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식으로 최고!
홍사장은 대출금 이자가 빠져나간 통장을 보고선 숨이 턱 막혔다. 아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고?! 무슨 몇 천만 원이 애들 장난이냐?
33,965,210
이자로 빠져나간 금액이다! 한 달 이자로!
만약 1년 동안 이 정도 상태의 이자가 빠져나간다면, 은행에 이자만 4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셈이었다. 작년 12월부터 지금 5월까지 벌써 반년이 지나갔다. 아마 1년도 금방 지나갈 것이다.
“도대체 이자는 언제쯤 내립니까? 지금 전기세, 공과금 다 오르고, 이자까지 이렇게 오르면 사업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홍사장은 주거래은행 담당자인 기업은행의 안정희 차장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쿠, 대표님. 많이 힘드시지요? 그런데 그게 잘 아시겠지만, 저희 마음대로 금리를 올리고 내리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미국에서 금리를 인상하니까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이 되어서요.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표님.”
홍사장도 알고 있었다.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이 무슨 금리를 올리고, 내리고 할 힘이 있겠는가? 알고 있었지만, 갑갑하고,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홍사장 혼자만 금리가 오른 것도 아니었다.
홍사장은 전화를 끊고 갑갑한 마음에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홍사장의 회사 주위에는 온통 다른 회사들의 공장들과 또 다른 회사들의 사무실들이 있었다.
'아니, 저 회사들도 분명히 빚이 많을 텐데,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거지?'
궁금했다. 빚이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버티고 사는 중인지.
'근데... 저것들은 뭐가 즐겁다고 저리 깔깔거리는 거지?'
삼삼오오 모여서 사무실을 나서는 직원들이 보였다.
'아, 맞다. 점심시간이구나.'
직원들이 홍사장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직원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직원들 중에서 아무도 홍사장에게 점심식사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너네들은 아무런 걱정도 없어서 좋겠다. 나는 지금 속이 썩어 들어가는데, 시간만 지나면 너네들은 따박~ 따박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니...'
이렇게 생각하자 홍사장은 더 속이 쓰린 것 같았다. 밥맛은 별로 없었지만, 쓰린 속을 다스리려면 뭐든 먹어야 했다.
'에잇. 가자! 대구탕이나 먹으러!'
홍사장이 매장 입구에 들어섰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제법 손님이 붐볐다.
'너무 딱 점심시간에 맞춰서 왔나?'
홍사장은 입구에서 살짝 망설였다. 괜히 점심시간에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밥 먹는다고 눈치를 보기는 싫었다. 돌아서 나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남자 사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아... 저 남자 사장의 목소리는 수십 번을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꼭 저렇게 크게 인사를 해야 하는 건가? 나처럼 그냥 돌아나가려는 사람들 붙잡으려면 저 정도 목청은 되어야 하는 건가?'
홍사장은 남자 사장의 인사도 받았기 때문에 돌아서기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며 신발을 벗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매장이라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번거롭게 말이야!
“대구탕 드릴까요?”
오늘따라 그 대구탕 ‘드릴까요?’라는 말이 더 거슬렸다. 평소 늘 먹던 대구탕이었고, 맛있게 먹는 대구탕이었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넌 언제나 혼자 와서 가장 기본 메뉴인 대구탕 하나만 먹고 가지. 돈도 안 되게 말이야.라고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요.”
남자 사장이 순간 어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낙지 한 마리 대구탕.”
이곳에는 일반 대구탕과 낙지가 들어간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이 있었는데, 일반 대구탕은 11,000원, 낙지가 들어간 대구탕은 19,000원이다. 대구가 들어간 연포탕 같기도 한 이 대구탕을 매장에서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홍사장도 종종 보긴 했는데, 오늘은 딱히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이 먹고 싶어서 주문한 것이라기보단, 남자 사장의 늘 똑같은 인사말이 거슬렸기 때문에 주문했다.
“아, 넵. 알겠습니다.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이요~”
남자 사장은 포스기에 주문을 입력하며 외쳤다.
'젠장!'
홍사장은 기분 따라 주문한 메뉴였는데, 8,000원이나 더 비싼 음식을 주문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전기세도 오르고, 수도세도 오르고, 은행 이자도 계속 오르는데, 점심 메뉴도 비싼 메뉴를 시키다니!!
속이 쓰려서 왔는데, 비싼 점심을 주문하고서 더 속이 쓰려지고, 부글부글 끓기까지 했다. 평소처럼 밑반찬이 나왔다.
부추전, 튀기듯 구운 두부, 가지나물, 오이무침, 깍두기, 곱창김.
“저기 사장님.”
홍사장이 남자 사장을 불렀다.
“네?”
“혹시 이렇게 구운 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사장이 부추전의 테두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얇으면서 바삭하게 구워진 부추전의 테두리.
“아, 바삭바삭하고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멍청이! 누가 맛을 물어봤냐고!!'
홍사장도 그렇게 전의 끝부분이 바삭하게 익은 걸 좋아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탄 음식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 끝부분을 먹지 않고 있었다. 평소엔 이런 말을 나누는 것도 싫어서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8천 원이나 더 비싼 메뉴를 주문해 기분이 나빴기에, 뭔가 여기 대구탕집 사장에게도 기분 나쁠 일을 하나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 부분이 과연 건강에 좋을까요?”
홍사장은 애써 올라오는 화를 꾹 누르며 말했다.
“어..... 건강에 나쁠 정도로 태운 건 아니라서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홍사장은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여긴 저 인간의 매장이고, 부하직원도 아니니.
홍사장은 남자 사장에게 보란 듯 부추전의 테두리를 남겨두고 안쪽 부분만 먹었다. 구멍이 뻥 뚫린 웃긴 모양의 전 테두리만 남았다. 마치 도넛처럼. 이게 최선이라 생각되어 흡족했다.
'이렇게 먹고 남기면 느끼는 게 있겠지. 최소한 기분은 나쁠 테고!'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은 여자 사장이 들고 왔다. 일반 대구탕과는 다르게 가위와 집게를 옆에 가져다 놓았다.
“가위로 잘라서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일반 대구탕은 노르스름한 맑은 탕이었는데,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은 낙지에서 우러난 육수 때문인지 보랏빛이 났고, 건강식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그런지 그냥 대구탕에는 없던 대추 한 알도 올려져 있었다.
홍사장은 오늘 처음 먹어보는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이었지만, 평소 다른 손님들이 이걸 어떻게 먹는지 몇 번 봤기에 어떻게 먹는지 알았다.
홍사장이 집게로 낙지를 집어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가위로 축 늘어진 낙지다리부터 싹둑싹둑 자르기 시작했다.
'이야~ 일 못하는 직원들도 이렇게 싹둑싹둑 잘라버렸으면 정말 좋겠다!'
홍사장은 얼마 전 어디선가 본 글이 떠올랐다.
직원은 딱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하고, 회사는 딱 그만두지 않을 만큼의 월급만 준다고.
그런데 홍사장에겐 직원들이 딱 잘리지 않을 만큼만 일을 한다는 말만 와닿았다.
매달 나가는 월급에, 사대보험 비용에, 명절마다 줘야 하는 명절 보너스와 귀성비. 게다가 상여금에 각종 직원 복지를 위한 자기 계발 비용. 거기다 지금 받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간 받아갈 퇴직금 등등. 이게 딱 그만두지 않을 만큼의 월급이라고? 와~ 씨! 나도 차라리 직장인을 하고 싶다!! 홍사장은 고개를 흔들며 애써 생각을 떨쳐냈다. 밥이나 먹자.
낙지를 다 자르고 나서, 보랏빛 국물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오호~ 시원~하다!'
낙지 한 마리 대구탕에서는 낙지나 문어 또는 오징어 등에서 나는 특유의 감칠맛이 입속을 휘젓더니 목구멍으로 쏙 넘어갔다.
일반 대구탕도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큼직~한 낙지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낙지 한 마리 대구탕은 감칠맛과 시원한 국물 맛이 더 끝내줬다.
보랏빛육수에 하얀 대구살도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초장에 살짝 찍고~ 입에 꽉 차게 넣고 씹어주니. 캬~ 꿀맛이어라. 거기다 몸도 보양이 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홍사장이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시간. 바로 먹는 시간. 대구탕 가게의 사장들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음식의 맛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췻!”
그때 뒤에서 기침을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코를 팽 푸는 소리도 들렸다. 순간 홍사장이 느끼던 행복한 기분이 싹 가라앉았다.
'에이씨, 밥 먹는데.......'
홍사장이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통통한 낙지다리 하나를 초장에 폭 찍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캬캬캭, 칵, 푸어허헉!!”
코를 푸는 것인지, 가래를 뱉어내는 것인지 모를 희한한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이번엔 정말 밥맛이 뚝 떨어지다 못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에이~!!”
홍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뒤를 노려봤다. 그곳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 한 명과 노인의 딸로 짐작되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홍사장과 눈이 마주친 여자와 노인. 말은 하지 않지만, 약간의 미안함과 동시에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는 표정.
“해도 정도껏 해야지!! 씨!”
홍사장은 성큼성큼 걸어서 카운터로 향하며 말했다. 등 뒤에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내 기분이 이렇게 더러워졌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너네들 기분이 뭐? 어쩌라고?!!'
홍사장이 카드를 꺼내려고 하는데, 지갑에 꽉 끼인 카드가 오늘따라 더 꺼내지지가 않아 몇 번이나 카드를 잡고 놓치기를 씩씩거리며 반복했다.
겨우겨우 카드를 꺼내서 남자 사장에게 줬다.
- 지이익
영수증이 올라오자, 남자 사장이 카드와 전표를 건네줬다. 홍사장이 탁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돌아서 입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라?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계산하기 전, 얼마 나왔습니다. 계산 후,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기계처럼 튀어나와야 했는데.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면 조심해서 가세요~라는 인사가 나와야 했는데! 지금은 카드를 받아, 계산을 마치고, 홍사장에게 건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에도!!
홍사장이 남자 사장의 얼굴을 쳐다보자, 남자 사장은 단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평소의 모습처럼 썩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느낌?
‘뭐야? 오늘 다른 손님한테 한소리 했다고 인사를 안 하는 건가? 근데, 뒤에서 먹던 노인이 잘못했잖아? 밥 먹는데, 밥맛 떨어지게 코를 풀고, 기침이나 계속하고 말이야!’
홍사장이 잘 들어가지 않는 카드를 지갑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매장 입구를 나서려는데, 식당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홍사장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후다닥 매장을 나섰다.
'우와~ 씨! 인간들 뭐야? 다들 왜 저러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홍사장이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다가 무심코 백미러를 들여다봤다. 거기엔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낯선 사람이 보였다.
'허억!! 뭐야?!!'
홍사장은 거울에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란 걸 알고 한숨을 후 내쉬었다.
'내 표정이 왜 이렇지??'
홍사장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좌우로 돌려봤다.
그때, 어라? 대구탕가게 남자 사장이 입구의 문을 열고 나오더니 홍사장이 타고 있는 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뭐야? 매장에 있는 손님들 기분 나쁘게 했다고 나한테 따지러 오는 건가? 아니, 내가 뭘 잘못했는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것도 기분 나쁜데! 이씨! 좋다! 오늘 한번 붙어보자! 넌 평소부터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홍사장은 다가오는 대구탕 가게 남자 사장을 노려보며 한바탕 단단히 겨룰 기세였다.
똑똑. 남자 사장이 창문을 두드렸다.
홍사장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는 안 그래도 찌그러진 막걸리 통 같은 인상을 더 확 구겼다.
“뭐요?!”
그런데, 홍사장의 날 선 물음에 들려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2층 공방에 와보실래요?”
“뭐, 뭐요? 공방?”
홍사장은 순간 당황했다. 분명 한바탕 싸울 기세였던 것 같은데,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사장도 준비했던 화를 내지 못했다.
“네. 2층에 공방이 있거든요.”
홍사장은 엉뚱한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없어졌지만,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내가 무슨 자기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나? 난 회사 대표이사라고! 대표이사!! 대표이사가 공방에서 만들기나 하면서 시간이나 때우라고?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아니, 애초에 인간이긴 한 건가?
“내가 좀 바쁩니다.”
“그럼 더 잘 되셨네요.”
“......?......”
“저희 공방은 시간을 만들어 드리거든요.”
이 말에 홍사장은 다시 열이 확 뻗쳤다.
'뭐? 시간을 만들어? 이....게 진짜 미쳤나.......'
홍사장은 입을 씰룩거리며 욕을 퍼부으려다 창문을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 지이잉.
- 끼이이이익.
홍사장이 신경질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자 바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헛돌다가 훙 하고 차가 튕겨 나가듯 가버렸다. 대구탕 가게 남자 사장은 사라져 가는 홍사장의 차를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