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준?

행복의 기준?

행복의 기준?


살아가다 보면 주위에 참 존경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십여 년 전 내가 지금의 가게를 하기 바로 전에 일했던 곳이 부산에 있는 식육점이었는데 그곳의 사장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


당시 어려운 형편의 나에게는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있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 사장님의 존재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길을 걷다가 식당 유리창으로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저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이기에 저 많은 식구가 외식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때는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부자인 줄로만 알았던 그런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우리 사장님은 고급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고, 가게도 세를 얻은 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의 점포였다. 그래서 당시의 나에게는 한없이 높게만 보이는 분 그런 분이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가게에 오시면 종이컵 하나를 가지고 하루 종일 그 컵 하나만을 쓰셨다.


고기를 만지다 보니 가끔 손에 묻은 고기의 기름기나 옅은 핏자국이 종이컵에 묻곤 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계속 사용해서 종이가 흐물흐물 해져도 그 한 개의 종이컵을 하루 종일 사용하셨다.


나는 사장님의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를 버느냐보다는 얼마나 아끼느냐가 부자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되고, 적게 벌면 가난한 것이지 그것이 무슨 말씀일까 하고 의아해했는데 식육점의 사장님을 보니 그 뜻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같았다.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저 높은 곳에 자리한 사장님이 종이컵 하나를 하루 종일 사용한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고, 큰 깨달음을 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식육점은 해운대에 위치해 있었는데, 해운대 신시가지에서 청사포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었다.

때는 봄이었다. 나는 식육점 내에서 주로 일했지만, 아침에는 중국집에서 탕수육용으로 사용할 뒷다리 살을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집으로 배달하곤 했다. 그리고 가끔은 가정집에서 고기를 주문한 사람들에게 배달을 하기도 했었다.


내가 배달하는 중국집은 몇 군데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청사포에 위치한 곳도 있었고,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곳도 있었다. 청사포나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중국집에 배달을 갈 때면 기분이 무척 좋았다.


계절은 따스해지기 시작하는 포근한 봄이었고,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이 만개하고, 그중에 성질이 급한 몇몇 녀석들은 벌써 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그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매번 마냥 그렇게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온 것을 보면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워 홀로 서글퍼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뿐 봄의 기운이 나의 우울한 기분을 금세 훌쩍 날려버렸다.


식육점에서 일할 때 가장 싫었던 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어릴 적부터 비를 무척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 당시에는 비가 오는 것이 정말 싫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중국집 몇 곳에 배달을 다녀올 일이 꼭 생겼는데 비옷을 입는다고 해도 옷이 제법 젖었고, 신발은 흠뻑 다 젖어버렸다. 그러면 그 젖은 신발을 신고 마칠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발을 한 켤레 더 들고 다녔으면 되었을 텐데, 당시 내가 어리석어 그랬던지 그렇게 발이 부르트도록 하루 종일 젖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뜨뜻미지근하고 축축한 그 느낌을 하루 온종일 느끼며 찜찜한 기분으로 일을 했던 것이다.


똑같은 시간 일하고 퇴근을 하더라도, 그런 날은 퇴근시간에 더 기분이 좋았다.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마른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내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끔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든 일이 없으면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지만, 시련을 겪고 나면 비로소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고 고마운 것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것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정말 재밌게 읽었고, 내가 아주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느꼈다. 진정한 연금술의 의미는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바로 황금으로 만들어진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걸. 납이라 생각하는 것을 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곧 금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발견하는 그 순간을 위해 살아가지만, 우리에겐 후회할 과거도 없고, 집착할 미래도 없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황금에 눈이 멀어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르고, 지금 나를 둘러싼 만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줄을 모른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황금을 발견한 바로 그 순간이지 않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시작을 해 보지도 않고 어떤 일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단정을 지어버린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세상의 모든 만물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움직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에 가두어 놓고 살아간다. 이것은 할 수 없는 일이라 선을 그어 버린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을 해버렸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설령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나는 나의 자아의 신화를 찾아 열심히 살았고, 그 살았던 모든 순간들이 곧 황금의 시간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독한 순간을 두려워한다.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고독한 그 순간조차도 황금의 시간이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매 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가난. 가난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


우리가 이미 얻은 것을 원하고, 이루어 놓은 것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부자이고 언제나 행복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가난은 끝없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허상일 뿐이니까 말이다.




다음은 어디선가 본 글이다.


겸손을 회복하자 - 처음 무엇을 배울 때, 처음 조직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늘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했다.

무엇을 하든지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작은 기회도 감사히 받아들이며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다.

노련하지는 못했지만 열정은 불처럼 강렬했다.

겸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목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크고 화려한 곳이 아니면 자존심이 상해서 가지 않으려 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을 귀찮게 여겼다.

과거의 화려한 승리에 도취하여 오늘의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겸손으로 반듯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시작하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자 - 처음 시작하던 때 우리 모두는 초라하고 외로웠기에 사람을 귀하게 대했다.

퇴직금 전부를 쏟아부어 문을 연 식당에 손님이 없어 절망할 때 문 열고 들어서는 한 명의 손님은 눈물 나게 고맙다.

회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시절에는 온갖 어려움을 참고 몸이 부서져라 함께 뛰어준 직원들을 형제처럼 생각하고 동고동락했다.

모두를 스승으로 알고 은인으로 알아 사람을 정성스럽게 대했다.

하지만 크고 강해지면서부터 사람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내 스케줄에 맞춰 약속을 잡고 나를 대할 때면 매너를 지키길 바란다. 남이 하는 얘기는 귓등으로 듣고 내 얘기만 폭포수처럼 쏟아내고 대화를 끊어버린다. 하지만 각자가 안고 사는 그 아픔과 슬픔 웃음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위의 말들은 모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 아닐까.





불과 십여 년 전, 식육점에서 일할 때, 감히 내가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대단하게만 보이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주변에 수두룩하다. 당시의 사람들이 높고 대단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어렵고 힘든 환경이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내 주변에 항상 넘쳐나는 사람들이라 해서 절대로 우습게 생각을 하거나 하찮게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항상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존경해야 한다.


언젠가 상황이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되고, 그 힘든 날이 계속되어 어느덧 어렵고 힘들고 고단하게 사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날이 오게 된다면 주위의 평범한 사람 모두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들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엔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각이 만드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