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5 보릿고개에서 찾는 의외의 기쁨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6월

06


어릴 적부터 재미있게 듣던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시골의 삶. 특히 내가 귀한 줄 모르고 음식 투정을 부리거나 온갖 과일이 다 있는데 유일하게 없는 바나나가 먹고 싶다고 하는 둥 정신 못 차리는 소리를 할 때면 아빠는 ‘라떼는 말이야’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마구 웃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서점을 운영하는 지금의 나는 그 옛날 부모님이 겪었을 보릿고개의 고달픔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대학의 종강은 어찌나 빨리 오는지 모르겠다. 3월에 개강하고 중간과 기말을 보면 방학이다. 등록금이 이렇게 비싼데 학교에 머무는 기간이 일 년에 8개월이 채 안 되는 거다. 이건 대학생 모두가 학교에 단체로 따져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닌가, 대학교 근처 소상공인이 힘을 모아야 하나, 소상공인이여 일어나라.


그럼에도 아직 종강을 맞이하지 않은 시험기간의 학생들이 서점에 종종 왔다. 정말 고마운 학생들. 그리고 다른 동네에서도 왔다.

손님 한 분은 완전히 먼 동네에 사는데 하루 날을 잡아 이쪽 동네를 구경 왔다며 성북구 주변 서점을 둘러보고 계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도 애정 어린 눈길로 곳곳을 살펴본 후 여러 책들을 구입했는데 소설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이것저것 소설과 관련된 굳즈도 드리고 서점 로고가 박힌 연필도 드렸다.


오늘 하루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가득해진 짐꾸러미에 서점의 책이 더해졌다. 그분은 테이블 앞에서 부스럭부스럭 짐을 정리하셨는데 소중한 짐꾸러미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셨다. 무려 소금빵! 이 동네에서 유명한 촉촉한 소금빵이라고 하셨다(나도 모르던 소금빵 맛집). 감동, 감동. 너무 소중한 소금빵.


나는 그분께 ‘오늘 하루 정말 멋진 여행을 하고 계시군요’라고 말했고, 그분은 ‘서점 위주로 도는데 제가 빵도 좋아해서요’라며 수줍게 웃으셨다. 아이 좋아.

소금빵 요정 덕분에 동네 빵집도 알게 되고, 촉촉한 소금빵도 먹고, 당도 안 떨어지고, 즐거운 간식 타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마주할 보릿고개가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라는 한가로운 생각을 잠시 했다.


어릴 적 아빠는 흰쌀밥 대신 보리밥을 먹었지만 할머니가 준 용돈으로 사 먹던 눈알만 한 알사탕이 좋았다고 했고, 엄마는 불어버린 가마솥 라면을 먹었지만 이웃 동네에 살던 외삼촌이 선물해 준 연필과 노트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도 학생들의 여름방학 동안 보리밥을 먹을 테지만, 누군가가 건넨 소금빵이 좋았음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2025년 6월 19일 목요일

진짜 보릿고개는 아직 겪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하룻강아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내일이면 고개를 넘고 들을 지나고 개울을 건널 것이다. 풀과 들꽃과 두엄 냄새가 어울린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장편소설, 웅진지식하우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14화14 k-book 글로벌 서점에 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