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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ug 19. 2024

곤이

뽀드득 뽀드득 맛있는 곤이

AM 5:00     


홍사장이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시계를 보니 다섯 시.  

    

“으음....”     


홍사장이 낮게 신음했다.     


속이 쓰렸다.     


 어젯밤에는 동창회 모임을 나갔다가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모처럼 제법 마시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평소에는 알람을 5시에 맞춰 놓아도 4시 50분쯤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오늘은 알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눈을 떴다. 으~~ 어지간히도 마신 모양이로구나.     


 홍사장은 주방으로 가서 물을 한 컵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 가 뱃속에서 싸악 퍼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하아..”     


갈증이 좀 가셨다.      


“으윽.”     


 차가운 물에 갈증은 가셨지만, 속은 아렸다. 이럴 땐 뜨끈~한 국물이 최고다. 그래야 술로 차가워진 속을 다스릴 수 있다.     


 술 마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아내가 끓여주던 북어 해장국이 생각났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맛을 두 번 다시 볼 수는 없었다. 6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홍사장은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로 대충 아침을 때웠다.     


‘늦었다. 가자.’     


홍사장은 급하게 씻고 출근길에 나섰다. 누가 일찍 출근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홍사장은 늘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다.     


 아침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두 시간. 그 두 시간을 홍사장은 매일 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두 시간이면 일주일에 열네 시간. 한 달이면 육십 시간, 일 년이면 칠백삼십 시간, 십 년이면 칠천삼백 시간을 남들보다 더 버는 셈이었다.     


 게다가 홍사장은 같은 두 시간이라도 아침의 두 시간은 하루 중 다른 때의 두 시간과는 질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차 한잔을 마시면서 상쾌하고, 맑은 정신으로 집중해서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른한 오후가 되면 아침보다는 정신이 흐려지고, 집중이 잘 안 되는 버려지는 시간들이 많았다. 저녁이나 늦은 밤에는 일을 하려면 잡생각들이 많이 들어 일에 보내야 할 시간을 엉뚱한 곳에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아침에 온전한 나만의 시간. 그것은 신이 주신 축복이었다. 그런데, 이 축복의 시간이 쓰리고, 아픈 속 때문에 망가지고 있었다. 젠장! 어제 마지막 맥주는 마시는 게 아니었어!!     


 홍 사장은 술을 즐겨 마시진 않지만, 마실 땐 늘 마지막에 맥주를 한 잔 더 마셔서 탈이 나곤 했었다. 취기가 제법 올라와 소주를 마시기엔 버거울 때, 가볍게 맥주 한 잔. 하지만, 그 한잔이 가벼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맥주가 생각이 날 지경까지 갔다면 이미 제법 마셨을 때였고, 마지막 맥주를 마시면서도 내일 이것 때문에 더 힘들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항상 끝에는 아쉬운 마음에 맥주를 마셔버렸다.     


 그 결과 오늘도 힘든 아침이다. 오전 업무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10시에 차를 몰았다. 지난번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을 먹을 때 있었던 일 때문에 앞으로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지금처럼 속이 아플 땐 맑은 대구탕만 한 것이 없었다.     


차가운 술에 한기가 도는 위장에는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야만 속이 풀렸다. 그런데, 맵고, 자극적인 국물은 속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맑은 국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생명수.     


 이렇게 위가 쓰리고 아플 때, 대구탕은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서 받는 약보다 더욱 효과가 빠르고 좋은 생명수 같은 음식이었다.     


 가게 앞에 도착하자 10시 15분쯤 되었다. 밖에 간판은 꺼져있었지만, 매장 안에는 불이 켜있는 게 보여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나자, 주방 쪽에서 소리가 났다.     


“아직 영업시간 멀었습니......”     


큰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사람은 남자 사장이었다.     


“아, 그래요?”     


“어?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른 시간에 오셨네요?”     


“그럼 지금 식사 안 되는 겁니까?”     


남자 사장은 홍사장을 알아서 그런지 조금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10시 30분부터 식사하실 수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한 십 분쯤 기다리면 되는 거네요?”      


“아, 넵.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육수도 거의 다 끓었고, 밥도 다 되어 가거든요.”     


“알겠습니다.”     


 십여 분. 아침의 십여 분이란 귀한 시간이 아까운 시간이긴 했지만, 속이 쓰린 지금 홍사장에겐 맑고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이 절실했다. 자리에 앉아서 대구탕을 기다리며 잠시 스마트폰을 보다가, 한쪽에 놓인 메뉴판을 봤다.     


대구탕

낙지 한 마리 대구탕

생대구탕(계절메뉴)

곤추가

.

.

.     


곤 추가? 홍사장의 눈에 곤추가라는 글이 들어왔다. 꼬불꼬불 맛있는 곤? 홍사장은 가끔 가는 동태탕 가게에서는 곤을 먹어 봤지만, 여기 대구탕 매장에서는 곤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주문할까 말까 망설이던 홍사장이 불렀다.     


“저기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주방에서는 밥 짓는 소리와 식기세척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주방이 분주해서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홍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가까이 다가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불렀다.    

 

“저기요!!”     


“아, 네!”     


 남자 사장이 주방에서 뛰어나오며 대답했다. 홍사장이 살펴보니 여자 사장은 아직 출근하지 않았는지 보이지 않았고, 남자 사장만 있는 것 같았다.


“저기, 곤 추가할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합니다.”     


“그럼 하나 추가 좀 해주세요. 그 꼬불꼬불한 거 맞지요?”     


“네. 맞습니다.”     


홍사장은 대구곤을 하나 추가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탁.탁.탁.


치이익.     


 주방에서는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밥솥에서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소리, 가스 불 켜는 소리가 들리고, 팬 위에 무언가를 굽는 소리도 들렸다. 그 다양한 소리가 무척이나 정겹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퍼져 나온 음식 냄새가 홀에도 가득 퍼졌다.     


홍사장의 입에 침이 살짝 고였다.      


 10시 30분이 조금 지나서 남자 사장이 서빙카트를 밀고 왔다. 부추전, 두부구이, 깍두기, 가지, 곱창김. 그리고 평소엔 별말 없이 함께 올려두던 오이양파절임을 들다가 말고 물어봤다.     





“이건 안 드시죠?”     


“예? 아, 예.”     


 홍사장은 오이를 싫어했기에 나오는 반찬 중에서 그것만 빼고 먹었는데, 남자 사장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 사장은 오이양파절임을 다시 서빙카트에 올려놓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대구탕과 흑미가 들어가 보랏빛을 띤 갓 지은 밥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갔다.     


갓 지은 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가 홍사장의 기분을 좋게 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대구탕을 보니, 뽀얀 곤이 보였다. 평소 홍사장이 봤던 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더 큼직하고, 하얀색의 곤.      


“사장님.”     


“네?”     


“혹시 이게 곤이 맞나요?”     


“아, 네. 혹시 알을 말씀하셨던 건가요?”     


“아니, 아니요. 제가 먹던 곤은 좀 더 작고, 색깔도 좀 달랐던 것 같아서.... 이렇게 크고 하얀 곤은 또 처음 보네요.”     


“아, 아마 드셨던 곤은 명태곤이었을 거예요. 명태곤은 대구 곤 보다 작고 색깔도 조금 거무튀튀한 색을 띠거든요. 저희는 대구탕 매장이라 대구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드셔보시면 훨씬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날 거예요. 그리고 정확히 말씀드리면 원래 곤이라는 건 알을 의미하는 거랍니다. 지금 드시는 건 이리라고 하는 게 정확한데, 이리를 곤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냥 곤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리? 곤? 뭐가 이리 복잡해?’     


홍사장은 남자 사장이 하는 말이 복잡하게 들려서 괜히 물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네.”     


홍사장은 알아듣기 힘든 대화를 끝내려 얼른 대답하고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을 입에 후룩 머금고 속으로 넘겼다.     


“으~아~”     


 속을 쩌릿쩌릿 저리며 내려가는 뜨거운 대구탕. 절로 탄성이 나왔다. 홍사장은 얼른 한 숟갈을 더 떠서 속으로 넘겼다. 뜨거운 국물은 뒤집힌 속을 비단으로 뒤덮듯 부드럽게 훑어주며 흘러갔고, 단 두 숟갈 만에 홍사장의 속은 편안~해졌다. 이거 뭐 위장약보다 효과가 더 빠르구만!!    

 

 홍사장이 한겨울 추위에 떨다가 목욕탕 온탕에 몸을 담글 때 터져 나올 법한 탄성을 연신 내지르며 맛있게 국물을 삼키는데, 남자 사장이 다가오더니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탁 올려놓았다.     


‘와사비?’     


“곤 찍어드실 때 좋습니다.”     


“아, 그래요?”     


 홍사장은 남자 사장이 주고 간 와사비를 간장에 풀었다. 그리곤 우윳빛이 나는 뽀얀 곤을 젓가락으로 살짝 집어 와사비를 푼 간장에 폭 찍어 입에 넣어 씹었다. 투둑투둑 무언가 뜯어지는 것 같은 식감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우는 꼬소~한 맛. 진한 우유 한 모금을 머금은 듯한 고소한 맛과 오돌토돌한 식감이 와사비 간장과 함께 환상의 조화를 이루었다.     


‘오옷!!’     


 홍사장은 차마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좋아할 순 없었지만, 근래에 맛본 음식 중에서 최고로 맛있는 대구곤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야~ 대박이다! 이 맛!! 홍사장은 곤을 와사비장에 착착 찍어서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갔다.     


“음흠흠.”     


음식을 먹는 홍사장의 입에서 마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듯 홍사장은 즐겁게 대구탕과 곤을 먹었다. 

    

드르륵.     


10시 45분. 아직 점심을 먹기에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는데, 젊은 남자 두 명이 입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싸장뉨. 치큼 밥?”     


둘 중에 한 사람이 남자 사장을 보고, 손으로 떠먹는 시늉을 하면서 물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제도 오시고, 오늘 또 오셨네요? 네. 됩니다. 저기에 앉으세요.”     


 젊은 남자 두 명은 외국인들처럼 보였는데, 한국말이 조금 어눌했다. 남자 사장의 반응을 보니 서로 아는 모양이었다.     


홍사장이 젊은 남자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자 남자 사장이 홍사장에게 살짝 말했다.     


“요기 밑에 은자대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이에요.”     


“아, 예.”     


홍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자대학교. 처음 의과대학을 시작으로 발전한 대학교였는데, 지금은 지역에서 가장 큰 대학교로 성장했고, 과도 다양해서 외국인 학생들도 공부하러 많이 왔다.      


“싸장뉨. 태쿠탕. 태쿠탕.”     


남자 사장이 물을 가져다주니, 외국인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대구탕 두 개 드릴까요?”     


“예. 예.”     


“네~ 대구탕 두 개요~”     


남자 사장이 돌아서 가려는데, 외국인 남자가 다시 불렀다.     


“아, 싸장뉨! 싸장뉨!”     


“네?”     


“쩌기, 그꺼요, 그꺼.... 어...”     


 외국인 남자가 손을 자신의 배 위에서 뱅글뱅글 돌리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생각이 나질 않는지 계속 어, 저기, 음, 을 반복했다.     


 홍사장은 곁눈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계속 대구탕을 먹었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큼직~한 우윳빛 대구곤을 젓가락으로 집어 탕에서 꺼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뽀얀 대구곤은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신세계의 맛을 본 홍사장이 대구곤을 와사비 간장에 폭 찍어 입에 넣었다. 투둑투둑 뜯어지는 소리가 또 들렸고, 입안 가득 진한 우유의 고소한 맛처럼 확 퍼졌다. 대구탕 가게에서 요즘 계속 언짢은 일들만 생겼는데,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홍사장이 흥겨운 마음으로 대구곤을 뽀득뽀득 씹으며 즐거워하는데, 남자 사장이 갑갑해하는 외국인 손님에게 물었다.     


“뭐 넣어 먹는 거요?”     


“예. 예. 그 있잖아요. 태쿠탕에 그....”     


외국인 남자가 계속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곤이요?”     


남자 사장이 물었다.     


“예? 콘... 그 꼬불꼬불 한 거...아, 저커! 저커요!”     


홍 사장이 후후 불어서 곤을 먹는데, 외국인 남자가 홍사장이 먹는 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곤 맞습니다. 넣어 드릴까요?”     


“콘....마차요?”     


외국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곤이 맞는지 몰라서 한 번 더 확인했다.     


“네.”     


“아, 눼. 크럼 두 개.”     


외국인 남자는 주문을 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다가,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짝!! 치더니 외쳤다!     


“아, 싸장뉨! 정쏘! 정쏘! 콘이가 정쏘 마차요?”     


“푸웁!!”     


외국인의 외침에 옆에서 곤을 맛있게 먹고 있던 홍사장의 목에 곤이 걸려버렸다.      


정소. 대구의 정소. 맞다. 그것이 대구의 정소라는 것은 홍사장도 알고는 있었다. 명태의 정소는 명태곤. 대구의 정소는 대구곤.     


 그렇게 알면서 먹고 있었지만, 갑자기 옆에서 외국인 남자가 그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 주니 이상하게 고소한 대구곤에서 비린 맛이 확 풍기는 듯한 착각이 들면서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아, 네. 맞습니다. 그게 곤이에요. 말씀하신 정소를 이렇게 부르긴 하는데, 원래는 알을 곤이라고......”     


 남자 사장은 불필요할 만큼 장황하게, 조금 전 홍사장에게 알과 곤의 차이에 대해서 했던 설명까지 섞어서 외국인들에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기분 상하는 일 없이 밥을 잘 먹고 가나 싶었던 홍사장은 또 한 번 기분이 확 상해버리고 말았다.    

 

홍사장은 속을 풀기 위해 왔다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절반쯤 먹은 대구탕과 곤을 그대로 놔두고, 일어섰다.     


카운터로 가자 남자 사장이 말했다.     


“만 사천 원 나왔습니다.”     


대구탕은 만천 원인데, 곤이 삼천 원이라서 만사천 원이 나온 것이었다. 홍사장은 제대로 먹지 못한 음식값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그냥 가자니 또 너무 억울해서 카드와 영수증을 받으며 한마디 했다.     


“이제 진짜 여기 못 오겠네요!”     


“네?”     


남자 사장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홍사장은 더 말하지 않고 쌩 나가버렸다. 기분은 나빴지만, 왜 기분이 나쁜지 설명하기에는 참 거시기했기 때문에!     


 남자 사장은 멍하니 입구에 서서 홍사장의 뒷모습을 두 눈을 끔벅이며 쳐다만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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