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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는 외롭다 아니, 언제든 외롭지 않다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7월

04


7월 넷째 주, 서울 주말 온도 37도, 폭염주의


사막에 와 있는 듯한 날씨다. 유리문 하나를 열고 나가면 숨 막힐 듯한 더움이 온몸에 그득그득 달라붙는다. 당연하게도 거리엔 사람이 없다. 더위를 피해 휴가를 즐기러 떠난 사람들과 떠나지 않았더라도 집밖에 나오지 않을 사람들, 이렇게 나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서점원이 아니었다면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지 않았을 날씨라 한낮의 더위를 뚫고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수긍하게 된다.


어제는 세 시간 동안(택배 기사님이 오후 세 시에 방문해 주셨다) 서점을 방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서 무서움이란 감정을 조금 엿봤다. 다른 사람들처럼 여름휴가를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서점 개근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오늘 당장 책을 사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요동치며 미친 날씨를 닮아간다. 동시에 아니지, 그래도 지금 당장 책을 읽고 싶어서 더위를 뚫고 왔는데 헛걸음을 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으니까 라며 마음 다잡기를 반복한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맞이한 오후 다섯시 반의 첫 개시는 기쁨도 잠시 ‘동네서점,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근원적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바깥은 여름이라는 인지를 하고 나면 맞지, 이 날씨에 거리에 나서는 건 힘들지,라는 생각을 하며 일희일비를 넘어 일초에 한 번씩 마음이 널뛰곤 한다. 대신 노트 한편에 여름 휴가는 못 갔지만 겨울방학엔 겨울 휴가를 꼭 떠나야지,라는 다짐 비슷한 문장을 적어 놓는다.


이런 몽실몽실한 마음이 떠오른 이유, 실은 오늘부터 나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여름 휴가를 떠난 것도 한몫 하고 있다. 부모님과 조카들을 포함한 언니네 가족이 캠핑을 간 것인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 곱씹을수록 생경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떠난 적은 있고, 언니네 가족이 떠난 적은 있고, 부모님이 떠난 적은 있지만, 서울 하늘 아래 나 홀로 남겨진 다는 건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최근에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 하다 셋 중 유일하게 기혼자인 친구가 잠들기 전에 가끔씩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얘기를 듣다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 왜 외로울까,라는 의문을 남겼고 잠시 생각하다 다시 고쳐서 맞지, 외로운 건 그런 게 아니지라고 말했다.


인간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돈이 많아도, 친구와 가족이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다. 나의 외로움은 서점 안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공간에서 오늘만큼은 그렇다. 역시 심리적인 요인이겠지. 근데 이 글을 쓰는 지금, 갑자기 외롭지 않게 되었다.


김은지 작가님이 책방에 방문하셨다!

이 사막 같은 무더운 오후에, 손수건에 곱게 감싼 얼음이 순식간에 물이 되어버리는 날씨를 뚫고. 작가님보다 먼저 도착해서 책을 개시해 주신 두 분이 계셨는데 알고 보니 작가님의 일행이었다. 피아노 반주자 한 분과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선생님 한 분.

서점 근처에 일정이 있으셔서 겸사겸사 이곳에 들리셨다고. 사실 작가님의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서점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에 작가님은 산책을 하다 서점에 들르셨다. 나중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날을 되짚어 보니 작가님의 얼굴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맑고 또랑또랑했던 작가님의 눈빛, 그리고 시집을 구입하셨던 것. 그 후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 그리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의 작가님은 책 추천도 받으시고, 책도 추천해 주시고, 모든 책에 친필 사인도 해주며 서점에서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근처 맛있는 음식점을 추천해 드리고, 작가님은 서점 근처에서 열리는 행사도 알려주시고 짧지만 아주아주 알찬 시간을 보냈다.

처음 대화를 나눴지만 친근해. 이건 인스타그램 덕분이겠지.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작가님과 너무 친해져버렸다.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눈 적 없는 사이였지만, 이것이 mz스런 친구 관계인가 싶기도 하고(positive).


작가님과 지인분이 개시를 해주고 떠난 후 신기하게도 근처 대학교 학생들이 줄지어 서점을 찾았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너무 궁금하다. 방학인데 학생들이 이렇게나 많이 온다고? 분명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학생들은 언제 책을 읽고 싶은 걸까? 알고 싶다. 그들의 마음.


서점에 사람이 들어오고 책을 사가니 이렇게 앞에 쓴 기나긴 이야기들은 또 사라졌다. 인간의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지 다가가지 못한 채 바로 외롭지 않게 된 탓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앞으로도 이 물음의 답을 찾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서점엔 언제나 책과 사람이 북적북적해야겠지. 서점을 아무도 찾지 않아 외로움이 들이닥치려 할 땐 서점이 가득해질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2025년 7월 25일 금요일

외로움을 느껴버렸다가 바로 극복한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던 수많은 밤이 있다.

사람, 용기, 약속, 눈……

그런 새벽마다 나는 걷지 않으면서 가장 먼 곳까지 산책을 나가고, 멜로디도 가사도 없는 노래를 불렀다.

음, 음, 음……


『새벽 산책 허밍』 황수영 산문집, 이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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