고 아보카도 맛이 무척 좋았다. 단지 직원이 모두가 한국인이었는데 나와 동행인이 일본인인 줄 알고 한국어로 "남잔 줄 알았어."라고 본인들끼리 주고 받는 말이 들려서 기분 나빴다.

캐나다 사람들은 헤어 스타일의 자유를 존중하는 편이고, 혹여나 짧은 머리의 젊은 여자를 남자로 오해하더라도 깨달으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한국사람들은 교양 있는 분들이 많이 없으니 아직 멀었다. 유튜브에 올렸더니 한 구독자 분께서 '그렇게 당당하면 영어로 하지 그러냐.'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맞는 말씀 해주셔서 속 시원했다.



북미의 대형 중국마트 T&T에서 장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땅은 넓어서 별 거 안 해도 금방 1만 보 넘게 채운다. 겹벚꽃이 슬슬 떨어지고 있다.


4/26(금)



티앤티마트에서 사온 실온보관 푸딩은 발효돼서 취하지 않을 정도의 알코올이 들어가있나보다. 신 냄새가 심하게 나서 거부감 느껴졌는데 입안에 넣으면 거의 안 나고 단맛이 느껴지고 막걸리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행인이 그동안 장 보러 다니면서 세 번이나 아른거려서 손에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가 드디어 사와봤다는데, 불쌍하게도 맛있지 않았다. 하지만 도전에 의의가 있는 거니까 됐다. 그리고 푸딩은 역시나 냉장보관 하는 걸 사야 한다.



오늘은 오후 두시에 집에서 나왔다. 약간 짠내와 비 냄새가 난다. 한국에서도 이런 비 냄새를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 신선한 공기랑 같이 맡으니까 진짜 너무 좋다.

도서관에서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로 브런치 작성하고 레쥬메를 살짝 들춰보고 캐나다 생활 정보를 찾았다. 2시간 30분 가량 조용한 환경에서 깔끔하게 있다가 간다.



다운타운 한아름마트는 이층에 음식코너랑 푸드코트가 있고 일 층에는 아트박스가 있다. 입국하자마자 하고 있던 벨트가 고장났던 터라 질질 내려가는 청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아트박스에서 드디어 찾았다. Fashionable belt지만 길이가 나랑 맞는 게 유일하게 하나 있어서 잘 건졌다. 7.98달러였는데 텍스 붙어서 8달러대가 나왔다.

오늘은 한아름마트 멤버십 카드를 만들었다. 한남마트처럼 이름 성 핸드폰 번호 정도만 쓰면 됐다. 몇 개 안 담았는데 (13개) 한국돈으로 거의 15만 원이 나왔다. 물가가 어마어마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역시 먹을 게 있어야 된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는 선명한 무지개를 보았다! 동행인이 다음날까지 기뻐할 정도로 색이 선명하고 거대한 대자연의 흔적이었다. 나는 "좋은 일 있으려나보다."라고 이야기했는데, 모부님께 연락했더니 엄마도 '좋은 일 있으려나보다.'라고 그대로 답해주어서 사소하게 재미있었다.


4/27(토)


일주일 넘어갈 때쯤부터 한국 생각이 났다. 처음엔 망원동 거리가 스쳤고 친구들과 가족들이 꿈에 나왔다. 약 일주일 가량 그립더니 5월 1일부터는 괜찮아졌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 오길 정말 잘했다. 동행인은 고양이를 무척 사랑해서, 내가 한국 꿈을 꿀 때 통통하고 성격 좋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만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캐나다는 날이 춥고 야생동물이 많아서인지 길고양이가 거의 없다. 그나마 길에서 발견되는 게 있다면 산책고양이다. Renfrew 근처에서는 딱 두 마리의 산책고양이를 보았고, 다른 곳에서는 목줄을 채운 고양이나 가방에 넣어서 함께 다니는 고양이들을 보았다.

우리가 입국한 날부터의 밴쿠버는 오후 8시 15분 경에 해가 졌다. 겨울엔 오후 4시면 진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빨리 계절전환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오후 네 시쯤에 집에서 나왔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들을 빗자루로 비 맞으면서 쓸고 있었다. 웃으면서 헬로 했더니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할아버지도 우리한테 Hi 라고 했다. 옆집에는 아시안 가족분들이 살았다.



3개월 전에 새로 생겼다는 예일타운점 한남마트 HNS Hannam Supermarket 에 들렀다. 반찬 사고 집에 간다. 캐나다 버스는 한국과 다르게 노인이 타면 무조건 양보하는 문화다. 한국은 젊은 사람들도 살기 힘드니까 몸이 불편해보이는 분들이 아닌 이상 노인분들이 타도 눈치 살살 보면서 양보를 잘 안 하게 됐는데 말이다. 때때로 운전기사 미숙으로 부딪치면 부딪친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부딪쳐진 사람은 손을 들거나 웃음으로 괜찮다고 해주는 편이다.

버스는 TransLinkWifi라는 이름의 프리 와이파이가 있다. 밴쿠버 공항, 도서관 와이파이처럼 버스 와이파이도 잘 터진다. 동행인이 한국에서처럼 카드를 리더기에 찍고 버스에서 내리려고 했다. 인도인 백발 할아버지 기사님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신나게 웃으니까 기사님도 반사적으로 웃음이 났나보다. 우리는 이미 내려서 그분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버스를 출발하기 전에 혼자 치아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


4/28(일)


어제 쯤부터 알람 마친 시간 5분 전에 일어나게 됐다. 그전까지는 시차적응 하느라 일찍 일어났는데 드디어 몸이 적응을 마쳤나보다. 기쁜 소식은 한국에서 약 한 달 반 동안 무기력한 생활 습관이 굳어졌던 동행인도 이제 알람시간 쯤 일어난다는 거다. 역시 습관을 만드는 데에는 3주도 채 걸리지 않는다.



한국 지하철은 우산을 접고 타는 게 매너인데 여긴 접이식이나 장우산이나 물기만 좀 털고 탄다.

다운타운 도서관에서 일정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옆 중동계 남자가 자꾸 우리를 쳐다봐서 동행인한테 수상 쩍다고 말했는데 1시간 정도 뒤에 우리한테 Can you watch my stuffs for a second? 이라고 하고 화장실 갔다. 돌아와서는 청력이 뛰어난 동행인한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땡큐라고 했댔다.


4/29(월)


노션으로 이력서 보충을 마무리한 뒤 집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탔다. 나는 기사님께 hello 하고 인사 돌려받은 게 다였는데 우리 뒤에 재활기 미는 할아버지는 how are you? 에서부터 시작해서 스몰토크도 나눠서 신기했다. 인사 안 하고 타는 사람도 많긴 하다.

오늘은 고대하던 날이다. 밴쿠버 스탠리파크에서 자전거를 탈 예정이다. 자전거는 후불제로 빌리면 되고, 다 타고 났더니 3시간 45분 정도라 half day로 계산 됐다. 우리는 시간이 많이 지체됐지만 빠르게 사진 찍을 거 찍으면서 타면 1시간 컷도 가능할 것 같았다.



물개를 보았다. 한 녀석은 배를 까뒤집고 무릉도원이었다. 불가사리를 문 갈매기를 보았다. 캐나다구스 엄마 두 쌍과 아기 6마리씩을 보았다. 진짜 보송보송하다.

자전거 타던 중간에 희한한 일이 있었다. 뒷사람들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가방과 삼각대가 갑자기 무너져 재정비 중이었다. 우리가 길가에 있긴 했지만 최대한 옆으로 피했던 터라 다들 어렵지도 번거롭지도 않게 우리 옆을 충분한 공간을 두고 잘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전동킥보드 타던 10대 남자애 셋 중 하나가 "Bro, get out in the way."라고 하며 우리를 쌩 지나쳤다.

10m만 더 가면 자전거와 킥보드에서 내려서 두 다리로만 걸어야 하는 지점이었다. 당연히 녀석들도 내려있었다. 백인 남자애 하나는 잠시 통나무 위에 앉아있고 아랍계 남자애 둘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우리가 여자 본연의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혼자 남은 녀석을 힐끔 보았는데, 그 아이는 아래로 눈을 쫙 깔고 우리를 절대 쳐다보지 않았다. 역시 십 대는 뭉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하다. 하지만 아시안 어린 남자아이인 줄 알고 우리한테 굳이 크게 소리친 녀석도 두세 번째 마주칠 때는 모르는 척 피해갔으니 됐다.



집에 돌아가는 길, 스카이트레인 Main street-science world station에서 한껏 몸을 구부린 홈리스가 탔다. 정지 예정인 것 같았다. (펜타닐을 투약해 몸이 멈춘 사람들을 내가 정지됐다고 표현하기 시작하자 동행인도 곧 따라해서 우리의 언어가 되었다.) 냄새가 풍기기도 전에 남자의 손가락들이 다 벗겨져있는 게 보였고, 그 다음에 찌들고 묵은 냄새랑 오줌찌린내가 같이 났다.


4/30(화)



Uber Eats 어플을 이용해서 한국식 치킨을 주문했다. 백미 햇반을 하나에 약 5불로 비싸게 팔았지만 오늘만은 밖에 나가지 않기로 했으니 과소비를 해본다.

Uber Eats를 이용하면 기사한테 배달 팁을 꼭 줘야 한다. 안 줘도 되긴 하는데 그랬다가는 보복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최저가 15% 던데 이렇게 되면 7불 이상을 줘야 하니까, 나는 그냥 임의로 지정해서 딱 3불을 주었다. 1~2불 주는 사람도 많아 보이던데 3불이나 줬으니 평범한 거니까 음식에 해가 없었으면 한다.

결과적으로는 어플에 실시간 현황 공유 잘 되고, 배달기사 얼굴이랑 평점까지 나와서 좋았다. 이후 지메일에는 기사 이름 혹은 닉네임도 보였다.

음식도 아무 이상 없이 왔다. 생각 못 했던 부분인데 한국에서는 당연시 여겼던 치킨무가 없었고 대신 메뉴에 기재돼있던 프리 마카로니가 왔다. 조그맸는데 개인적으로 치킨무보다 궁합이 좋았다. 후라이드, 갈릭양념은 한국 거랑 같았고 뿌링클은 한국 것보다 맛있다고 느꼈으나 동행인은 짜댔다. 불닭은 캐나다화 됐는지 매운 거 못 먹는 동행인도 쉽게 먹을 정도로 안 매웠다. 역시 외국에서의 spicy는 salty를 의미하는 게 맞다. 좀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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