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백 저지방 흰 살 생선
홍사장은 병원에서 나오며 곧장 회사 자문 변호사인 황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동안 건강검진을 한 내용과 오늘 있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했다.
“황변! 여기 병원하고 병원장! 그리고 의사들 싹 다 고소하려고 하니까 서류 좀 준비해 줘!”
그런데, 그렇게 흥분한 홍사장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는 기업 관련 전문이라.... 그건 의료 전문 변호사와 상담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의료기관과의 소송에서는 거의 승산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뭐?!”
홍사장은 길길이 화를 냈지만, 황변호사는 차분하게 조목조목 홍사장의 말에 반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마치 상대 쪽 병원 측의 변호사라도 된 것처럼.
“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한다!! 알아서 해!!”
홍사장은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황변호사와 통화 후 더욱 화가 난 홍사장은 일주일 동안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이놈의 사기꾼 의사들을 고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황변호사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했다. 의사들과 진료문제로 다투는 건 별 승산이 없다고 했다. 사람의 몸 상태와 증세가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인 의사의 선택과 결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놈의 변호사 새끼들!! 하여간 사짜 돌림의 새끼들은 서로 감싸주기 바쁘다니깐! 지네들이 젤 잘난 줄 알지? 멍청이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평가를 받고, 평생 그 평가가 본인의 위치가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바보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사람은 평생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의 인생이 훨씬 더 긴데 왜 평가를 받지 않고 사냐고! 나는 너네들이 의사 됐다고 만족하고, 판검사, 변호사 됐다고 만족하면서 살아갈 때,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면서 기업도 일구고, 직원들도 먹여 살린다! 이것들아! 내가 너네들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단 말이다! 이 멍청한 새끼들아!!'
평생 평가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아니었지만, 홍사장은 대부분의 좋은 말은 다 스티브 잡스가 했다고 가져다 붙였고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검진받은 병원과 의사를 고소하려고 변호사 사무실을 알아보고 다니다가 홍사장은 변호사 놈들도 똑같은 도둑놈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격분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30분도 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상담료 1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수임료는 일단 300만 원에 부가세 30만 원 별도. 그리고 성공보수 또한 별도였다. 처음엔 재수가 없어 더럽게 비싼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왔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도 가보니 모든 변호사가 똑같은 가격을 제시했다.
이야~ 도둑놈들이 병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 몇 마디 나누고 10만 원? 그리고 무조건 300부터? 이런 건 가격 담합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는 어떻게 모든 변호사들이 똑같은 금액을 제시하는 거지? 변호사 협회니까, 대단한 협회에서는 대놓고 가격 담합을 해도 된다 이건가? 누군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상담을 해주고, 수임료 할인을 해주면 변호사 협회에서 퇴출을 당하는 건가? 이러니까 우리나라 변호사들의 서비스 수준이 무슨 발전이 있냔 말이다! 이것들아!!'
일주일 내내 홍사장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화를 내고, 싸움을 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치열하게 세상과 부딪치고, 할 말 다하며 살아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건 인간관계였고, 그 인간관계가 왜 중요하냐고 하면 살아가면서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살아갈 날이 한 달 정도, 오래 살아도 석 달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인간관계에 신경을 쓸 이유도, 필요도 없어졌다.
이렇게 좌충우돌하는 동안 회사일은 뒷전이었다.
당장 내가 죽게 생겼는데, 회사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내가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을.
그런데 회사에서는 홍사장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있었기에, 지난번 거래처와의 일 때문에 회사에 손실이 너무 많이 나서 홍사장이 화병이 나서 회사도 돌보지 않고,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 같다며 직원들끼리 수군거렸다. 정 부장은 이 모든 일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늘 풀이 죽어 있었다.
홍사장이 잠시 회사에 들렀다가 또 금방 회사를 나서려는데, 정 부장이 홍사장을 찾아왔다.
“사장님.”
정 부장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홍사장을 불렀다. 홍사장은 그 웃음이 더 짜증스러웠다. 평소엔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짜증스러웠는데, 오늘은 어색하게 웃는 그 얼굴이 더 짜증스러웠다. 그러니까 그냥 정 부장의 얼굴이 마냥 짜증스러웠고, 밉고, 화가 났다.
“왜?!”
언제나 그렇듯 홍사장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기...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회사에도 잠시만 들르시고.....”
'니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나 아냐?'
홍사장은 지금 자신의 상태도 모르는 정 부장이 한심하게 느껴져 멸시의 눈초리로 정 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용건만 빨리 말해!”
“아, 예. 죄송합니다. 이거......”
정 부장이 품속에서 봉투를 꺼냈다. 봉투의 겉면에는 사. 직. 서.라고 적혀 있었다.
홍사장은 그것을 보는 순간 이러면 내가 너를 잡을 줄 알았냐? 안 그래도 자르려고 했는데 잘됐다 이 자식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정 부장이었기에 이런 순간에 몇 번의 거절을 하는 것이 예의였고, 놀란 눈빛으로 아니 도대체 왜?라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얘기를 좀 해보자고 말을 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일 것이었으나, 홍사장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직서를 탁 낚아채서 품속에 집어넣었다.
“알았어. 더 할 말은 없는 거지?”
홍사장의 냉정한 표정과 말투에 정 부장의 웃음 띤 얼굴이 점점 굳어갔고, 목소리는 떨렸다.
“.... 네?.... 아... 네.....”
홍사장은 휙 뒤를 돌아 회사를 나왔고, 홍사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정 부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홍사장은 다시 병원을 찾았다.
살아 있는 동안 통증을 덜기 위한 진통제와 몇 가지 약들을 처방해 놓았으니, 병원에 와서 받아가시라고 간호사가 아닌 의사로부터 직접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욕을 잔뜩 먹었던 의사는 홍사장에게 전화를 끊기 전 말했다.
“보기 싫으시겠지만, 병원에 오셔서 저를 꼭 만나고 가세요. 아셨죠?”
'썅놈의 쉬키가. 지가 무슨 해탈한 스님이라도 되는 줄 아나? 어디서 여유로운 척 지랄이야? 내가 고소한다고 하니까 쫄아서 그러나 본데. 어림도 없지. 너 같은 놈은 내가 반드시! 꼭 처넣고 만다 이 새끼야!'
홍사장이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실 앞으로 가니, 평소처럼 진료를 보기 위한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는 지난번 난리를 부리고 간 홍사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고는 먼저 진료를 보고 있는 환자가 나오자 진료실에 들어가서 홍사장이 왔다고 의사에게 알렸다.
간호사는 다른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홍사장을 먼저 진료실로 들여보냈다.
홍사장은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의사에게 인사도 없이 슬쩍 노려만 보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홍사장과는 반대로 의사는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 보였다.
어려운 말도 모두 전했겠다. 이젠 더 이상 말을 조심해서 꺼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앉으세요.”
의사의 알에 홍사장은 의자에 앉았다. 여전히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있었다.
“좀 알아보셨나요?”
“뭘 말이오?”
“저 가만히 안 둔다고 하셨잖아요? 잡아넣을 거라고.”
“그럴 생각이오.”
홍사장은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홍사장의 말투도 이전보단 날카로움이 조금은 무뎌져 있었다.
의사가 피식 웃었다.
“뭐, 잡아넣기 위해 열심히 알아보시는 것도 좋은데, 우선 진통제 하고 약은 잘 챙기세요.”
“그러지. 그래야 당신과 당신을 비롯한 사기꾼 의사들을 제대로 잡아넣을 수 있을 테니까.”
의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식단 말인데요.”
“식단? 이제 곧 죽는데, 그게 뭔 소리요?”
“.... 뭐, 그래요. 아무거나 드시고 싶은 거 드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기운이 좀 나는 음식으로 드시는 게 좋잖아요? 식단을 권해드리는 게 의사인 저의 의무이기도 하고요.”
“참 나.... 곧 죽을 사람한테 그게 무슨.....”
홍사장이 그러거나 말거나 의사는 할 말을 했다.
“붉은 육고기. 그러니까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음식들이 영양가가 있긴 하지만, 너무 기름지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시는 게 좋구요, 될 수 있으면 단백질 함량은 높고, 지방은 낮은 흰살생선 종류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술, 담배는 당연히 안 좋구요. 그리고....”
의사는 본인이 할 말만 계속했다. 홍사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의사를 쳐다보고 있다가 의사 말이 다 끝나자 한마디 툭 던졌다.
“끝났소?”
“뭐, 제가 말씀드려야 할 것들은 다 말씀드렸습니다. 먼젓번엔 길길이 화를 내고 가셔서 제대로 전달을 못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그럼, 이제 마음이 편하단 뜻이오?”
“..... 딱히 마음이 편한 건 아닙니다만, 저의 도리는 했다는 생각은 드네요.”
“쳇. 제대로 진료도 하지 않아서 사람을 곧 죽게 만들어 놓고 도리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그게 사람이 할 도리요?”
“... 후우.... 홍유인 씨.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제가 그동안 꾸준히 지켜봐 온 홍유인 씨는 이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요?”
“.....”
의사는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가 입을 뗐다.
“홍유인 씨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세요.”
“쳇!”
홍사장은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끝난 거지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홍사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홍사장은 의사의 손을 슬쩍 내려다보기만 할 뿐 그 손을 잡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웃기시네. 내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고소하려고 한다니까 겁먹은 거겠지. 이렇게라도 하면 내 마음이 조금 누그러뜨려질 줄 알고? 천만에! 흥!'
홍사장은 병원에서 나와 오늘은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 가볼까 혼자 차에 앉아서 고민했다.
'도둑놈을 고소하기 위해 도둑놈을 고용해야 하다니!!'
홍사장 눈에는 똑같은 도둑놈인 변호사들 중에서 조금은 덜 도둑놈 같은 놈을 고용해야 했기에, 고심했다.
-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렸다. 참 희한했다.
이제 곧 죽는다는 말을 듣고 처음 삼일 동안은 물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도 허기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곧 죽는구나!
오직 이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지배해서 몸의 다른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흘째가 되자 배고픔이 느껴졌고, 평범했던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와 음식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지기도 했다.
우스웠다. 이제 곧 죽을 몸인데도, 그 몸이 아직 삶을 갈망하고 있었으니.
'그래. 먹자! 뭐라도!'
아무거나 먹자고 생각한 그 순간 불쑥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음식들이 영양가가 있긴 하지만, 너무 기름지기 때문에 가급적 피하시는 게 좋구요, 될 수 있으면 단백질 함량은 높고, 지방은 낮은 흰살생선 종류로 드시는 게 좋습니다.
'쳇. 이게 뭐야. 곧 죽을 마당에...'
홍사장은 썩 내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의사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어떤 음식을 먹든 홍사장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정해진 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있어서는 분명 먹는 음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었다.
'참나! 참나.....'
한숨과 한탄을 하면서 홍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대구탕 가게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오지 않겠다고 해놓고 또 와버렸다. 흰 살 생선을 먹을 수 있는 가게는 이곳 말고 다른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차를 세워놓고 멍하니 대구탕 가게를 쳐다봤다.
아마 처음인 것 같았다. 이렇게 밖에서 대구탕 가게를 아무런 생각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는 얼른 먹고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기에, 이렇게 가만히 앉아 낡고 허름한 대구탕 가게를 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생겼다.
인생에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왕창 줄어버리자, 그동안 급히 지나쳤던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바라볼 시간이 생겼다.
시간이 줄어들자, 시간이 생기다니... 뭔가 이상했다.
그동안은 단지 외관이 허름한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앉아 가만히 살펴보니 가게 입구에 다양한 종류의 꽃 화분이 놓여 있었다.
젊은 부부가 낡은 가게 앞을 꾸민답시고 화분을 놔두고 물을 뿌려가며 가꿨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전, 아내와 함께 삭막한 공장을 조금이나마 화사하게 꾸며보겠다고, 창고 앞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꾸미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 대구탕 가게 앞의 화분처럼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고, 남들은 크게 관심도 두지 않았던 작은 화단.
홍사장은 차에서 내려, 가게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매장 1층을 잠시 보다, 그 위의 2층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도 오래된 나무와, 빛바랜 페인트, 색이 벗겨진 문틀이 보였다.
2층도 1층과 다름없이 낡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하늘이 보였다. 푸른 하늘.
낡은 건물과 대조되어 그런지 하늘은 무척 깨끗해 보였다.
'맑구나... 눈이 시리도록...'
5월의 푸른 하늘. 인생의 마지막 5월이 올해가 될 줄이야.
홍사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푸른 하늘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주 익숙한 향이 풍겨왔다.
'뭐지?'
퍼뜩 떠오르진 않았지만, 어딘가 아련한 추억의 향이다.
하늘을 보던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매장 입구에 놓인 여러 종류의 화분 중에 홀로 기다랗게 솟아오른 보라색 꽃이 보였다.
마치 장신구에 술을 단 듯 노란 솜뭉치가 몽글몽글한 보랏빛 꽃.
홍사장은 그 꽃이 어떤 꽃인지 아주 잘 알았다.
아내가 가장 좋아한 꽃.
홀로 삐죽이 솟아올라 어색하고 수줍음 많은 키다리 꽃처럼 보이지만, 뿜어내는 향만큼은 다른 어떤 꽃들의 향보다 더욱 진하고, 향기로운 꽃.
아이리스.
아내는 아이리스 꽃과 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5월.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가 제철이었음에도, 아내는 무더기로 화려하게 피어 있는 붉은 장미꽃보다는 홀로 의연히 피어 있는 아이리스를 더 좋아했다.
5월의 아이리스를 그 무엇보다 좋아했던 아내.
신기하게도 홍사장은 5월에 아내를 만났고, 또 5월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홍사장은 한동안 아내를 생각하며 곱게 피어 있는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아내가 떠난 지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기했다.
아내가 떠나고 난 후, 그동안 먼 곳에 있다고 느껴졌던 아내였는데, 시한부 판정을 받자 이젠 조금 가까운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홍사장은 한참 동안 그렇게 대구탕 가게 입구 앞에 서 있다가 밥을 다 먹은 손님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고선 감상을 멈추고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대구탕 가게 남자 사장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평소에는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귀에 거슬렸는데, 오늘따라 한결같은 그의 목소리가 홍사장의 귀에 조금은 정겹게 들려왔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 익숙한 것. 정겨운 것.
홍사장이 자리에 앉자 남자 사장이 다가와 물었다.
“대구탕 드릴까요?”
지난번에 다시 오지 않겠다고 인상을 쓰며 말하고 갔기에, 기분이 나쁠 법도 할 텐데, 남자 사장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예.”
홍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남자 사장의 얼굴을 보며 대답을 했다는 것과 말투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
“그런데 말이요.”
대구탕 가게 남자 사장이 돌아서려는데, 홍사장이 말을 건넸다.
“네?”
“저기 입구에 꽃들.”
“아, 보셨어요? 잘 키워야 하는데, 제가 게을러서 시들어가는 것도 몇 개 있고..... 부끄럽네요.”
남자 사장의 말처럼 꽃이 만개하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화분도 있었지만, 몇몇 화분은 시들어 있기도 했다.
“그... 아이리스 말이요. 언제부터 있었던 거요?”
“아~ 아이리스요? 향이 참 좋죠? 그거 계속 있었던 건데요?”
“그동안 내가 여기 오고 가는 동안 계속 있었단 말이요?”
“네.”
새삼스러웠다. 그동안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꽃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표정의 홍사장과는 다르게, 남자 사장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살짝 지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맑은 대구탕이 나왔다.
- 후루룩
홍사장은 대구탕을 한 숟갈 떠서 후 불고는 조심스레 국물을 삼켰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는 대구살을 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간장에 살짝 찍어서 입에 넣었다.
하얀 대구살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입이 꽉 차는 식감.
흰살생선 중에 비린 맛이 거의 없고,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살밥이 많은 생선은 대구밖에 없을 것이라 홍사장은 생각했다.
아이리스의 향 때문일까?
홍사장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오직 음식을 먹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도 홍사장의 뒷자리에서 누군가는 코를 풀었고, 옆자리의 누군가는 기침을 하다가 입에서 음식물이 튀어 나갔지만, 홍사장의 눈과 귀에는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5월.
따스한 봄바람이 아이리스 향기로 온통 물든 날.
홍사장은 모처럼 온전한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