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겨울이 오면

그가 떠났다. 새벽에 떠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마지막을 배웅해주고 싶었으나, 그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내 몸의 피곤함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 더 컸나 보다.


그가 떠날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내가 눈을 떴을 땐 이미 그가 떠난 후였다.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고, 밖이 깜깜했지만 휴대폰의 화면에 나타난 시간은 그는 이미 떠났고, 그를 배웅하기엔 늦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 업무가 시작할 시간도 아닌데 난 괜히 옷을 입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검은 하늘에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려서 그는 더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을까........?’


그를 처음 만난 건 추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3월 끝자락의 어느 날이었다.


3월의 끝이면 벌써 봄이 찾아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지만, 그곳은 아주 추운 나라였다. 3월 말의 러시아는 아직도 넓은 들판과 봉긋이 솟은 낮은 산에 빼곡하게 서있는 나무들이 벌거벗고 추위에 떨고 있는 그런 계절이었다.


처음 러시아로 일을 하러 가게 되었을 때, 나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나서 훗날 정말 후회하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 가족들에게 점차 잊히는 것은 아닐까? 꼭 가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도 결국 멀리 떠나기로 결심을 한 것은 낯선 곳에서 겪을 낯선 일들에 대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었다.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처음부터 잠을 편하게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가 그럴듯한 말로 지금 현재의 상황을 다양하게 포장을 하지만, 달빛이 아주 곱게 비치는 어느 푸른 밤이나,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홀로 누워 있는 방을 추억의 소리로 가득 채우는 어느 어두운 밤, 뒤척이며 코끝이 시려지지 않았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어떤 조건이든, 어떤 상황이든 홀로 지내야 하는 시간은 순간순간 밀려오는 그리움과 추억들에 맞서 버티고 싸워야 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때로는 부드러운 파도의 포말처럼 잠시 일었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친 폭풍우처럼 사정없이 마음의 물결을 흔들고 요동치게 만들어 견디기 힘들게 하기도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어떠한 미사여구로 장식을 해도 결국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하나둘씩 알아가게 되었다. 처음엔 그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김새가 낯설기만 했는데,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들과 곧잘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과 내가 어울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던 이유는, 대부분의 그들이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서로 많은 부분이 공감되었고, 서로 의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말을 나누고, 따뜻한 행동으로 서로 위로가 된다기보다도, 서로의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말과 행동 없이도 의지가 되었다.


쓸쓸히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가족들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다가도 그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을 놔두고 온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들의 가족이 모두 이곳에 있다면, 나는 나만 홀로 가족들과 떨어져 산다는 사실에 더욱더 슬퍼졌을까? 그들이 가족들과 살고 있건, 떨어져 살고 있건 나의 상황은 변함이 없는데, 왜 그들의 가족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이 될까? 나의 상황도 그들에게 위안이 될까? 그렇다면 반대로 만약 내 가족이 이곳에 와서 함께 살게 된다면 그들은 슬퍼질까?


처음에 러시아에 있는 회사에 오자마자 회사의 곳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회사를 구경시켜주는 직원이 지금 사람이 부족하고, 일이 급하니 얼른 일을 익혀야 한다고 쉬지 않고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었다.


회사를 둘러보는 동안 근무자들도 많이 마주쳤는데, 주로 구소련 연방국 가중 하나인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직원들이 많았다. 본인들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보다는 훨씬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이곳으로 일을 하러 온 것이었다.


나는 이곳 직원들과 내가 담당하는 곳의 시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예전에는 통역원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기 때문에 알아서 소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정말 당황스러웠다. 러시아말을 아는 것도 아니고, 우즈베크의 말을 아는 것도 아닌데, 직원들과 대화를 하고, 업무 지시를 해라니! 이건 물통 없이 사막에 내던져진 꼴이었다. 그렇다고 난 모르겠다며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회사는 계속 돌아가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은 진행되어야만 했다.


이제 갓 근무를 시작한 신입 한국인 직원이 어설픈 말로, 어설프게 작업지시를 하니, 그곳의 근무자들이 잘 따라올 리가 없었다. 각자 지금까지 일을 해온 방식이 있고, 또 오래 근무를 한 직원들이다 보니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반대로 옆에서 편을 들어주고, 나를 도와주는 척하며 자신만 어떤 특혜를 누리고자 하는 아첨형의 직원도 있었다.


난 텃세를 부리는 직원도, 자신만 잘 보이려는 직원도 모두 달갑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 회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를 했으면서도, 그것을 완장 삼아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내가 말을 하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 나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 쟈니 벡.


나를 누르고 싶어 하거나,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그와 친해지기 전, 난 그와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왠지 그가 가장 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카자흐스탄 사람의 피가 흐르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다. 처음 일을 하러 왔을 땐, 1년에 한 번씩 고향으로 휴가를 가려고 했는데, 비자 신청을 하는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해 돈만 날리고 서류를 진행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현재 불법체류가 되어있는 상태이고, 한번 나가면 러시아에 다시 들어오기가 힘들기 때문에, 3년 동안 일을 하고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내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뭐? 그럼 3년 동안 가족을 못 봤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올해가 3년째라고. 12월이 되면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고. 4월의 중순. 훈풍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의 자작나무 숲 속에서 듣는 그의 말이 나에겐 너무나 먼 시간으로만 느껴졌다.


그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꼼꼼하고, 성실하게 맡은 일을 했고, 남들은 잘 모르고 어려워하는 것들도 그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가면서 척척 잘했다.


그는 근무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가장 현명하고, 똑똑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했다. 그래서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나에게 한국말을 물어보고 수첩에 적었다. 나 역시 그에게서 러시아 말을 배웠다.

그는 한국말을 아주 빨리 익혔는데, 가끔은 한국말을 엉뚱하게 적어서 나를 웃기기도 했다.


어느 날 우즈베키스탄 친구들이 자주 사 먹는 해바라기씨를 이야기하다가, 해바라기라는 단어를 알려줬는데, 그는 계속 해배래기라고 말을 했다. 이것이 그리 웃긴 단어도 아닌데, 난 그가 해배래기라고 말을 할 때마다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는 근무자들이 일을 하다가 망설일 때, 확실한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근무자들도 그가 결정을 내리면 아무 말 없이 따랐다. 그의 결정은 언제나 옳았고,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었기 때문에.


그는 블라디보스톡에 와 있지만, 단 한 번도 바다를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비자가 잘못되고 나서 혹시라도 경찰에게 단속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예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반드시 자기가 계획한 대로, 그만큼의 돈을 벌고 돌아가야 한다며........


난 도대체 그렇게 3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도저히 상상을 할 수도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버티고 있었다.


틈틈이 그와 난 서로 말을 가르쳐주고, 가르침을 받으며 시간이 흘렀다. 자작나무 수액을 받아 마시던 봄이 지나고, 밤 9시에도 초저녁처럼 훤하던 여름도 지나고, 갑자기 기온이 확 떨어져 입에서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을의 어느 날 밤.


난 회사의 시설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추워진 날씨 탓에 몸이 움츠러들고, 손전등을 들고 있는 손도 무척 시렸다. 막연하게 들어왔던 러시아의 겨울에 대한 두려움이 들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었을 뿐인데, 벌써 이 정도면........’


두려운 마음으로 얼른 시설을 둘러보고 들어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저쪽에 누군가 뒷짐을 지고 산책을 하듯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그는 바로 쟈니 벡이었다.


“쟈니 벡!”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와 악수를 하는데, 손이 아주 차가웠다. 오랫동안 그렇게 밖에 서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날이 추운데?”


“그래. 추워.”


춥다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입김이 번졌고, 미소도 번졌다.


“이렇게 추운데 여기서 뭐해?”


나의 물음에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난 왜 그러나 싶어 같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하늘엔 특별한 것은 없었다. 쏟아질 듯 무성한 별들이 밤하늘에 빼곡히 들어차서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매일 밤 그렇게 있었던 것들이지, 오늘만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길게 입김을 내뿜으며 감격에 겨운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보며 외쳤다.


“곧 겨울이야! 곧 겨울!”


그리고는 갑자기 어둠 속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겨울? 그럼 이제 추워지는 거잖아? 그런데 뭐가 저렇게 좋다고........’


그때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올랐다. 그가 겨울에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에겐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의지하고, 기대던 친구가 떠난다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에겐 3년 만에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


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어둠 속에서 추는 그의 춤을 바라보았다. 기쁨과 환희의 춤이 나에겐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의 삶의 애환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춤을 보다가 코끝이 시려진 난 시선을 옮겨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눈망울만큼이나 초롱초롱한 별들이 쟈니 벡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겨울. 그렇게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새벽 떠났던 그의 발자국을 잠시 찾아보려 했지만, 눈은 그의 발자국마저 새로운 눈으로 다 채워버려 난 그의 마지막 발자국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성자와 망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