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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pr 19. 2022

부부의 라이브 커머스

그립 - 아침엔 대구탕 / 네이버쇼핑라이브 - 낙지 한마리 대구탕

아내가 네이버쇼핑라이브에서 낙지한마리대구탕으로 방송을 한지 두 달이 훌쩍 넘었다.


첫 방송이 끝나자마자 


"못하겠다!"


고 말했던 아내가 과연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지는 나에게 상당히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정말 이대로 한, 두 번 하고 끝내려나?'


하지만 나의 설득(?) 반, 떼 반에 아내는 쪼금만 더 해보자고 했고, 아내의 스승이신 그립의 귀티나 선생님의 말씀


"100번은 해보시고 말씀하이소~"


라는 말에 아내는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


100번을 하고 나서 안 할지, 계속할지는 아직도 나의 관심사다. 


얼마 전 아내가 방송이 끝난 줄 알고 이야기를 하다가 방송이 끝나지 않은 사실을 알고선 깜짝 놀라 얼굴이 빨개져서 시청하는 분들께 인사를 다시 하고 방송을 하는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라이브의 묘미가 또 이런 맛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제 오전 방송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엔 나의 얼굴이 붉어진다.


어제 오전.


늘 그렇듯이, 아침에 대구탕을 먹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이젠 나의 하루 루틴이 되어버린 아침 식사하며 떠들기. 


쉼 없이 떠들다 보니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지만, 나름 최대한 하지 않으려(?) 애를 쓰긴 한다.


그런데 어제는 그러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이라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 등원, 등교를 시키느라 분주하다.


"라이오 모드로 들을게요~"


바쁜 사람들이 자주 남기는 챗. 뭔가를 하고 있거나, 지금 바쁘니까 글을 올리지 않고 듣기만 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듣기만 하다가 누군가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거나, 뭔가를 물어보면 내가 글을 읽어주는데, 그러면 잠시 스마트폰을 들어 글을 남기고 다시 방송을 듣는다.


"수건 5장......."


아이들 등원시키느라 이것저것 챙기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나도 아이들 어렸을 적 일이 떠올라 물었다.


"수건 5장요? 이야~ 아, 그런데 혹시 A4 용지도 챙겨가나요?"


5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예전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A4 용지를 챙겨 오라고 했던 일이 떠올라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아이를 둔 부모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예? A4 용지까지 챙겨 오라고 했나요?"


"그건 좀 심한데......"


"난 아이들 먹을 간식까지 챙겨 오라고 해서 챙겨갔어요!"


"진짜 말하려다가 우리 아이가 혹시 눈치 보게 될까 봐 참았다는....."


"결국 우리 아이가 다니던 원은 신고 들어갔어요!"


나 역시 예전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A4 용지를 챙겨 오라는 말에, 그것도 브랜드까지 콕 집어 이야기를 했던 말에 황당했던 기분이 들었었기에 별생각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챗을 올렸다.


"저 먼저 나가볼게요."


그 챗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얼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관계자 분들이 계시면 죄송하다고, 모든 분들이 다 그런 건 아니고, 아주 소수의 그런 분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방송이 다 끝나고 나서도 기분이 영 찜찜했다. 어제 아침에 아내도 방송에 들어와 있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아내도 내가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시 유치원에 아이들이 A4 용지를 들고 갔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다.


"다른 유치원에는 수건이나 뭐 이것저것 다른 걸 들고 오라고 하는 곳도 많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유치원에는 A4 용지 말고 더 들고 오라고 한 게 있었나? 그리고, A4 용지를 들고 오라고 한 것도, 아이들이 다녔던 유치원은 다른 유치원들하고 다르게 매일매일 프린트해서 과제 나눠주고, 가정통신문 써주고, 읽어 볼만한 자료들을 보내줬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유치원에서 그렇게 매일 유치원생이 풀어볼 만한 문제 프린트해서 보내주는 곳은 지금도 잘 없을 텐데? 차라리 A4 용지 안 받고, 그런 거 안 해줬으면 더 편했을걸? 거기 유치원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말.... 아니 그냥 지껄였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지껄이는 동안 나의 방송을 보고 있었던 누군가는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을까?


하지만, 분위기가 다 그렇게 흘러가다 보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먼저 나간다고 하고 나가신 분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관계자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수건을 가지고 오라는 것, 아이들 간식을 챙겨서 보내라는 것, 프린트 용지를 보내라는 것 등등의 일들이 법을 위반한 행위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당사자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 거기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면 결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떠들 때 떠들더라도 제발 말을 조심해서 떠들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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