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기분 좋은 날~ 근데...... 내가.... 죽는다고?!!
홍사장은 오늘따라 기분이 상쾌했다.
어제저녁 6시 이후부터 아침 6시까지 12시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16시간 속을 비우고, 8시간 동안에는 마음껏 먹는 16:8을 많이들 한다고 하는데, 시작단계부터 16시간이나 공복으로 있는 것은 힘들 것 같아 12시간 공복을 먼저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어제 처음으로 12시간을 공복으로 있어 봤는데, 잠을 잘 때 조금 배가 고프긴 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 너무나 상쾌했다.
'진즉 할걸.'
홍사장은 조금 더 일찍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약간의 후회를 했으나, 늦게 시작한 만큼 더욱 열심히 해보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늙어도 건강하게 늙어보자!!'
상쾌하게 시작한 아침. 직원들과 잠시 아침 미팅을 했다. 회의가 마무리될 때쯤. 홍사장이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티브잡스의 말을 인용해 끝인사를 맺었다.
“우리의 이 사업이라는 것은 비틀스 같은 것입니다! 그들 개개인이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뤄 시너지를 끌어낸 것처럼, 위대한 일은 언제나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만 이뤄낼 수 있습니다! 협력! 업무를 협력하세요! 그래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세요!!”
홍사장은 모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회의를 마치고 나왔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기분인가!!
오전 10시.
딱 기분 좋을 시간이다.
홍사장은 오늘 잠시 병원에 들러야 했다.
지난번 건강 검진을 했는데, 이상이 있다며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정밀검사를 했었고, 오늘 그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다.
홍사장은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 검진을 할 때마다 어딘가에는 이상이 있었고, 그때마다 정밀검사나, 재검사를 받아봐야 했다.
‘사람 건강을 빌미로 돈이나 뜯어내는 추잡한 새끼들!’
홍사장이 생각하는 의사들에 대한 이미지였다. 조금만 뭐 하면 이 검사해봐야 한다, 저 검사해봐야 한다. 하면서 검사비용을 엄청나게 뜯어갔다.
처음엔 검사 후 큰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의사들이 사람에게 잔뜩 겁을 주고, 별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만들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쓰게 만들어 놓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다니!!
검사를 안 했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몸이었는데!!
그래서 이번에도 정밀검사 어쩌고 저쩌고 할 때 그냥 침을 확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의사와 싸워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내 마음 편하자고 그냥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해줬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하나쯤 암세포 같은 게 나타날 테고, 그걸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도 하면서 이런 지랄 맞은 반복된 검사에 대한 위안으로 삼아볼 생각이었다.
“사장님!”
정 부장이 홍사장을 호들갑스럽게 부르며 달려왔다.
“왜?”
홍사장은 정 부장의 요란스러움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저기......”
급히 달려와 놓고 막상 말을 망설이자 안 그래도 미운털이 박힌 정 부장이 더 미워 보였다.
“아, 말을 해!!”
홍사장의 호통에 정 부장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저.. 일이 좀 생겼습니다...”
“무슨 일?”
“이번에 우성에 납품한 물건이.....”
“그게 뭐? 아, 숨넘어가겠네!! 빨리 말 못 해?!”
“원가 계산이 잘못돼서.....”
“뭐어?!! 그래서!”
숨이 넘어갈 듯한 홍사장이 고구마 백 개보다 더 갑갑한 정 부장에게 호통을 쳐가며 들은 이야기로는 환율변동에 따른 원자잿값 상승을 고려하지 못하고, 잘못 단가표를 넘겼는데, 우성에서 평소 주문량의 3배에 달하는 발주가 들어왔고, 홍사장 회사에서는 그 사실도 모르고 1차로 납품을 했다가 이번에 인지를 하게 된 것이었다.
보통 관례상으로는 타 회사와 가격 차이가 크게 나면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고, 잘못을 정정하고 거래를 해야 하는데, 우성에서는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잘못된 단가표를 낚아채고, 거기에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물량을 주문하고 계약해 버린 것이었다.
“개새끼들!!”
홍사장은 화가 차올라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대로 2차, 3차 물량이 들어가면 들어갈 때마다 회사는 손해를 봐야 하는 처지였다.
“물량 입고 못 해준다고 해!”
“저기.... 그렇게 말해봤는데, 우성에서도 이 가격으로 이미 다른 회사와 계약을 다 했다고, 만약 납품이 안 돼서 다른 거래처와 계약 틀어지면 손해배상을 해야 할 거라고........”
“휴우우우.........”
홍사장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호사다마?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런데, 좋았던 기분에 비해 나쁜 일이 너무 큰 건이 터져버렸다.
“이 계약 건. 누구야?”
“예?”
“담당자가 누구냐고!”
“......”
정 부장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홍사장은 정 부장이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이유를 잘 알았다. 정 부장 담당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라이!!”
홍사장이 정 부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흐업!!”
정 부장이 정강이를 부여잡고 깡충깡충 뛰었다.
“너 지금 몇 년 차야?! 어?! 어떻게 이십 년을 넘게 일하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해!!”
“죄송합니다.”
“알긴 아냐?!!”
“.......”
이미 벌어진 일. 홍사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우........ 그럼 만약 모두 납품하면 우리는 얼마나 손해를 보는 건데?”
“..... 대략.. 1억 8천 정도....”
“하아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은행이자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데, 원자잿값도 가파르게 올라서 회사 이익률도 팍팍 떨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손실이 1억 8천...... 이 손실은 다른 비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비용이었다. 여기에 회사 인력들의 인건비와 필요경비 등등을 모두 포함하면 2억은 훨씬 넘어서는 금액.....
홍사장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어지러워 비틀거렸다. 정 부장이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비틀거리는 홍사장을 부축했다.
“사, 사장님!!”
“놔! 이 새끼야!!!”
홍사장이 정 부장의 손을 뿌리쳤다.
“너, 너 이 새끼!! 이 새끼!!”
홍사장이 정 부장에게 삿대질하며 호통쳤다. 정 부장은 고개를 숙이고서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홍사장은 삿대질을 하다가 홱 돌아서 자신의 차로 성큼성큼 걸어가 차에 올라타고 문을 쾅! 닫았다.
“사장님!! 사장니임~~!!”
정 부장은 울먹이며 홍사장을 불렀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홍사장은 차를 몰고 회사를 휙 떠나버렸다. 저 새끼 저거 내 이번에는 반드시 잘라버린다!! 아~ 저 새끼 때문에 진짜 암 걸리겠네!!
.
.
.
.
.
“암입니다.”
“예에?!!!”
정 부장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홍사장은 얼른 병원에서 결과를 듣고 빨리 회사로 돌아가 이 일과 관련된 인간들에게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정 부장은 정말로 쳐내버릴 생각이었다.
회사 초창기부터 동고동락한 직원? 이젠 정말 필요 없다!! 더는 함께 있다가 화병이 나서 암에 걸릴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병원에 왔더니 진짜 암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정밀검사 결과는 별문제 없겠지. 약 처방이나 받고, 운동 꾸준히 하고, 기름진 음식 피하고, 술, 담배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홍사장에게 깜짝 놀랄 소리였다.
암? 정말 암이라고? 아..... 암. 암이라는 말에 홍사장은 심장이 덜컹하고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아, 드디어 여태껏 검진을 받아왔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었구나! 그래! 이러려고 지금껏 한마디 하려는 걸 참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뭐 수술받으면 되는 겁니까?”
홍사장은 지금까지 매년 건강 검진을 꼬박꼬박 잘 받아왔으니. 암이라고 해도 초기일 것이고,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홍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봤다. 의사가 잠시 눈을 감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눈빛을 하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암세포가 간과 폐, 그리고 식도까지 모두 전이가 다 되었습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요.”
“에.... 예에?”
홍사장은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매년 검사를 했는데, 1년 만에 손도 쓸 수 없는 말기 암환자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그럼.....”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지금 당장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입니다. 아마 한 달 정도. 길어야 3개월입니다.”
꾸우우웅!!
홍사장은 누가 해머로 머리를 내려친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어..... 선생님.. 혹시 농담을......?”
“죄송합니다만, 이런 걸로 농담을 할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습니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과 제 검사 결과가 바뀐 것은........”
“생명이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수십 번도 더 확인했습니다. 홍유인 씨의 검사 결과가 맞습니다.”
홍. 유. 인.
본인의 이름이 맞았다. 그래. 이런 거로 실수할 리가 없지.
근데.... 그나저나 이 새끼들이... 진짜...
“하..... 하하...... 하하하하.......”
홍사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크하하하하하!!!”
의사는 홍사장이 어떤 심정일지 잘 알았기에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이마에 손을 올리고 한참 동안 크게 웃던 홍사장은 갑자기 성난 황소처럼 의사에게 달려들 듯 상체를 들이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야이 개새끼야!! 내가 그럼 뭣 한다고 매년 비싼 돈 들여가며 검진을 받았냐!! 씨발! 미리미리 조기에 발견하려고 한 거 아니야?!! 어?!! 그런데, 검사할 때마다 정밀검사를 해봐야 한다 어쩐다 하면서 비용은 존나게 청구해 놓고!! 그렇게 비싼 돈 들여서 검사해도 아무런 이상 없다고 하더니!! 그런데 이제 뭐? 이미 많이 진행돼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야이 개새끼야!! 그게 지금 할 소리야?!!”
홍사장이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자 밖에서 간호사가 뛰어 들어왔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보냈다. 열린 문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진료실을 쳐다봤다.
“순 엉터리네!! 엉터리!! 그럼! 오늘 이렇게 될 때까지 너희들은 뭘 하고 있었냐?! 어!! 지난 검진 때 이미 이상이 있었는데, 너희들이 검진비만 뜯어가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거 아니야?!!”
“..... 홍유인 씨. 물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압니다. 하지만, 드물긴 해도 가끔 이렇게 급성으로 암이 발생하고 번지기도 하기 때문에........”
“닥쳐!! 이 개새끼야!! 내가 당장 변호사 고용해서 너희 새끼들 전부 다 고소해 버릴 거야!! 이 썅노무새끼들!! 돈만 받아 처먹고!! 제대로 검진은 하지도 않고!! 이제 와서 죽을 때 다됐단 소리나 지껄이고!! 그런 의사면 씨발! 나도 의사 하겠다!!”
“환자분! 의사 선생님께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요!!”
곁에 있던 간호사가 거들자 홍사장은 더 화가 났다. 이미 이성을 잃은 홍사장은 간호사를 향해 막말을 쏟아냈다.
“지랄!! 환자? 내가 왜 환자야?!! 어?!! 조금 전까지 멀쩡했는데!! 이제 암 환자라고 진단 내리고 나니까 환자냐?!! 같이 근무한다고 편들기는!! 썅!! 간호사들 너네도 참~ 불쌍하다. 의사가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들이니.... 그래서 지금 편드는 거지? 편 안 들었다가는 직장에서 미움이라도 받을까 봐. 그렇지?”
“그거 성희롱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말조심하세요!”
“하하하!! 성희롱? 처벌? 그거 재판할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데? 어? 나 길어도 석 달 안에 죽을 거라며! 씨발!! 근데 뭐??! 내가 뭐가 무서워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맞다. 홍사장은 곧 죽을 사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곧 죽을 거라고 방심하지 마라! 이 의사 새끼야!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너네 병원에서 검진한 기록 싹 다 들여다보고 처벌받을 인간들 전부 다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해놓고 죽을 테니까! 각오해 새끼야!!”
홍사장이 소리를 빽 지르고 진료실을 나서는데, 뒤에서 간호사가 홍사장을 따라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환자분!! 원무과 수납을.....”
“확!! 그냥!! 개소리 지껄이지 마!!”
홍사장을 계속 쫓아가려는 간호사를 다른 간호사가 쫓아와 말리며 뒤돌아섰다.
홍사장은 차에 올라탔다. 정신이 멍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당황스러운 순간을 겪어본 적은 없었다.
속으로 화를 많이 품고는 살았지만, 그것을 끄집어내어 누군가에게 이렇게 쌍욕과 막말을 해본 적도 없었다.
아, 정 부장에게만은 예외로 하고 다른 사람에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오늘 아침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아침 미팅도 잘 끝냈다. 정말 오랜만에 기분도 좋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 부장이 원가 계산을 잘못했다며 기분을 망쳐놓더니, 병원에서는 곧 죽을 거란다!
홍사장의 전화벨이 울렸다. 정 부장이었다. 홍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 부장에게서 아까부터 계속 전화가 왔는데, 아까는 정 부장에게 화가 나서 받지 않았고, 지금은 그냥 받고 싶지가 않아서 받지 않았다.
정 부장의 전화뿐만이 아니라 누구의 전화도 지금은 받고 싶지가 않았다.
“뭐? 죽어? 내가? 이 홍유인이??!! 지랄하지 마!!”
홍사장이 운전대를 내리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 꽈과광!!
- 쏴아아아아!!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더니 곧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씨바 새끼들!! 내가 저 새끼들 절대 가만 안 둬! 사람 목숨이 장난이야? 지랄 맞을 것들! 지난번에 발견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잖아!! 개새끼들!!”
또 한 번의 벨이 울렸다. 이번에도 정 부장이었지만, 홍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고, 차를 급히 몰아 병원 주차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