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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ug 20. 2024

대구튀김

바삭바삭 맛있는 대구튀김


지연 씨는 오늘도 멍한 표정으로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고, 아이들도 학교에 가고 없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침밥을 먹고 갔는지 안 먹고 갔는지 알지도 못했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연 씨는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아 깊게 몸을 파묻으며 등을 기댔다. 생기 없는 눈빛으로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켜지지도 않은 TV의 검은 화면을 응시했다.     


- 딴따따단단따따단     


스마트폰에서 벨이 울렸다.     


 지연 씨가 스마트폰을 들어서 액정을 보니 친구 선희였다. 지연 씨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이것저것 꼬치꼬치 따져 물으며 잔소리를 할 친구 얼굴을 생각하니 선뜻 받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스마트폰 벨이 멈췄다.     


 지연 씨가 벨이 꺼진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터치하는데, 터치하는 순간 동시에 선희라는 글자가 떴다. 선희가 연달아 또 전화를 걸었는데, 걸자마자 터치를 해버린 것이었다.     


“여보세요?!”      


스마트폰에서 친구 선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화들짝 놀란 지연 씨는 그냥 얼떨결에 전화가 받아진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끊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순간 했는데, 아직 그 정도의 굳은 마음을 갖진 못했다.  

   

“여보세요?!! 야!! 지연아!!”     


“.....어. 선희니?”     


“야 이년아! 죽을래? 왜 전화를 씹고 지랄이야?!”     


 역시 선희. 말투가 장터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처럼 걸걸했다. 그렇다고 악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지연 씨는 잘 알았기에 선희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씹긴 뭘 씹어? 받으려는데 끊어져서 너한테 전화 걸려는데, 너한테 다시 전화가 온 거야.”     


“네가? 나한테? 전화를? 하이고... 퍽이나....”     


지연 씨의 절친 선희 씨는 현재 지연 씨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엔 지훈 씨 출근하는 거 봤니?”     


“...”     


“아이들 학교 가는 건 봤고?”     


“...”     


“내 그럴 줄 알았다. 일단 만나.”     


“뭘 또 만나? 그냥 전화로 얘기해.”     


“야! 그냥 만나자면 만나! 안 나오면 내가 너네 집으로 쳐들어 간다!”     


지연 씨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전화를 안 받았다면.... 아니다. 친구 선희는 만약 지연 씨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면 119에 신고를 했거나, 당장에라도 집으로 쳐들어올 친구였다.     


선택지는 딱 두 가지. 밖에서 만나거나, 집에서 만나거나. 안 만날 수 있는 옵션은 선택지에 없었다.     


“하.... 알았어. 몇 시?”             

.

.

.

.

.       

대구탕 매장은 오늘따라 아주 바빴다.     


“정말 죄송한데,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나요?”     


“한... 20분에서 3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예? 30분이요? 야, 그냥 가자.”     


“아니야. 아니. 여기 대구튀김 진짜 맛있다니까? 알겠어요. 기다릴게요.”     


 지연 씨는 안 그래도 나오기 싫은 걸 억지로 나왔는데,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짜증이 확 올라왔다. 친구 선희가 오자고 해서 왔지만, 기껏 가자고 한 곳이 대구탕 가게라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매장의 허름하고 낡은 외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또 튀김이라니? 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날씨는 또 왜 이리 쨍쨍하고 맑은 건지...     


 매장 입구에는 양옆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놓인 의자도 매장의 외관처럼 낡아 색이 바래고 헤졌다. 선희 씨는 별생각 없이 칠이 벗겨진 나무 의자에 털썩 앉았는데, 지연 씨는 앉지 않고, 선희 씨 옆에 서 있었다.   

  

“앉아.”     


“아니 좀 서 있을게. 매장 들어가면 계속 앉아 있을 건데...”     


지연 씨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의자가 칠이 벗겨지고 낡아 보여서 앉기 싫다고 했다간 털털한 성격의 친구가 쌍욕을 퍼부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대충 둘러대는 거였다.     


“그런데, 기다리면서까지 먹을 필요가 있니? 이 주변에 다 식당인데.”     


“다 식당이지. 그런데 너 아무 식당이나 갔다가 아무 음식이나 나와서 아무렇게나 대충 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어떻게 되는데?”     


“우울증 걸려! 너처럼!”     


“참, 나. 별소릴 다 듣는다.”     


“야, 하루에 딱 세 번. 아니, 요즘엔 거의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하루에 딱 두 번. 내 입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간인데, 그걸 대충 때워서 되겠냐? 그리고, 그 음식들이 내 몸에 들어가서 나의 일부가 되는 건데 대충 아무 음식이나 먹어서 되겠냐고!!”     


지연 씨는 친구의 말에 반박해 봤자 괜히 입만 아플 거라는 걸 알았다.      


괴변. 


친구 선희는 늘 엉뚱한 말을 늘어놓고, 그것이 자기가 아닌 다른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인 양 떠들어 대는 것이 특기였다.    

 

“너 치킨 좋아하지?”     


“치킨 싫어하는 사람도 있니?”     


“그럼 됐어! 너 무조건 이거 좋아한다!”     


“뭘?”     


“대구튀김!”     


기다린 지 20분이 조금 지나갈 때쯤 입구에서 여자 사장이 지연 씨와 선희 씨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으로 불렀다. 둘이 매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지연 씨는 대구탕 가게를 휘 둘러봤다. 매장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밖의 허름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환하고 깔끔했다. 테이블은 홀에 5개, 방에 3개. 총 여덟 개가 있었는데, 한 자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무척 넓었다.     

 

‘테이블 배치만 잘하면 열 자리는 더 나오겠네. 이러니 자리가 부족하지.’   

  

 지연 씨는 대구탕 매장의 테이블과 그것들이 차지하는 공간이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선희가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어서, 지연 씨도 고개를 삐죽 내밀어 메뉴판을 같이 살폈다.    

  

대구탕, 낙지 한 마리 대구탕, 대구뽈찜, 낙지찜, 대구튀김. 여기 있다! 대구튀김. 사이즈는 맛보기, 소, 중, 대.     

“둘이서 먹으니까 맛보기로 하자. 그리고..... 날도 더우니까 대구탕은 낙지가 들어간 걸루.”     


답. 정. 너. 선희 씨의 스타일이었다.     


“오케이?”     


선희 씨가 묻자 지연 씨가 피식 웃었다.     


“뭐, 다른 선택이 있겠냐?”     


 주문하고 기다리자, 음식들이 나왔다. 부추전, 두부구이, 가지볶음 등 밑반찬이 나오자 지연 씨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희 씨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때? 잘 나오지?”     


“.. 어... 그러네?”     


“그러니까 사람이나, 이런 음식점이나 외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원래 속 깊고, 진국인 사람들이 꾸밈없이 다니고, 맛집들이 외관에 신경을 안 쓰는 법이란 말씀. 요즘에 화려하고 말끔한 곳들이 얼마나 많냐? 이 주위에도 다 카페고, 식당이고 새 건물들이잖아? 요샌 이렇게 오래된 음식점들이 더 귀하다니까?”    

 

“아, 네~ 네.”     


선희 씨의 대구탕 가게 예찬이 이어지고 있는데, 대구튀김이 먼저 나왔다.     


“맛보기 튀김 나왔습니다~”     


하얀 기름종이가 깔린 작은 쟁반에 대구튀김 6조각이 올라가 있었고, 그 옆에 약간의 감자튀김과 레몬 한 조각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위에는 파슬리가루를 뿌려놓아 정갈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괜찮지?”     


“아직 먹어보지도 않았는데?”     


“얼른 먹어봐.”     


지연 씨가 대구튀김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잠깐, 잠깐.”     


 선희 씨가 레몬조각을 손으로 집어 들어서 지연 씨의 대구튀김 앞으로 가져가더니, 레몬의 양 끝을 살짝 눌렀다.     


 그러자 마치 미스트를 뿌리는 것처럼 레몬에서 즙이 분사되어 지연 씨가 젓가락으로 쥐고 있는 대구튀김을 휘감았다. 상큼한 레몬향이 코끝에 전해졌다.     


“이렇게 먹으면 더 맛있어.”   

  

 지연 씨는 대구튀김을 입에 넣기 전 잠시 쳐다봤다. 눈으로 보기에도 노릇노릇 바삭하게 잘 튀겨졌다. 튀김옷이 보통의 밋밋한 튀김옷과는 다르게 포슬포슬 부풀어 올라 바삭하게 튀겨진 모습이 신기했다.     


지연 씨는 대구튀김을 입에 넣고 씹었다.     


-바. 사. 삭.     


소리와 함께 꼬소~한 맛, 쫄~깃한 식감과, 은은한 아로마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오~~~~”     


지연 씨는 저도 모르게 엄지를 척 올리며 감탄했다.     


“맛있지?”     


“이야~ 뭐야? 진짜네? 치킨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지? 아니, 이거 정말 치킨보다 더 낫다!” 

    

“내가 그냥 오자고 했겠냐?”


지연 씨가 대구튀김을 한 입 더 베어 물며 입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어쩜, 어쩜! 생선에서 이런 맛이 나지?! 진짜 생선 같지도 않아! 비린 맛이 일도 없고.”     


“어때? 맛난 대구튀김도 있겠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뭐어? 너 제정신이니? 대낮부터 맥주를? 어? 그건 정말.... 너어~~~ 무 좋치!!”     


둘은 까르르 웃으며 넘어갔다.     


 대구탕 매장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들을 쳐다봤다. 특히 저쪽 구석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그녀들을 벌레 보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봤는데, 지연 씨와 선희 씨는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맥주를 주문했다.     


- 치이익. 

- 퐁.     


맥주병을 시원하게 따고 차가운 유리컵에 맥주를 꿀렁꿀렁 따랐다.     


지연 씨가 맥주잔을 기울여 거품 없이 받으려는데 선희 씨가 지연 씨의 맥주잔을 바로 세웠다.    


“야! 너 요즘엔 맥주 거품 생기도록 받는 거 모르냐?”     


“뭐? 왜?”     


“그래야 더 맛있대.”     


“거품 많은 게 뭐가 맛있어?”     


“그냥 유행이라니까 그렇게 해 이년아. 우리가 언제는 입기 편해서 티셔츠 앞쪽은 바지에 쑥 찔러 넣고, 뒤쪽은 빼고 다녔냐? 걍 유행이야 유행!”     


선희 씨는 요즘 유행이라며 유리컵의 거의 절반이 거품이 되도록 맥주를 따랐다.     


“참 별스런 유행도 다 있다.”     


“야, 야, 됐어. 어쨌건 자 맛있게 짠~~”     


선희 씨와 지연 씨는 맥주잔을 살짝 부딪치고 시원하게 맥주를 삼켰다.  

   

“어우~~~ 좋다!!”    

 

“크~~ 시원~하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톡 쏘며 넘어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자, 지금 입에 넣어야 해.”     


선희 씨가 대구튀김에 레몬즙을 살짝 뿌리더니 지연 씨 입에 밀어 넣었다. 

    

지연 씨는 방금 맥주가 넘어간 차가운 입으로 따듯한 대구튀김을 받았다.     


바사삭 소리와 함께 대구튀김의 고소하고 쫄깃한 맛이 입을 꽉 채우자 세상에 천국이 여기인가 싶었다. 

    

“넘 행복해.”     


입을 우물거리며 하는 지연 씨의 말에 선희 씨가 멈칫했다.     


그리곤 맥주잔을 들어 남은 맥주를 쭉 다 비우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정말 오랜만이네.”     


“뭐가?”     


“네 입에서 행복하단 말이 나온 거.”
 

“별소릴 다 한다.”     


“방금 네가 했던 말처럼 그냥 일상의 이런 소소한 일들이 모두 행복 아니겠니?”   

  

“누가 뭐래?”     


“...”     


 지연 씨도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선희 씨는 병에 남은 맥주를 지연 씨 잔에 마저 붓고 맥주 한 병을 더 시켰다.     


“너 이렇게 많이 마셔도 돼?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참. 일찍도 물어본다. 내가 회사에 가야 되면 너랑 이렇게 술을 마시겠냐? 오늘 연차 냈어. 너랑 낮부터 한잔하려고. 키킥.”     


 선희 씨는 일부러 연차를 내고 가능한 많은 시간을 친구 지연 씨랑 보내려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지연 씨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지연 씨가 앓고 있는 병이다.      


 어느 날 지연 씨는 갑자기 너무 기억력이 감퇴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가 엉뚱하게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기억력이 저하되는 것과 우울증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지연 씨는 의사의 진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다른 병원 몇 군데를 더 가봤지만, 모두 똑같이 우울증을 진단했다. 

    

 내가? 우울증? 지연 씨는 처음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도대체 내가 왜?!'     


 평범한 가정. 성실히 직장을 다니는 남편과 큰 말썽 없이 잘 자라주는 두 아이. 일 년에 두 번 아이들 방학 때면 해외여행을 가고, 주말에는 캠핑을 가거나, 맛집 탐방을 다녔다. 지극히 평범 아니,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조금은 더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울증이라니?!!     


 그런데, 얼마 전 이 증상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의 반응이 지연 씨를 더욱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지연 씨의 남편 지훈 씨가 아내의 우울증 진단을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다며 거부를 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최소한 몇 번의 놀라는 모습과 몇 번의 부정적 표현을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수긍을 해버리다니!! 이미 지훈 씨는 짐작하고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나의 어떤 행동이?      

단순히 기억력 감퇴라고 생각하다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니, 더 우울해졌다.    

 

“야!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 아니?”   

  

또 시작이다. 선희의 똑같은 레퍼토리.     


“그럼. 너한테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들었는데 모르겠니?”     


“그래! 그럼 잘 알겠네! 내가 말했지? 사람이 바빠야 잡생각이 안 든다고! 네가 한 달 살기인가 뭔가 그걸 하면서부터 그렇게 된 거라니까?”     


지연 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말레이시아에서 한 달 살기, 필리핀에서 한 달 살기, 강원도에서 한 달 살기,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이렇게 총 2년에 걸쳐서 아이들 방학 때마다 네 번의 한 달 살기를 해봤다.     


 “지연아! 정말 너어~~ 무 좋겠다!”     

 

 주위의 많은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나는 지연 씨를 부러워했다. 처음엔 지연 씨도 너무 좋았다. 남들은 어쩌다 해외여행 며칠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는데, 한 달이나 살기 위해서 떠난다니!!  

   

“자기야 너무 좋긴 한데, 그렇게 해도 정말 괜찮아?”    

 

지연 씨는 본인이 남편에게 그렇게 조르고 졸라놓고서, 막상 남편이 준비를 다 해놓고 나니 그래도 되냐고 이제 와 묻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뭐 여유도 안 되는데 보낼까 봐?”     


남편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직장인의 연봉으로 보낼 수 있는 거였나? 지연 씨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돈 관리는 모두 남편이 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잘 모아뒀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떠난 이국에서의 생활은 정말 즐겁고, 흥미로웠다.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외국인 선생님에게 영어도 배우고, 밤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맥주도 즐겼다.     


그렇게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일주일. 


그런데 그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지연 씨에게 다가오는 이국의 느낌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짬을 내어 잠시 여행을 왔을 때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이들과 자신이 어딘가에 뚝 떨어져 있는 기분.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무도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곳. 


그만큼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기에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리 즐겁고 유쾌하지도 않았다. 마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원래부터 누리던 일상적인 것처럼.     


 지연 씨는 일주일이 지나자 저녁에만 마시던 맥주를 점심을 먹으면서도 마셨다. 


시원~한 맥주. 뜨거운 열대의 나라에서 얼음을 넣어 마시는 맥주는 밥과 따로 먹는 술이 아니라, 여러 밥반찬 종류 중 하나같이 느껴졌다.     


 처음엔 가볍게 한 잔으로 시작한 맥주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늘어갔다. 


그렇게 취하는 시간도 함께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날도 마찬가지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깼다. 


집에 전등불은 모두 꺼져있고, 아이들은 거실에서 잠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며 몽롱한 상태에서 서서히 정신이 들던 그 시간.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뭐? 겨우 저녁 8시?'

 

무서웠다. 


'도대체 내가 여기에 왜 와있는 거지?' 


지연 씨가 동경했던 한 달 살기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늘 즐겁고 유쾌한 그런 한 달 살기를 꿈꾸었는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직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돌아가겠다는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TV와 유튜브에 나오는 한 달 살기를 보면서 남편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냈던가! 그래서 남편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는가!! 

    

어쩔 수 없었다. 한 달. 한 달은 무조건 버텨내야 했다. 


다음날부터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틀 동안은 그 다짐을 잘 지켰다. 하지만, 사흘째로 접어드는 날. 시원한 맥주가 너무나 간절한 오후. 지연 씨는 결국 맥주를 마셔버리고 말았고, 그게 마중물이 되어 그렇게 계속 한 달 살기가 끝날 때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다.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던 첫날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지치고 피폐해진 몸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연 씨는 이제 두 번 다시 한 달 살기와 같은 멍청한 계획은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맥주도 끊겠다고!     


“야!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니?”     


선희의 부름에 지연 씨는 첫 한 달 살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니. 아무것도.”     


“내 말 알아들었어?” 

    

선희 씨는 지연 씨가 옛날을 생각하는 동안 계속 뭐라 떠들었었다.     


“으..응.”     


“이년 이거!.....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니까? 됐다, 됐어. 술이나 마셔 이년아!”     


선희 씨와 지연 씨는 다시 잔을 부딪쳤다.      


지연 씨는 처음 한 달 살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에 든 맥주잔을 잠시 바라봤다가 쭉 들이켜 잔에 담긴 맥주를 다 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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