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발견
홍사장은 오늘도 씩씩 거리며 정 부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정 부장! 이것도 하나 제대로 확인 안 했어?!!”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커다란 덩치의 정 부장이 비쩍 마른 홍사장 앞에서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대답했다.
사무실에는 십여 명 남짓의 직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할 일을 바쁘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모두의 신경은 그쪽으로 가 있었다. 하긴, 사장이 부장을 사무실 한복판에서 혼내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누가 일에 집중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보고서 마지막에는 두 칸을 띄우라고 했어? 안 했어?!!”
정 부장의 잘못은 명확했다. 보고서나 기획서의 마지막에는 ‘끝’이라는 글자와 마침표 ‘.’를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넣을 때는 반드시 두 칸을 띄우고 ‘끝.’이라고 적어야 했는데, 정 부장은 한 칸만 띄우고 ‘끝.’이라고 썼다.
홍사장에게 있어서 그런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홍사장이 허공에 서류를 뿌렸다.
“다시 써 와!!”
“네. 사장님.”
홍사장이 던진 종이를 정 부장은 커다란 덩치를 구부려 주섬주섬 주웠다.
찌익
구부리고 앉는 정 부장의 꽉 끼인 바지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쭉 찢어졌다.
“엇헛!!”
정 부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섰다. 홍사장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가지가지한다! 진짜!”
사무실 몇몇 직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웃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지금 이 불편한 상황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것이 뻔했으니까.
홍사장이 몇 마디 잔소리를 덧붙이고는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정 부장은 홍사장이 사무실에서 나가고 나서도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홍사장이 완전히 떠났다고 여겨질 때쯤 바짓가랑이를 움켜잡고 옷을 갈아입으러 허둥지둥 뛰어갔다.
사무실에서 나온 홍사장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더운 날씨 탓에 차 안의 온도가 높아서 내부가 후끈했다. 홍사장은 얼른 시동을 켜고 앞, 뒤 4개의 창문을 다 내렸다.
“에이 씨.”
그의 입에서 버릇처럼 B를 빼먹은 기초 알파벳이 튀어나왔다.
날은 덥고, 직원은 제대로 일도 못하고, 날이 갈수록 대출 이자는 오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수입하는 부품 가격도 오르고, 이건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었다.
홍사장은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아 회사를 벗어났다.
점심시간.
홍사장은 점심시간에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밥을 혼자 먹지 말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개뿔이다.
그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의 말이고, 자기처럼 바쁜 사람은 혼자서 빨리 밥을 먹고 얼른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해야만 했다. 모여 앉아 시시덕거릴 시간이 어딨어? 한심한 것들!
공장 근처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뷔페식이었다. 뷔페식으로 먹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직원들과 가끔 마주치면 불편했다. 말을 나누자니 귀찮았고, 그렇다고 회사 직원들인데 말 한마디 안 나누고 밥을 먹자니 어색했고.
그래서 홍사장은 주로 차를 타고 고개를 넘어갔다. 공장지대에서 고개를 하나만 넘어가면 식당들이 모여있는 식당가가 있었기 때문에.
‘뭘 먹을까......’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홍사장이 흥미를 느끼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이다.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고민을 하고 먹는 동안의 시간.
‘간단히 국수를 먹을까? 아니다. 오후에 일을 하려면 든든히 먹어둬야지. 국수론 안 되겠어. 그럼... 곰탕을 먹을까..... 아니, 아니야. 기름기 많은 음식은 이제 좀 피해야지. 의사도 기름진 음식을 줄이라고 했으니. 보자... 생선 구이를 먹을까? 가시 발라먹는 것도 귀찮은데.... 냄새도 날 것 같고.... 날이 좀 더워도 국물이 뜨끈한 걸 먹어야 밥을 먹은 거 같긴 할 텐데....’
식당가에 모여있는 여러 음식들을 떠올리며 행복한 고민을 하는데, 커브를 꺾어 돌아가는 도로에 대구탕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그래! 오늘은 속 편안하게 대구탕으로 하자!’
홍사장은 이 대구탕 가게를 자주 찾았다. 특히 아침을 거르고 커피를 마셨을 때처럼 속이 쓰리고 따가울 때는 어김없이 대구탕을 찾았다. 맑은 국물의 대구탕은 자극적이지 않고, 기름기도 없어서 먹으면 속이 편안했다.
화려한 카페와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대형 음식점들이 많은 산속의 식당가에 유독 혼자서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작은 대구탕 가게.
거기다 길가에 있다고는 하지만, 커브를 돌아가는 길 인 데다가, 다른 카페와 식당이 입구를 가리고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대구탕 가게.
대구탕 매장의 주인은 재밌으라고 붙여놓은 것인지, 아니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써놓은 건지 건물 외벽에 이런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숨은 맛집! 진짜 건물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지난번 혼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옆 테이블 다른 손님이 이 가게를 표현하는 말이 홍사장의 마음에도 딱 와닿았다.
당시 옆 테이블 다른 손님은 먼저 와서 음식을 시켜놓고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화를 하며 대구탕 가게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했다.
“아직 못 찾았어? 어? 어디라고? 거기 커다란 고등어 식당 간판 안 보여? 그래. 그래. 옆에 국숫집 있고. 보여? 그래 그 국숫집 맞은편에 카페하고 보리밥 식당 사이에 허름한 건물 하나 있잖아. 보여? 다 낡아 가지고 허름~~ 해 보이는 가게. 어? 그래. 그래. 거기. 거기루 와.”
말 그대로 정말 허.름.한. 가게. 밖에서 보면 왠지 쉽게 들어와 지지 않는 가게. 입구 앞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서게 만드는 낡은 외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는 이유 중에는 재미없는 현수막까지 덕지덕지 붙여놓은 게 한몫한다고 홍사장은 생각했다. 그래도 홍사장에겐 괜찮았다.
이 지역은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무지하게 몰리는 곳이라, 대부분의 식당에는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으러 가면 눈치가 많이 보이기도 했고, 몇몇 식당은 ‘한 명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써놓기도 했는데, 이곳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외관도 허름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 혼자서도 눈치를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당 중 한 곳이었다.
숨어 있는 가게인 만큼 주차공간도 그리 넓지 않았다. 가게 앞쪽에 주차하면, 이중주차를 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나중에 차를 빼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홍사장은 옆의 다른 가게들 쪽으로 넓은 곳에 주차해 놓고, 걸어서 대구탕 가게로 밥을 먹으러 갔다. 다행히 넓은 주차장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주차장이라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홍사장이 가게 입구 방충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낭랑한 목소리.
대구탕 가게의 남자 사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사장은 대답하지 않고 빈 테이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대구탕 드릴까요?!”
남자 사장이 물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예.”
홍사장이 짧게 대답했다.
홍사장은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올 때마다 똑같은 대구탕만 먹는데 뭘 매번 물어보지? 참 비효율적이란 말이야......’
홍사장이 처음 이 대구탕 가게에 왔을 때는 원래 여기를 오려고 왔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 근처에 있는 곰탕 가게를 갔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지 임시휴무라고 써놓고 문이 닫혀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옆에 고등어구이 매장을 찾았는데, 그곳에 들어갔더니,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분이 잔뜩 상해서 그냥 돌아가려다가 문이 열려 있는 대구탕 가게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렇게 이곳 대구탕 매장에 들어오게 되었었다.
처음엔 너무 낡아 보여서 다른 곳으로 가거나 그냥 회사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귀찮았고, 굶기는 싫었기에 간단히 한 끼 때우고 돌아가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처음 대구탕 가게에 들어섰을 때도 오늘처럼 남자 사장이 큰 목소리로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었다.
뭐지? 남자 사장의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40대 초중반?
낡은 건물에, 대구탕 매장이라 괄괄한 할배나, 욕 잘하는 할매를 예상하며 들어온 홍사장은 살짝 당황했다.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한 여자가 물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아줬다. 이 여자의 나이도 40대 초중반. 둘이 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부부 사이다. 그러니까 남자 사장과 여자 사장. 부부 사장.
주방 쪽에 인기척을 살펴봐도 둘 이외에는 없다. 설마 저 둘이서 대구탕 가게를 한다고?
홍사장은 여자 사장이 놓아둔 물을 컵에 따라 벌컥 한 모금 마셨다.
“주문하시겠어요?”
여자 사장이 물었고, 홍사장은 대구탕 매장이니 당연히 대구탕을 주문했다. 얼른 먹고 가자! 오늘은 밥 먹는 일진이 사납구나!
낡은 가게에 40대 초중반의 젊은 부부가 하는 대구탕. 맛은 안 봐도 뻔할 듯. 젠장! 젠장이었다.
주방에서 지지고 볶는 소리가 나더니 곧 음식이 나왔다. 근데, 모양이... 어? 제법 흉내는 냈네?
가지볶음, 오이양파절임, 깍두기, 김, 부추전, 두부구이. 그리고 대구탕과 흑미가 섞인 밥까지.
홍사장의 입에 군침이 살짝 돌았다. 눈으로 찬찬히 음식을 관찰하고, 음식 하나하나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먼저 가지볶음.
적당한 짠맛과 감칠맛. 기름을 둘러 생긴 반들반들한 윤기와 알싸하게 풍기는 마늘의 향. 그리고 마지막 은은히 코끝을 스치는 참기름의 꼬솜~한 향까지. 좋아! 참기름의 향이 너무 강하면 느끼하게 느껴질 텐데, 적당했다. 마늘의 향도 너무 강하게 나면 살짝 역하게 느껴지는데, 이것 또한 적당했다. 일단 이건 합격.
다음은 오이양파절임.
오이는 안 좋아하니까 패스.
그다음 깍두기.
왐마?!! 이것은 그냥 깍두기가 아닌데? 보통 식당에서 나오는 큼직큼직한 깍두기가 아니라 아주 얇게 저미듯 썰어 젓갈과 함께 무쳐 나온 깍두기. 거기다 젓갈 깍두기에서 날 수 있는 비린 젓갈의 맛을 잡기 위해 함께 넣은 잔파까지! 기계로 자른 모양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하나하나 썰어서 만든 깍두기! 엄청 손이 많이 갈 텐데!! 이거 진짜 찐이다!
홍사장은 깍두기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의외였다. 이런 맛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그저 그런 맛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디서 사 오는 건가? 아니면, 주방 안에 솜씨 좋은 할매가 한 분 계시나? 저 사람들이 만든 거라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후우~”
홍사장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다음은 김. 물론 이건 이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 말린 것은 아닐 거니까 만들어 놓은 것을 사 오겠지. 괜찮은 김을 사용하는지, 값싼 싸구려 김을 사용하는지 한번 볼까?
김을 한 장 들어 흑미밥을 싸서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바삭바삭한 김. 조미가 되지 않은 돌김의 종류인데, 훨씬 풍미가 좋고, 바다향이 가득 풍겼으며 김 특유의 단맛이 돌았다. 그냥 일반적인 돌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맛이 좋았다. 홍사장은 이 맛을 잘 알았다. 이것은 돌김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곱.창.김! 일 년 중 딱 한 달만 채취가 가능한 최상급 돌김. 김 원초의 모양이 곱창처럼 생겼다고 해서 곱창김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김이었다.
이것 봐라? 김도 상당히 좋은 걸 쓰는 것 같은데? 허허.....
반찬 하나하나를 먹어보고 음미할수록 점점 더 놀라웠다.
다음 것도 가 보자!
이번엔 두부? 홍사장은 양념장이 올려져 있는 두부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앗. 뜨!”
차가운 두부구이인 줄 알고 한입 크게 물었다가 뜨거워 화들짝 놀라며 얼른 다시 뱉었다. 뭐야? 이거! 미리 구워놓은 게 아니었어?
홍사장은 대부분의 식당에서 그러하듯 두부구이 역시 미리 구워놓은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차갑거나 기껏해야 온장고에 넣어둔 따뜻한 정도의 온도라 생각했다. 그런데 갓 구워낸 뜨거운 두부구이라니!! 옷을 입혀 튀기듯 구워낸 두부구이의 겉은 빠삭빠삭하고, 속은 두부의 부드러움과 특유의 고소함이 넘쳐나는 두부구이. 그 위에 살푼 올려놓은 간장에 파와 양파, 고춧가루 등이 들어간 감칠맛이 넘치는 양념장의 완벽한 맛의 하모니!!
놀라웠다. 바로바로 구워낸 바삭한 두부구이라니!! 거기다 양념장의 맛까지!
두부구이의 엄청난 맛과 가득한 정성에 홍사장은 엄지척 할수 밖에 없었다.
두부구이는 정말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엄청난 맛이었다.
좋아! 마지막 부추전이다!
와삭! 씹히는 소리와 동시에 알싸한 방아향이 입안에 그득 퍼졌다. 뭐지? 방아? 다행히 홍사장은 방아향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경상도식 부추전인 방아가 들어간 부추전은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양초가 살짝 섞인 방아가 들어간 부추전. 팬을 불에 먼저 달궈서 올리면 나타나는 전 특유의 테두리 끝 모양과 빠삭한 식감! 방아와 부추가 함께 잘 어우러져 입속에서 춤을 추면서, 바삭바삭 씹어먹는 홍사장의 입맛을 흡족하게 해 줬다.
‘제법이군!’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이 장사를 하기에 솔직히 맛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밑반찬이 의외로 정갈하고, 맛이 너무 괜찮았다.
‘그래도 중요한 건 메인이지!’
홍사장은 꼼꼼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사람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그 틀을, 고정관념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틀에는 젊은 사람들은 대구탕의 깊은 맛을 잘 낼 수 없다는 것도 있었다.
한 그릇의 대구탕이 그릇에 담아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대구탕을 홍사장은 매의 눈처럼 날카롭게 살폈다.
대구살. 콩나물. 애호박. 청양초. 홍초. 간마늘, 무 그리고 파..... 음? 파?
홍사장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대구탕을 평소 그리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복국이나 아귀탕처럼 맑은 탕으로 먹기에 좋은 음식이라 가끔씩 먹고는 했는데, 파를 이렇게 넣어서 주는 곳은 처음 봤다. 대구탕 위에는 자고로 철에 따라 미나리 또는 쑥갓이 올라와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국룰 같은 것으로 홍사장이 여태껏 가봤던 대구탕 매장에서는 모두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
밑반찬으로 입맛엔 흡족했지만, 자신의 예상과 달랐던 음식 맛에 살짝 당황했던 홍사장은 이제야 자신의 예상을 따라가는 것 같은 기분에 스스로 만족했다.
‘이게 젊은 사람들의 한계지. 한계. 디테일하지 못하단 말이야.......’
홍사장은 스티브잡스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여러 가지 어록들도 자주 빌려 쓰곤 했는데, 이날 대구탕 매장에서 떠오른 스티브잡스의 명언.
사업의 성패는 디테일에 달려있다!
쑥갓이면 쑥갓이고, 미나리면 미나리지 도대체 대파는 또 뭐란 말인가? 무슨 곰탕인가??
홍사장은 혼자 속으로 욕을 하면서 한 숟갈 푹 떠서 입에 넣었다.
근데!! 우황! 머, 머선 일이고?! 이게 머선 일이고!!?? 와~ 이게 무슨 맛??
홍사장은 얼른 두 번째 숟가락으로 국을 퍼서 입에 넣었다.
“으~ 조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이란 녀석이 제멋대로 맛을 느끼고, 말을 뱉고 있었다!
대구탕 특유의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맛! 적당한 파의 향과 뭉근하게 익어 입속에서 순두부처럼 녹아내리는 무. 아삭한 콩나물.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대구살까지!! 크~ 지대루다! 지대루야!!
홀로 감탄을 연발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구탕 한 그릇이 싹 비워져 있었다.
홍사장은 순간 당황했다. 이것을 경쟁이라고 부를 순 없었지만, 자신의 틀을 벗어나는 맛이었고, 그것에 잠시 정신을 놓았다는 사실에 창피했다.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예? 아, 네. 괜찮습니다.”
‘여기가 무슨 레스토랑인가? 그런 것까지 물어보게?’
다른 트집을 잡을 게 없었던 홍사장은 주인장의 그런 친절함이라도 트집을 잡아버리고 싶었다.
홍사장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왔다. 대구탕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는 동안 입안에 계속해서 맛의 여운이 남았고, 음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홍사장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맛은 있.었.다.
그때의 색다른 맛 경험 이후로 홍사장은 이 대구탕 매장을 자주 찾았다. 땀을 흘리며 먹는 뜨거운 대구탕 한 그릇은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오늘도 정 부장 때문에 난 화를 대구탕으로 풀 생각이었다. 뜨겁지만 시원~하게!
비효율적으로 오늘의 주문을 받은 주인장이 대구탕과 밑반찬으로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맛있게 드세요~”
대구탕 서빙을 하고 경쾌하게 돌아서는 여자 사장. 오늘도 남자 사장과 여자 사장은 하하 호호 웃으며 즐거워 보였다. 코딱지만 한 좁은 가게에서 하루 온종일 둘이 붙어 일만 하면서 뭐가 그리 즐거울까? 매출도 얼마 안 될 거 같은데. 가족들 건사는 제대로 하는 건가? 남자가 야망이 있어야지. 딱 보니 하루하루 벌어먹는 거에 만족하고 사는 거 같은데, 저래선 10년, 20년이 지나도 여기서 똑같은 장사나 하고 있겠지...
홍사장은 이곳의 음식은 맛있었지만, 주인장들은 별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자신이 젊었던 시절에는 발에 땀이 마를 새 없이 뛰어다니고, 구두 뒷굽이 닳는 게 예사였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게 없는 것 같았다. 야망도 없고, 꿈도 없이, 변화가 두려워 현재의 불행에 안주하는 젊은 사람들.
홍사장은 차려진 대구탕과 반찬들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남자 사장은 오늘도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나와서 매장을 살폈다. 주방이나 잘 지키지 뭘 저리 또 나와서 돌아다녀? 밥 먹는 사람 부담스럽게.
“안녕하세요?”
남자 사장이 인사를 건넸다.
“아, 예.”
남자 사장은 홍사장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 싫어하는 성격이란 걸 알고 인사만 살짝 하고 지나가 옆 테이블 사람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쪽도 여기 단골인지 아는 척을 했다.
“예~ 사장님. 오늘도 여윽시 대구탕 시원~하고 좋습니다!”
손님이 엄지를 척 올리며 말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뭐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남자 사장이 물어보자 손님이 갑자기 목소리를 살짝 낮추면서 은근히 말했다.
“저기.... 돈이 좀 필요한데...”
그러자 일행들이 웃었다. 그러자 남자 사장이 목소리를 비슷하게 흉내 내며 똑같이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방금 막 다 떨어져서...”
손님과 일행들 그리고 남자 사장까지 다들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참..... 웃기고들 자빠졌네. 홍사장은 그런 시답잖은 농담이나 하는 인간들을 경멸했다. 도대체 뭣 하느라 그런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건지 홍사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홍사장은 인상을 구기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을 김에 싸서 입에 구겨 넣었다.
띠링.
홍사장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왔다.
[web발신]
대출금 납입. 33,965,210원 5월 25일 출금예정.
“하아....”
구겨진 홍사장의 인상이 더 구겨졌다. 이번엔 안면이 아예 못쓰게 될 만큼 망가진 표정이었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으로 대출을 받았기에 2%대의 대출로 1,000만 원대의 이자를 냈는데, 작년 겨울부터는 미국발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자가 5%가 넘게 올라가 3천만 원대 이자를 매달 내고 있었다. 한 달에 2천만 원 이상을 이자로 더 내고 있는 셈이었다.
홍사장은 숟가락은 탁 놓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문자를 보고 나니 도저히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러시아는 하필 전쟁을 일으켜 수입하는 원자잿값을 더 올려놓았다. 이대로라면 올해를 넘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만약 자잿값이 더 오른다면? 아니, 아예 수입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온다면? 거래처에 납품을 할 수가 없어지는데? 거래가 끊긴 상황에 금리가 더 오른다면?
그땐 정말 모든 게 끝이다! 평생을 피땀 흘려 쌓아 온 회사가 한순간에 망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할 뿐인데, 도대체 왜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엉망이 되어야 하는 거지?’
홍사장은 밥맛이 떨어져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남자 사장이 매번 물어보는 말을 또 물었다.
“맛있게 드셨어요?”
오늘따라 유달리 기분이 나쁜 홍사장은 매일 똑같은 질문을 하는 남자 사장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불쾌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남자 사장은 그런 홍사장의 표정을 슬쩍 보더니, 아무런 말 없이 계산을 하고선 가게를 나가는 홍사장의 등 뒤에서 또다시 매번 하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홍사장은 자신이 불쾌한 표정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쾌한 어조로 등 뒤에서 인사를 건네는 대구탕집 남자 사장이 마치 자기를 놀리는 것 같아 더 기분이 나빠졌지만,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얼른 회사로 돌아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때였다. 물론, 자신이 돌아간다고 해서 이자가 내려간다거나, 거래처에서 발주가 들어온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로 돌아가야만 했다. 마음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