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칼의 추억
어쨌거나 인서울로 대학교에 진학한 나는 바라던 대로 경당 동아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 로망이었던 나의 플렉스, 본국검법도 익힐 수 있었다. 당시 우리 경당 동아리의 진도가 기본타를 익힌 후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본국검이었고 그 뒤 제독검, 쌍수도, 예도 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간절했었다.
매일 목검으로 1000타를 치고 검법 수련, 체력훈련을 하고 힘 남는 친구들끼리 또 더 훈련하고 그러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즐겁고 그리운 추억이다. 아직 팔팔한 20대라 회복 속도도 느리지 않아서 먹고 운동하고 쉬고 놀고...더구나 나는 술을 안 마시다보니 운동 후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보다 회복도 좋았던 것 같다.
경당은 임동규 선생님이 창립한 단체로 임동규 선생님부터가 전문 무술인이 아닌데다 무예도보통지 복원 단체이기 때문에 그 형태의 연구가 자유로웠던 것이 특징이기도 했던지라 이것저것 무술들을 곁다리로 맛볼 시간들도 있었고 인터넷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던 2000년 초반때라 여기저기 숨겨져있던 무술정보들도 우후죽순으로 접할 수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 취한 나는 무예도보통지의 연구 뿐 아니라 다른 대학교 경당에 가서 기창, 쌍검, 곤방, 월도 등을 배워와서 우리 경당의 시연 종목에도 넣어 축제나 정기 시연도 굉장히 풍성하게 되었던 기억도 난다.
경당 수련은 대학교 졸업한 후 고시공부 하던 시절에도 목검으로 꾸준히 했는데 그 끝에 마지막으로 내린 결론이 어차피 이건 꾸준히 이어져온 전승도 없고(있다 해도 내가 찾을 수 없고) 내 주먹구구로 검을 휘두르고 복원하느니 차라리 체계가 잘 잡힌 검술을 익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된 뒤 나는 검 수련을 멈추고 검을 나에게서 내려놓았다.
돌이켜보면 대학교 시절 경당을 하며 검도를 함께 하거나 그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고류검술을 해보거나 했다면 지금까지 검을 수련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여러가지 상황(시간과 돈, 마음가짐)이 그렇게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어설픈 집착으로 잡고 있던 칼을 내려놓게 되었다.
칼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이상과 동경과 망상(...)의 대상이었다. 그런 대상을 내려놓자 한동안 허전했지만 곧 다른 할 것을 찾았고 이전에 했던 칼의 추억을 바탕삼아 실수한 것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바디컨트롤과 영춘권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성취가 된 것 같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