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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Feb 19. 2022

부부의 라이브 커머스

그립 - 아침엔 대구탕 / 네이버 쇼핑 라이브 - 낙지 한 마리 대구탕

2021년 7월 29일. 


그립에서 라이브 먹방을 방송한 첫날. 도대체!! 하필이면 나는 왜 무더운 여름에 대구탕을 먹는 방송을 시작했을까?


그것도 열이 후끈후끈 나는 가스버너를 앞에 두고서!!


버너를 켜고 대구탕을 끓이기 시작하니,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버너의 열기까지 훅 느껴졌다.


매장에는 나 이외에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스크 목줄까지 걸고서는 괜히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첫 방송이라 너무 부끄러워서, 카메라를 틀어 놓고도 카메라 앞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카메라를 셀프 카메라 보기로 촬영을 하면 영상 촬영을 하면서 채팅창을 볼 수 있는데, 처음엔 이것도 몰라서 컴퓨터를 옆에 가져다 놓고, 컴퓨터를 보면서 촬영을 했다. 컴퓨터에 글씨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면서 뒤로 돌아가서 채팅창을 보는 얼간이 짓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의 방송을 보면, 대구탕이 끓는 모습이 보이고, 나의 목소리만 나오는 시간이 제법 길다. 몇몇 들어오는 사람들도, 대구탕이 끓는 모습만 보이고, 내 목소리만 들려서 그런지 별로 채팅을 남기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침마다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채팅창이 활발하지만, 처음엔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는 빈 화면을 바라보면서 혼자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민망했다.


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면서, 뉴스에서 나오는 일기예보를 읽어주는 나.


"아, 오늘 소나기가 온답니다. 오늘 외출하실 때 우산 들고 외출하세요."


내가 말을 해도, 채팅창엔 아무도 글을 남기지 않는다.


"비가 적당히 오면 좋은데......."


아무런 반응도 없는 화면에 홀로 말을 하고, 뻘쭘한 마음에 홀로 밥만 계속 먹는다.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또 한 마디 던진다.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혼자서 밥을 계속 먹는다. 이런 시간이 그냥 계속해서 반복된다. 


처음 라이브 방송을 하시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시는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빈 화면에서 혼자 계속해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립에서는 방송하고 있는 방에 들어오시는 분들의 닉네임이 보이기 때문에, 닉네임을 읽으며 인사를 건네는데, 인사를 받은 닉네임분들의 반응이 없다.


한여름에, 안 그래도 더운데, 버너까지 켜고, 탕을 먹어서 땀이 삐질삐질 나고,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식은땀도 흘러내린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그래도 밥을 먹느라고, 시간을 때웠는데, 밥을 다 먹고 나니 정말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식사는 하셨나요?"


말을 던지면서도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기대하지 않은 것처럼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첫날의 방송은 그냥 이렇게 끝났다.


방송을 끝내고 다음날 계속해서 방송을 해야 할까? 너무나 고민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겨우 하루 방송을 해놓고, 뭘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삼십 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도 어찌나 길고 막막하게만 느껴지던지......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는 것이 너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하아........ 괜히 시작했나........'


마음을 먹고 시작하기까지는 그것을 하고, 하지 않고 나의 의지에 달렸지만, 한 번 시작한 이상 한 번만 해보고 안 한다고 하기에는 부끄럽게 느껴졌다.


'차라리 처음부터 하지를 말걸, 괜히 해가지고....... 이제 와서 한 번 해보고 못하겠다고 하려니까 쪽팔리는데....... 아........ 젠장!.........제엔장!!'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 다음 날 아침에 또 방송을 켰다. 


다음날, 전날과 마찬가지로, 역시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줄 달린 마스크를 써서 뭐한다고 턱스크를 하고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두 번째 날에는 다행히 누군가 말을 걸어 줬다.


'어? 말을 걸어주네?'


아무런 반응이 없는 빈 화면만 보다가 누군가 말을 걸어 주니 너무나 반가웠다. 많은 말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허공에 혼자 웅얼거리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물어봐주고, 그 글을 읽고, 대답을 하고 하니까 혼자서 말을 할 때보다 훨씬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날도 지나가고, 방송을 계속하는 며칠 동안, 약간의 대화가 있을 때도 있었고, 대화가 거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때로는 말을 걸어주는 사람으로 인해 반갑고 또 즐겁게, 때로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공허한 빈 공간에, 나의 얼굴이 나오는 화면을 나 스스로 홀로 쳐다보며 뻘쭘하고, 막막하게 방송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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