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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ug 18. 2024

꿀 막걸리

달콤~한 꿀 막걸리

쏴아아.   

  

비가 세차게 내렸다.     


정섭 씨는 밑반찬으로 나오는 부추전을 젓가락으로 쭉 찢어 입에 가득 넣고는 쿰척쿰척 씹으며 양은 막걸리잔에 담긴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크으~~ 조타!”     


정섭 씨는 모든 종류의 술이 다 맛이 있지만, 잔에 따라서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각기 술에 어울리지 않는 잔에 마시면, 술맛이 반감되고, 어울리는 술잔에 마시면 맛이 배가 된다.     


소주는 작은 소주잔에 마셔야 제맛이고, 맥주는 투명한 유리컵에 마셔야 제맛이다. 그리고 막걸리는 역시 양은 막걸리잔이 최고다.     


막걸리를 쭉 들이켠 정섭 씨가 행복한 표정으로 창밖에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말했다.     


“거봐. 내가 오늘 비 많이 쏟아진다고 했잖아. 이런 날 무슨 일을 한다고.......”     


 정섭 씨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지만, 어쩐 일인지 정섭 씨 주위에 앉아 대구탕을 먹는 일행들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별말 없이 대구탕의 뜨거운 국물만 후루룩 마셨다.      


몇 잔의 막걸리에 술기운이 살짝 오른 정섭 씨가 주위 사람들의 얼굴을 쭉 둘러보더니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송팀장!”     


 목소리가 제법 컸다. 일행들이 정섭 씨를 쳐다봤고, 일행이 아닌 대구탕 가게 손님들도 잠시 정섭 씨를 쳐다봤다. 정섭 씨가 부른 송팀장이란 사람이 대답했다.     


“아, 왜요?”     


송팀장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정섭 씨가 자신의 가슴팍을 팡팡 두드리면서 말했다.     


“나는 괜찮아. 나는. 그러니까 여기 다른 사람들 반대가리는 좀 쳐 줘. 오늘 다들 고생했잖아!”     


정섭 씨의 말에 송팀장이 대구탕을 먹다 말고 숟가락으로 테이블을 탁 쳤다.     


“에이 씨!”     


“야, 송팀장! 나는 안 받는다잖아! 다른 애들만이라도 쳐주라고!”     


 정섭 씨가 말한 반대가리는 한 대가리의 절반. 그러니까, 오늘 절반 일한 걸 쳐주라는 말이었다. 하루는 한 대가리, 반은 반대가리.     


“아니, 형님! 나는 뭐 땅 파서 장사합니까?! 형님도 공사판 돌아가는 거 뻔히 알면서 술만 드시면 꼭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도대체 왜 이럽니까?”     


“야, 송팀장! 우리 RCS라서 다른 팀보다 돈도 많이 벌잖아!”     


“많이 벌긴 뭘 많이 벌어요?! 한 동 올릴 때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한테 뽀찌로 주는 돈이 얼만데요! 그리고 슈퍼바이저 도둑놈들도 늘 술값 달라, 담뱃값 달라면서 돈 다 뜯어가고! 형님도 해봤으면서 몰라서 그래요?”     

송팀장과 함께 일하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공사현장에서 RCS라고 불리는 일을 하는 팀이었다.     


Rail Climbing System.     


 20층 이상 초고층 건물에 적용되는 외벽에 설치하는 조립식 발판인데 도면도 볼 줄 알아야 하고, 조립도 할 줄 알아야 하기에 작업의 숙련도가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당은 일반 잡부로 일을 하는 것보다는 더 많았는데, 무거운 철 덩어리들을 손으로 들고 날라서 조립하는 일이다 보니 작업의 강도가 제법 높았다.      

“에이~ 씨.”     


정섭 씨가 막걸리를 잔에 더 따라서 벌컥벌컥 마셨다. 송팀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현장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했다. 공사현장에는 어쩔 수 없이 고층작업을 할 때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는 타워크레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RCS 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멘트를 타설 하는 팀도 있고, 철근 하는 팀도 있고, 배관하는 팀도 있고, 무수히 많은 각각의 팀들이 현장에 존재했다. 그런데, 이런 팀의 일은 누가 우선이고 누가 뒤라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무전으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부탁을 하면, 타워크레인 기사는 마음에 있는 순서대로 하나하나 일을 처리했다.     


 만약 RCS 팀이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밉보였다면, RCS 팀에게는 타워크레인의 고리가 일을 마칠 때까지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날 공정은 진행하지 못하게 되고, 일을 하러 온 인부들은 담배나 피우고, 음료수나 마시면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명 뽀찌라고 불리는 뒷돈을 안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공정이 진행되기 위해선.    

 

 거기다 일명 슈퍼바이저로 불리는 사람. 이 사람은 일감을 준 회사에서 파견 나온 현장 관리 감독관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면, 시행사가 아파트 공사를 시공사에 맡기는데, 시공사는 이것을 또 하도급 계약을 맺어 하청업체 여러 곳에 부분 부분 나누어 공사를 맡기게 되는 것이다.      


RCS 같은 경우에는 발판조립부품을 만드는 제법 규모 있는 회사가 시공사로부터 하도급을 받고, 이 부품을 조립하는 팀으로 송팀장 같은 조립팀에게 다시 하도급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때 조립부품회사에서는 자사의 제품을 RCS 팀이 제대로 조립을 하는지, 일은 잘하고 있는지 현장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슈퍼바이저를 보내는데, 이런 슈퍼바이저들의 성격도 천차만별이었다.     


현장에 있는 듯 없는 듯 멀리 그늘에만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사람.      


마치 자기 일처럼 현장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 물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다.     


그리고, 지금 송팀장이 겪는 슈퍼바이저처럼 일을 적당히 도와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일당을 인부 한 대가리 일당으로 챙겨달라고 하는 사람.     


누가 일을 도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일당은 일반 인부들보다 더 많은 숙련공의 일당으로 챙겨달라고 하는 썅놈의 자식!      


 이번 공사현장의 슈퍼바이저는 차를 타고 집까지 2시간 이내에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인데도, 굳이 집에 가기 힘들다며 송팀장에게 숙소를 잡아달라고 해서, 숙소를 잡아줬다. 거기다가 밤에는 술집에도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여성 도우미가 있는 비싼 술집으로!! 


송팀장의 주머니가 줄줄 샜다. 그렇다고 슈퍼바이저의 부탁을 거절해서 밉보일 수는 없었다. 조립하는 일을 주는 회사에서는 현장 감독관인 슈퍼바이저의 평가를 전적으로 믿었기에, 슈퍼바이저가 송팀장 팀이 너무 일을 엉망으로 해서 다른 RCS 팀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해버리면, 앞으로 일을 맡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섭 씨는 이런 송팀장의 속내를 알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될 것을, 본인이 가장 연장자랍시고, 맏형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또 입을 열었다.


“어이. 송팀장. 그래도 그게 아니지! 다들 힘들게 아침 일찍부터 일하러 나왔는데, 그럼 뭐, 이대로 밥 한 그릇 얻어먹고 들어가면 끝나는 거야?! 누가 밥 못 얻어먹어서 현장 나왔나?”     


“하아..... 씨... 자, 형님. 반대가리 하려면 오전 10시 넘어가야 하는 거 알지요?”     


 날씨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보니, 오전 10시가 넘어서 비가 오면 반대가리를 쳐주고, 오전 10시 이전에 비가 오면 그날은 그냥 일당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공사현장의 불문율이었다. 그리고, 그 불문율에는 누구 하나 억울할 것도 없었다. 만약 10시가 조금 넘어서 비가 내리면, 인부들은 12시까지 일을 하지 않고도 반대가리의 일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지. 아는데, 그래도.....”     


“오늘 9시도 안 돼서 일 마쳤습니다!! 제가 언제 10시 딱 맞춰서 쳐주고, 안쳐주고 했습니까?! 엇비슷한 시간에만 마쳐도 다 반대가리는 쳐줬는데, 왜 계속 이럽니까?!”     


송팀장의 언성이 높아지자, 정섭 씨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아니.... 그래도 혹시나 불만이.......”     


“불만이요? 불만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여기 친구들 불만이 뭔지 진짜 한번 들어보실래요?”     


“아이. 형! 하지 마세요.”     


 다른 인부들이 송팀장을 말렸다. 정섭 씨는 송팀장의 말과 다른 인부들의 반응에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고 느꼈다. 갑자기 정섭 씨의 기분이 확 상했다.     


“뭔데?”     


“하아.... 진짜.”     


송팀장이 화를 삭이는 듯한 표정을 짓자 정섭 씨가 탁자를 쾅 내리쳤다.     


“뭐냐고 씨팔!! 말해보라고!!”     


“예! 말해드릴게요! 다들 형님하고 일하기 너무 힘들답니다!!”    

 

송팀장의 말에 정섭 씨는 뒤통수를 세게 두들겨 맞은 듯 멍해졌다.     


“뭐... 뭐어?!!”     


“맨날 나이 많다고, 남들 토루판 2장, 3장 들어서 나를 때도 혼자서 1장 들고 느릿느릿 나르고, 발판이나 파이프 나를 때도 마찬가지고!! 술 많이 마시고 온 다음 날에는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 혼자서 구석에서 남들 일하는 거 보고만 있고! 무슨 나이 먹은 게 대숩니까?! 일을 하러 나왔으면, 일을 해야지요! 그렇게 설렁설렁 일하면, 남은 일들은 누가 합니까? 다 다른 사람들이 형님 몫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섭 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요! 오늘 일도 마찬가집니다! 빗방울 좀 떨어지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뭐? 하이바에 빗방울이 맺혔다가 또르르 굴러서 떨어지면 그땐 일 스톱해야 한다고요? 예?! 아니, 무슨 그만한 비에 일을 멈춥니까? 비는 조금만 내려도 하이바에서 물이 떨어지지, 그럼 내린 비가 하이바에 딱 달라붙어 있습니까? 껌딱지처럼?”  

   

“아니, 그럼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일을 해야 하냐?!”     


정섭 씨가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제가 지금 내리는 비 말하는 겁니까?! 아까 말이에요, 아까! 아까는 얼마 안 내렸잖아요?! 휴우.....”    

 

송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계속 말을 이었다.     


“제가 10시까지 일을 안 했다고 딱 끊어서 반대가리 못 주겠다 이러는 거 봤습니까?! 비가 조금 내리지만, 좀 더 일하고, 엇비슷한 시간이라도 일을 하면 저도 어떻게든 챙겨드리려고 하잖아요! 근데, 형님은 무슨 비를 기다리는 사람도 아니고, 몇 방울 떨어지자마자 가자! 가자! 연장 챙겨라! 사람들 선동하는 것도 아니고!”    

 

“임팩트하고! 타카하고! 이런 것들 다 비 맞으면 버리니까! 못쓰니까 그런 거 아니야! 이 자식 이거 웃기는 놈이네! 지 연장들 걱정해 주니까...”     


RCS 팀의 모든 연장은 송팀장의 돈으로 마련한 연장들이었고, 송팀장의 소유였다.     


“형님! 제 연장들이니까, 제가 제일 걱정이 많이 되지 않겠습니까? 못쓰게 되면 또 비싼 연장을 고치던가, 돈 주고 사야 하는데? 그런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적정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적정선! 어느 정도는 일을 해야 저도 조금이라도 일당을 쳐주지요!”     


“그만들 하세요! 식당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인부들 중 한 명이 둘을 말리며 말했다.     


송팀장이 주위를 살펴보니, 대구탕 매장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며 그들을 힐긋힐긋 쳐다봤다.      

“에이 씨... 얼른 먹고 가자!”     


 송팀장은 쪽도 팔리고, 화도 났다. 비가 와서 일은 일대로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나온 인부들 밥이라도 먹여서 집으로 보내려 일부러 식당에 밥까지 먹으러 왔는데, 안 오는 것만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냥 다들 바로 집으로 보내버릴걸! 젠장! 돈은 돈대로 쓰고, 욕먹고! 저 인간하고 엮이면 하여튼 재수가 없다!'


 송팀장이 정섭 씨를 노려봤다. 정섭 씨는 송팀장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잔을 들어 벌컥벌컥 마셨다. 


'저 새끼. 술에 환장한 새끼. 잔까지 다 처마시겠네. 저러니 마누라도 도망가지!'     



 정섭 씨는 이혼하고 혼자였다. 아들은 다 컸는데,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다. 정섭 씨는 젊은 시절부터 공사현장에서 일을 배웠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정섭 씨에게는 그 당시, 처음 일을 배울 때 공사장의 그 모습들이 세상의 사회생활이었다.     


 함바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막걸리도 한 사발 할 수 있는 곳. 그날의 일을 마치면 다 같이 실비집에 모여 소주 한 잔을 하며 고된 노동으로 지친 하루의 피곤을 덜어버릴 수 있는 곳. 일하는 중에 비라도 쏟아지면, 낮술을 달리는 곳. 정섭 씨에게 직장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젠 함바집에서 술을 마신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아예 술을 팔지도 않았다. 게다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일을 마치면 다들 곧장 집으로 가기 바쁘다. 다음날 저들끼리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리 중요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배달음식 시켜놓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전부였다.     


어린놈의 쉐키들! 이렇게 사회성이 없어서야.... 쯧쯧....     


 정섭 씨는 요즘 어린것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송팀장도 마찬가지로 어린것들에 포함되었다.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어린것들. RCS 업무를 처음 송팀장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정섭 씨였기에 정섭 씨는 더욱 화가 났다.     


“밥 다 먹었으면 갑시다!”     


 인부들이 다들 우르르 일어섰다. 창가에 앉은 정섭 씨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며 천천히 막걸리를 음미했다.     

 송팀장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들 음식점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담배를 피우는데 정섭 씨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정섭이형은? 아직 안 나왔어?”   

  

“예. 제가 한 번 가볼까요?”    

 

인부들 중 하나인 영준이 송팀장에게 물었다.    

 

“하... 씨.... 아니, 됐다. 내가 가볼게.”     


 송팀장은 신경질적으로 담배꽁초를 던져버리고, 다시 대구탕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에서 신는 작업화는 군화처럼 신고 벗기가 불편했는데, 이곳 대구탕 매장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해서 송팀장은 더 짜증이 났다.     

송팀장이 들어가 보니, 정섭 씨는 홀로 유람이라도 온 듯 유유자적 느긋하게 창밖을 보며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 쏴아아아아     


비가 시원~하게 쏟아졌다.     


“안 갑니까?”     


“먼저 가.”    

 

“예?”    

 

“나랑 같이 일하기 싫다는 놈들하고 내가 뭐 한다고 같이 가?”   

  

“하.. 참. 애도 아니고.... 여기 산인데, 어떻게 가려구요?”     


“퍽이나 걱정해 주는 척은.... 알아서 가니까 그냥 가!”     


“진짜 안 가요?”     


“안. 가.”     


송팀장은 싸늘한 표정으로 정섭 씨를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그럼 진짜 갑니다.”     


“아, 송팀장!”    

 

돌아서는 송팀장을 정섭 씨가 불러 세웠다.     


“왜요?”     


“저거. 저거 한번 먹어보고 싶다. 저거하고 막걸리 한 통만 더 계산해 주고 가.”     


정섭 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각벌집꿀이라고 쓰여 있는 스탠드배너가 있는데, 벌집꿀을 예쁘게 자른 사진이 맛깔나게 인쇄되어 있었다.     


 송팀장은 어이가 없었다. 거기다 막걸리까지... 하.... 너란 인간은 참 답이 없는 인간이다. 송팀장은 말을 계속 섞었다간 자신이 돌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계산해 주고 나왔다. 그리고는 인부들과 함께 차에 탔다.     


“정섭이형은요?”     


영준이 물었다.     


“알아서 온다고, 먼저 가란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     


다들 차에 올라탔고, 곧 RCS 팀은 영섭 씨를 놔두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싸가지 없는 새끼들.... 어째 인생을 다들 저렇게 사냐....참...나... 사회생활이라고는 ㅈ도 모르는 새끼들....”     

“조각벌집꿀 나왔습니다.”     


 대구탕 가게의 여자 사장이 네모난 벌집꿀을 통째로 서빙카트에 올려 왔다. 찐득~한 벌집꿀을 푹 뜨더니, 양은 잔에 담아줬다. 잔에 담긴 조각벌집꿀이 번들번들했다.     


“이거 어떻게 먹는 겁니까?”     


“아, 그냥 드시는 분은 씹어서 드시기도 하시고, 막걸리를 부어서 드시는 분들은 막걸리를 부어서 벌집꿀막걸리를 만들어서도 드세요.”     


“그럼 저는 막걸리 부어서 마시면 될 것 같은데, 부어서 그냥 바로 마시면 됩니까?”     


“그냥 막걸리 부어서 놔두시면 천천히 녹아서 달콤한 꿀맛이 은은하게 나고, 막 저어서 드시면 빨리 녹아서 달달한 꿀맛이 확 많이 날 거예요. 취향에 따라 다르니, 좋아하시는 취향으로 드시면 됩니다.”     


“제 취향은 딱 사모님인데.. 키킥.”     


“아, 예. 재밌네요.”     


 정섭 씨가 농담을 하면서 웃자, 여자 사장이 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서 서빙카트를 밀면서 돌아갔다. 정섭 씨는 괜히 무안해졌다. 에이 씨. 요즘 젊은것들은 정말 재미가 없다! 없어!! 우리 땐 식당에서 아줌마들이 술도 한 잔 따라주고, 엉덩이도 두들겼는데....     


- 쪼르르     


 조각벌집꿀에 막걸리를 따랐다. 차오르는 막걸리가 조각벌집꿀을 다 집어삼킬 때까지 따랐다. 정섭 씨는 가만히 놔두면 꿀이 녹지 않을 것 같았고, 젓가락으로 저으면 너무 빨리 녹을 것 같아서 그냥 잔 한쪽을 잡아들고 살살 흔들었다. 양은 막걸리잔에 뽀얀 막걸리가 찰랑찰랑 흔들리며 잔을 타고 넘실거렸다.      


 양은 잔 속에는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아들이 넘실거렸고, 여관방을 전전하며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결국 떠나버린 아내도 넘실거렸고, 공사판에 굴러먹는 막노동 일꾼이라도 곧 나라의 큰일을 할  대단한 인물로 취급하시던 돌아가신 어머니도 넘실거렸다.     


-또록     


막걸리 잔에 정섭 씨의 눈물이 떨어졌다.     


- 쏴아아아아     


창밖으론 언제 그칠지 모를 비가 세차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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