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6월
07
서점의 수많은 업무 중 하나는 바로 ‘책 읽기’다. 나는 다른 서점원에 비하면 책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읽고 좋으면 추천해 줄 수 있고, 리뷰도 써서 알릴 수 있다. '따란~ 우리 책방에 이런 책이 입고되어 있답니다' 하면서 말이다.
근데 여기서 순서가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 책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일단 입고하고 나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 읽었던 책이야 쉽게 결정 내릴 수 있지만, 신작이나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 같은 경우에는 느낌으로 입고를 결정한다. 그 느낌은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고, 보류 상태일 때도 있으나 워낙 소량으로 입고하는 터라 실패를 맛보더라도 다음엔 느낌을 더 살려보자 하고 경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단편소설집의 경우 표제작을 읽으면 단번에 알 수 있다. 작가든 출판사든 제목으로 내세우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겨울방학』은 제목을 보고 고른 책 중 하나다. 봄방학이든, 여름방학이든 방학은 다 좋지 않은가(아, 물론 대학가 근처 서점원이 된 후에는 방학을 마냥 곱게 볼 수 없다). 표제작인 <겨울방학>은 방학만큼 마냥 포근하지도, 쉽사리 온기가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래서 좋았다.
아홉 살 조카의 시선에서 바라본 고모의 집은 조금 울적하고 조금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고모와 닮았다. 과장된 애정 없이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고모의 모습이 너무나 담백해서 새삼 이모로서의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내가 일을 쉬고 있고, 조카들이 어렸을 때 조카 2호는 나에게 통장이 몇 개냐고 물었다. 통장이 뭔지는 알까 싶었으나 일단 한 개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조카 2호는 내가 언니 집을 방문할 때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 내 가방에 천 원짜리를 네모 모양으로 반듯하게 접어 넣기도 하고, 백 원과 오백 원 동전을 우수수 넣어 놓기도 하고, 비타민을 통째로 넣어주기도 했다. 얼마나 귀여웠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간이 흘러 책방을 오픈한 후에는 중학생이 된 조카 1호(내 키를 훌쩍 넘겼다)가 사뭇 진지하게 ‘이모, 책방은 어땠어요?’라고 묻는다. 아직 변성기는 오지 않았으나 미성이 남아있지 않은 목소리에 약간의 다정함을 얹어서. 그리고 초6이 된 조카 2호는 더는 내 가방에 용돈을 넣어주진 않고, <진격의 거인> 만화책을 입고해 달라고 한다(학교 숙제는 존재 자체를 까먹지만, 거인이 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진격하는 줄거리는 줄줄 외우고 있는 너).
어쨌든 나에겐 책방과 나를 걱정해 주는 조카들이 있다. 나는 <겨울방학> 속 조카를 보살피는 담백한 고모는 되지 못하겠지만, 조카에게 보살핌을 받는 이모의 삶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보살핌이 아닌 서로를 보살펴주는 관계를 착실히 쌓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니까. 앞으로도 서로에게 보살핌이 되는 존재가 되길 바라며.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책을 읽으며 조카들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는 이모, 이것 또한 책 읽기의 장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잠들기 직전에 이나는 고모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내게 배운 것이 가난만은 아니라면 좋을 텐데.
『겨울방학』 최진영 지음,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